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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의』제6호

차가운 돌봄의 현실, '돌봄국가'의 대안


 

[권두언] 

 

장석준(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요즘 서점가나 언론에서 예전과 비교해 자주 접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돌봄’이다. 사회운동 현장에서도 ‘돌봄사회 전환’, ‘보편적 돌봄’ 같은 말들이 중요한 정책이나 구호로 빈번히 등장한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당직 선거 토론에서 이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2010년대에는 ‘복지국가’가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보수정당들에서까지 유행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돌봄’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돌본다’라는 우리말 자체야 그리 낯설 게 없다. 수많은 서민 가정이 자녀와 노부모를 돌보며 지금도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알게 모르게 이 고통의 크기가 전에 없이 커지고 있다. 자녀 돌봄의 무게 탓에 출생률이 유례없이 낮아지고 있다는데, 줄어드는 자녀 수에 상관없이 그 무게는 가벼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고령 인구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급증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심각한 노인 돌봄 문제가 대두한다. 
    이렇게 점점 커가던 압박은 팬데믹을 겪으며 너무도 극적인 규모와 형태를 띠기에 이르렀다. 자녀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노인 요양 시설이 대규모 감염의 온상이 되자 두 가지 진실이 갑자기 동시에 드러났다. 우선, 우리 삶이 그간 얼마나 심각하게 돌봄 활동에 의존했는지가 선명히 드러났다. 돌봄 활동이 삐걱거리면, 노동자의 안정적인 하루 노동도, 따라서 기업의 이윤도 있을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다른 한편, 그런데도 돌봄 활동이 그간 얼마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는지도 드러났다. 돌봄 활동을 비숙련 노동이라 치부하며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낮은 임금을 당연시해왔는데,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런 관행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선적인지 가르쳐주었다. 또한, 이런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던 기존 복지제도나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 역시 더욱 분명히 까발렸다. 
    최근 ‘돌봄’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팬데믹을 통해 드러난 이 문제의 심각성과 절박성은 앞으로 더욱 거대해질 기후급변의 위협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증폭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고 동시에 21세기 현실에 맞는 사회국가를 건설하려면, ‘돌봄’이 반드시 전환의 중심 가치이자 지향이 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 그간 진보정당이 발전시켜온 여러 정책과 실천들은 어떻게 변형되고 재배치되어야 하는가? ‘돌봄’이 중심 가치인 사회는 현 체제뿐만 아니라 과거의 복지국가와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하는가? 

*****        

    <보다 정의> 제6호는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짚어야 할 기본 사항과 쟁점, 고민들을 정리하는 글들을 모았다. 돌봄사회로 나아가는 전환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출발점으로 삼을만한 글들이다. 
    우선 윤자영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우리는 돌봄 국가를 원한다”는 돌봄이 현재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사회적 배경을 조망한다. 오로지 성장만을 위해서 달려오고 그 과정에서 파생된 온갖 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려 한 한국 사회의 한계와 모순이 돌봄 현실에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런 현실을 극복한 돌봄 국가의 기본 원칙과 얼개 또한 명쾌히 정리한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으로 출마하고 현재 정의당 대변인실에서 활동하는 김가영“여성이 멈추면 일상이 멈춘다!”는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늘 돌봄 활동을 떠맡는 여성의 시각에서 돌봄 문제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핀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관점이 배제된 정책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돌봄 문제가 오늘날 여성 정치의 중심 무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 남우근 정책위원장의 “돌봄노동의 현황과 대안”은 돌봄과 노동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만나는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미 150만 명에 육박하는 돌봄노동자들은 플랫폼노동자들과 함께 21세기에 불안정-저임금 노동자의 핵심을 이룬다. 이 글은 돌봄노동자의 임금 및 숙련 향상, 돌봄 활동의 공공성 강화 등에서 돌봄과 노동의 공통 대안을 찾는다. 
    이무열 지리산정치학교 운영위원장은 “포괄적 돌봄이 가능한 지역의 발명”에서 지역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는 돌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보여준다. 기업이나 국가의 역할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돌봄 영역에 지역사회라는 제3의 주체를 채워 넣는 것은 역으로 호혜적 돌봄을 통해 지역사회 자체를 순환성, 관계성 등이 살아 있는 대안적인 장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 글은 각 지역에서 펼쳐지는 그 사례까지 생생히 소개한다. 
    정의정책연구소의 이동한 연구위원과 박항주 기후위기대응센터장이 공동 집필한 “돌봄 일자리보장제, 그리고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에서 진보정당이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이 무엇인지 밝힌다. 정의당에서 이미 검토되고 있는 일자리보장제가 돌봄의 여러 영역과 만나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시도가 지역순환경제로 진화할 가능성 역시 가늠해볼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정의당 지역조직들이 각각의 조건 속에서 세밀하게 발전시켜나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김현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돌봄을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나누기, 현실 진단과 대안”은 지역에서 돌봄 쟁점을 다루기 위해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관계와 역학을 다룬다.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자생력이 약한 데 따른 문제점을 짚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전개되는 통합돌봄의 중요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분권형 복지행정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임정기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와 야당의 돌봄 정책 : 돌봄의제의 이상(ideal)과 규범적 철학의 부재”에서 이제껏 정부·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이 내놓은 돌봄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정부·여당이 여전히 시혜적 복지정책의 연장선에서 돌봄에 접근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은 돌봄사회 전환을 둘러싼 노동, 여성, 소수자의 여러 요구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이 글은 2022년 정의당 대선 공약의 성과와 한계도 함께 정리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호의 글들은 돌봄사회 전환의 방향을 타진하고 토론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이자, 출발점 성격의 제안이다. 정의정책연구소는 <보다 정의> 지면과 여러 공간을 통해 앞으로 이 토론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 #발간물#보다정의#돌봄#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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