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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지표경제민주주의와 정치

『보다 정의』제7호

GDP와 소선구제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넘어

 

[권두언] 한국 정치의 답답한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 
 
장석준(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여당과 원내 과반을 점한 제1야당 사이에서 극한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1980년대 민주화 시기의 정국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2000년대에 제1야당이 천막당사에서 장외투쟁을 벌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한데 이런 격렬한 투쟁의 쟁점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자유’를 부르짖지만, 그 실제 내용이란 대통령이나 그 주변, 제1야당 대표와 관련 인사들의 신상 문제다. 경제 침체나 한반도 긴장, 기후위기는 계속 손 놓고 쳐다보기만 하면서, 한국 정치는 복잡하고 난해한 권력 게임에만 여념이 없다. 
  본래 한국의 진보정치란 이런 정치 구도에서 벗어나 보자고 시작한 집단적 프로젝트다. 격렬한 투쟁을 하더라도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권익을 실제 늘리기 위한 투쟁을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실천하기에는 한국 정치의 기존 구도와 관성이 너무도 강력하다. 그래서 진보정당운동 안팎의 많은 이들이 실망과 회의를 표하는 실정이다. 진보정치 프로젝트조차 결국은 양대 정당의 권력 게임에 종속되어 허우적대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권 핵심과 야당 대표의 비리 수사 문제만 맴도는 정치에서 정의당 역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정의당은 이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름대로는 노력하고 있다. 오랜만에 집단적 노사관계법을 개혁하려는 시도인 ‘노란봉투법’ 입법에 앞장서고 있고,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여러 현안에 개입하려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민생’ 정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는 한다. ‘민생’은 한국 정치에서 오래전부터 정치 엘리트들만을 위한 권력 투쟁에 대비되는 정치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양대 정당도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자주 사용해온 전통적 용어이고, 진보정당도 받아들여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민생’이 ‘민중 생존권’의 약칭이라고 애써 부연 설명을 달면서 말이다. 
  그러나 다분히 궁색한 어법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일상어가 된 단어라 굳이 기피할 이유까지는 없겠으나, ‘민생 정치’라는 말이 양대 정당의 권력 게임에서 벗어나려는 진보정당의 지향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함은 분명하다. 한껏 저들만의 이전투구에 몰두하다가 주기적으로 ‘민생’을 내세우는 양대 정당의 행태를 너무도 강하게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에게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언어들이 필요하다. 단지 ‘민생’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새로운 단어 하나를 발명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수십 년 된 보수정치의 언어 창고를 재활용해야 하는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근본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다 정의》 이번 호는 국내총생산(GDP)을 대체하는 대안 지표 체계에서 그런 자원 중 하나를 찾으려 한다. GDP 대신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세계 곳곳에서 제기됐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상황에 맞는 대안 지표 체계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계속됐고, 이제는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춘 지표들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표들은 학계의 전문적 관심사나 아니면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쯤으로 치부되곤 한다. 우리는 우선, 이런 무관심과 오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확인한다는 취지에서 개발된 것이 대안 지표들이고, 따라서 이는 정치와 긴밀히 연결돼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앞장서서 대안 국정지표를 중심에 놓고 그 개선을 절박한 과제로 삼는 정치 문법을 개척하고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기존 한국 정치의 구도와 관성 전반을 바꿔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번 호는 이러한 대안 지표의 정치를 탐색하려는 첫 번째 시도다. 

  그런데 이런 시도와 함께 정치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 또한 여전히 중요하다. 비록 2020년 선거법 개정이 참담한 결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런 실패 때문에라도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에 다시 착수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연초에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발언 이후에 선거법 개정 논의가 다시 부각되기는 했다. 그러나 양대 정당의 주류는, 늘 그랬듯이, 전향적인 개혁에 나설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4월 선거법 개정 시한에 맞춰 개혁을 완료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선거 앞두고 법정 시한을 넘겨 선거법을 개정했던 전례에 비하면, 실은 지극히 정당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이번 개혁 논의도 졸속으로 끝내려는 의도가 감지된다. 
  선거법 개정 논의가 결국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다시 한번 진보정당운동의 무거운 책무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호는 대안 지표의 정치와 함께, 선거법 개정 논의와 이에 대한 정의당의 대응 방향을 또 다른 특집 주제로 다룬다. 

***    

  대안 지표의 정치를 다루는 특집에서 첫 번째 글은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있는 젊은 연구자 전병찬"삶의 질을 측정하는 대안 지표들이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다. 전병찬은 대표적인 대안 지표 체계들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에 맞는 대안 지표 체계를 고민할 때에 주목해야 할 바를 정리한다. GDP 말고 다른 지표들에 관해 잘 모르는 이들도 이 글을 통해 대안 지표와 관련한 기본 교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대환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대안 지표의 방향; 뉴질랜드 ‘웰빙 예산’으로부터 배운다"는 대안 지표의 가장 앞선 사례 중 하나인 뉴질랜드 ‘웰빙 예산’을 소개한다. 뉴질랜드 웰빙 예산이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대안 지표와 예산 수립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지표 체계를 신자유주의 시기의 낡은 정치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자 계기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안 지표와 대안적 예산안 수립을 연결하는 정치적 실험이 필요하다. 
  이동한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지역 실천과 지표 개발 사례: 브리스톨 원 시티 플랜과 좋은 일자리 지표"는 UN의 대안 지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지역사회를 개선할 실질적 도구로 만들려 하는 영국 브리스톨시 정부 사례를 검토하며, 여러 대안 지표 중 특히 노동 관련 지표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최근 시도들을 소개한다. 특히 대안 지표가 중앙 정치뿐만 아니라 지역 정치 차원에서도 창조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대안 지표와 진보정치의 모색: 정의당형 대안 지표를 향해"에서 진보정치의 여러 모색 가운데 하나로 대안 지표의 정치가 부각되는 이유를 짚는다. 또한, 정의정책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작업을 통해 정리된 정의당형 대안 지표 제안을 소개하며, 이를 활용하여 앞으로 타진해봐야 할 실천 방향들을 제시한다. 

  작금의 선거제도 개정 논의를 다루는 두 번째 특집은 윤재설 정의당 원내행정기획팀장의 "선거제도 개혁 관련 동향"으로 시작한다. 이 글은 현재 언론이 다소 어지럽게 전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 논의의 최근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보고한다. 선거제도 정국의 여러 쟁점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던 이들도 이 글을 읽으면 논쟁 구도와 합의 과제를 깔끔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의 "비례성이 강한 선거제도의 사례와 제도개혁 방향"은 선거제도 개혁을 고민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전 세계 선거제도의 이모저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그러면서 각국 사례의 검토를 바탕으로 한국 정치제도 개혁의 방향을 짚는다. 처음 듣는 용어나 복잡한 내용 때문에 그간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글이다. 
  박철한 정의정책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의 "한국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과 정치개혁: 정의당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중심으로"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전통적 선거제도 개혁안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정의당 이은주 의원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내용과 의의를 설명한다. 2020년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사태를 겪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어쨌든 현재까지는 이 방안이 정의당의 공식 입장인 셈이다. 이 글을 통해 이은주 의원안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비례위성정당 등을 방지할 방책을 놓고 더욱 적극적인 토론을 벌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공동행동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준우 변호사의 글 "2023년 지금 여기에서 대안의 선거제도 찾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선거제도 개혁안이 보다 전향적인 고민을 담아야 함을 역설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방안은 스웨덴, 덴마크에서 실시하는 권역별 개방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정의당 당원들은 앞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되어야 할 선거제도로서 이 방안에 주목하고 기왕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함께 토론,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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