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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장석준 칼럼]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제6공화국의 기정 정치

대선 승자는 이미 결정됐다...단, 이재명도 윤석열도 아니다
  • 입력 2021.11.16 13:27      조회 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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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대선이라고 한다. 양대 정당 후보 중 누가 더 최악인지를 놓고 겨루는 대선이라고도 한다.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가 아니라 투표하러 가야 할지 말지가 벌써부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선 주자가 각각 이재명과 윤석열로 결정되고 난 뒤에 제6공화국의 8번째 대선이 보여주는 광경이다.

도대체 어쩌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양대 정당 대선 후보로 선택된 이재명, 윤석열, 두 사람이 주요 주자로 떠오를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는가?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포퓰리즘적 계기를 흡수한 제6공화국 정치의 무서운 중력

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 '사건'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게 진짜 문제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애초에 주류 '여의도 정치'에 맞서는 도전자로 부각됐었다. 물론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늘 국민의힘과 같은 편으로 분류되곤 했다. 그러나 둘 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올해 초만 해도 이 전 지사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비주류, 그러니까 친문파가 아닌 쪽으로 여겨졌고 윤 전 총장은 아직 국민의힘 당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후보와 윤 후보는 비록 방향은 정반대이더라도 둘 다 기성 정치 바깥에서 이를 공격하는 인물로 보였다. 초기에 두 사람의 정치적 힘은 분명히 이런 도전에 공감하는 대중의 지지에서 나왔다. 촛불 항쟁 직후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사회 개혁 약속을 저버리고 기껏 내세운 검찰 개혁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자 이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각각 이, 윤 두 사람에게 쏠린 것이다. 이 점에서 두 사람은 한국의 주류 정치를 뒤흔들고자 하는 포퓰리즘적 계기를 나름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이 기조가 계속 발전했다면, 대선 지형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재명, 윤석열 모두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가장 쉽고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이재명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내 주류와 손잡고 '친문' 중 상당수를 '친이'로 변신시켰다. 덕분에 그는 후보 경선에서 다소 싱겁게 이낙연 후보를 제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 윤석열 후보 역시 국민의힘에 조기 입당한 뒤에 대다수 국회의원의 지지를 받아 삽시간에 당 내 '주류' 후보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오히려 당 대표까지 역임한 홍준표 후보가 더 '비주류' 포퓰리스트로 보이는 형국이 됐고, 윤 후보는 결국 '민심'이 아닌 '당심'을 디딤돌 삼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두 후보가 양대 정당의 주류를 선택했다기보다는 후자가 전자를 간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각 당 주류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대중 정치가를 배출할 능력을 상실한 처지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친문파는 내키지 않아도 이재명 후보에게 판돈을 걸 수밖에 없었고, 국민의힘의 노회한 정치인들도 현 정부의 전 검찰총장을 자기네 대선 후보로 모셔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후보 '업어오기'를 통해서라도 어쨌든 양대 정당 중심 정치의 생명은 연장됐다.

이 과정에서 이, 윤 모두 애초에 그들에게 기대됐던 포퓰리즘적 계기와는 정반대되는 면모를 노정했다. 이재명 후보는 친문파 정치인들에게 둘러싸이고 거기에다 대장동 스캔들까지 터진 뒤에는 경기도지사 시절의 정치적 순발력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능력 덕에 그는 한때 한국 사회의 비주류 대중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인물처럼 여겨졌지만, '대장동'이란 얼룩이 이제는 이런 연상을 강력히 차단한다. 한편 윤석열 후보의 경우는 우파뿐만 아니라 중도파까지 포괄하는 대선 주자일 것이라는 기대(혹은 근거 없는 믿음)를 무참히 깨뜨리는 행보를 반복했다.

결국 양대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 뒤에 남은 것은 그냥 기존 양대 정당 중심 정치의 생명 연장뿐이다. 한때 바로 이 구도를 흔들 말들이라 여겨졌던 두 인물은 이제 양대 정당 주류의 낙점을 받은 그 충실한 대변자가 되어 있다. 그것도 제6공화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결점과 한계만 일찍부터 노출하고 만 대변자들. 어떤 도전이든 흡수해버리는 제6공화국 정치의 중력은 이토록 무시무시하다. 이게 지금, 넉 달 앞으로 다가온 대한민국 제20대 대선의 기본 지형이다.

누가 당선되든 승리하는 것은 ...

이 대선판이 김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승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윤석열? 아니다. 둘 중 누가 당선되든 진정한 승자는 벌써, 따로 정해져 있다. 그것은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제6공화국의 기정 정치다.

넉 달 뒤에 누가 청와대 거주자로 결정되든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누가 되든 나라의 방향은 국회를 장악한 두 당의 담합으로 결정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결코 제정되지 않을 것이고, 감세 경쟁 속에서 복지국가는 더욱 요원한 꿈이 될 것이다. 재벌은 계속 헌법이 금지한 '사회적 특수계급'으로 인정받을 테고, 2020년대 말에도 노동자 집회는 경찰 차벽으로 둘러싸일 것이다. 그리고 2024년에는 십중팔구 지금보다 더 개악된 선거법을 통해 다시 양대 정당만의 국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누구보다 이런 묘리를 잘 아는 것은 물론 양대 정당에 포진한 주류 정치 엘리트들 자신이다. 그렇기에 대선에서 이들이 벌이는 싸움이란 실은 '거짓' 싸움이다. 이미 승리를 따놓은 자들이 왜 피와 땀을, 하다못해 눈물을 낭비하겠는가? 그저 싸우는 것처럼 보여주기만 하면 될 뿐이다. 후보 본인이나, 공기업 감투 자리를 노리는 2류 인사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양대 정당의 결정권을 장악한 거물들(가령 현직 국회의원)은 셈법이 전혀 다르다.

한 번 상상해보자.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다고 하여 이것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과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일까? 비례위성정당 꼼수까지 동원해 부풀릴 대로 부풀린 180석의 주인공들이 2024년 총선에서 여당으로 뛰는 쪽이 유리할까, 아니면 '윤석열 정권 심판'을 외치는 야당인 쪽이 유리할까? 제6공화국의 정치 관성에서는 단연 후자가 더 유리하다. 그렇다면 변혁의 이상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기존 체제를 지키는 일이야 국민의힘과 원팀을 이뤄 수행하면 되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굳이 '이재명 정부'를 만들어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반대쪽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를 위해 목숨이라도 건 듯 굴지만, 그게 안 된다고 정말 '땅을 치며 오열할' 인사들이 그 안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셈법은 고스란히 국민의힘 동료 의원들의 셈법이기도 하다. 대선이 있고 2년이나 지난 뒤에 열리는 총선에서 100석 조금 넘는 현 의석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여당이어야 하겠는가, 야당이어야 하겠는가? 2020년에 더불어민주당이 누린 '코로나19의 행운(?)'이 2024년 총선에서도 여당에게 반복되길 바랄 수 없을 바에는 대선 한 번 더 지는 것쯤 대수도 아닐 것이다.

대선 직후에 있을 지방선거가 문제라고? 그것도 겉보기와는 다르다. 허니문 기간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대선 승리 정당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들 하지만, 양대 정당 중심 정치의 역학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쪽이 '복수'나 '각성'의 외침을 부르짖는다면, 오히려 대선 패배 정당에게 그리 나쁘지 않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양대 정당 독점 정치에서 '대선'이란 끝도 없이 서로 주고받는 게임의, 재미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한 계기일 따름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게 '민주주의' 아니냐고. 1987년에 들어선 한국 민주주의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습 아니냐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금이 20세기 언제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런 제6공화국식 민주주의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 있다. 죽는 날까지 받아놓고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다. 사회를 이루는 우리 시민들이다. 기후 위기, 불평등 위기에 내몰린 뭇 생명이다. 이 잘난 1987년형 민주주의 때문에 우린 지금 죽어가고 있다.

양당 정치에 대한 모든 도전은 정당하다

그렇기에 나는 동료 시민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이번 대선에서 양대 정당 중심의 제6공화국 정치에 도전하려는 모든 시도는 정당하다고.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교란하고 타격하며 조롱하고 전복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정당하다고. 아니, 제6공화국의 황혼 속에 치르는 이 선거에서는 오직 이런 실천들만이 진정한 정치적 선택이자 행위일 수 있다고.

이런 시도는 여러 방향에서 전개될 수 있다. 가령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를 언급하며 말한 '제3지대'가 양대 정당에게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확장되는 것이 그 한 가닥이 될 수 있다. '제3지대' 후보 혹은 후보들이 양대 정당 독점 정치 타파를 보다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완주한다면, 그것 자체로 대선 이후에 제6공화국 정치에 계속 강력히 도전할 힘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의당보다 더 왼쪽에서 추진되는 '사회주의' 대선 후보 역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저 지겨운 제6공화국 정치의 협소한 스펙트럼은 그 바깥에서 시작된 도전을 통해 위협받아야 한다. 제6공화국 정치의 스펙트럼이 오른쪽으로 치우칠 대로 치우쳐 있으니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왼쪽 경계선 바깥으로 상상력을 넓히려는 노력이다. 이런 노력이 실제 정치적 선택지로 가시화한다면, 기성 정치를 타도할 시민들의 무기가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후보를 내세워 정치적 선택지를 넓히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 행동을 촉발하는 시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잘 설계된 보이콧 행위를 통해 유효표나 투표율을 줄이고, 그리하여 양대 정당 독점 정치의 정당성에 커다란 상처를 내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시도들의 선후나 경중을 가릴 때가 아니다. 무엇이 됐든 시급히 그리고 결연하게 추진해야 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더 많은 시도들을 전개할수록 좋다. 더 다채로운, 더 지독한 반란으로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뒤흔들어야 한다.

다른 모든 삶이 혼란에 빠져 있는데, 저 혼자 안정된 정치. 말기에 다다른 제6공화국 정치. 지금은 이것을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뜨릴 때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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