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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제질서

[이슈 페이퍼] 일본의 대(對)한국 경제압박과 대응

  • 입력 2019.08.07 11:13      조회 731
    •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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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페이퍼190807-일본의 대한국 경제압박과 대응(수정).pdf

2019.08.07.                                                                                                                               김수현(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일본정부는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함. 7월 1일 반도체 제조과정에 필요한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한국에 대한 수출 장벽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한일 간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혼선과 갈등 양상
- 정부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발표하는 한편, 초기에는 부정적이거나 조심스럽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검토 중. 반면, 자유한국당 등은 ‘일본과의 기술격차 50년, 냉혹한 현실 직시’ 운운하며 정부 대응이 감정적이라고 비판
- 정의당은 일본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대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65년 체제 청산,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환경권, 노동권 후퇴 방지 및 대기업-중소기업 수평적 체제 실현 등을 주장하고 있음. 셋째 주장에 대해서는 찬반 여부를 떠나 진보정당다운 것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짐. 이에 비해 일각에서 반일 정서에 편승해 진보정당답지 않게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을 훼손할 수 있다거나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이다는 비판도 있음. 그리고 이들 주장을 통해 정의당이 그리는 한일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적 대안의 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내외의 궁금증이 있음. 이에 대해 나름대로 답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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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와 대응을 둘러싼 논란

- 일본 정부는 8월 2일 각의 결정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함. 지난 7월 1일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필요한 3대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조치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 일본 국내의 이성적 집단의 우려와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략물자로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즉 식품, 목재 등을 제외한 거의 전 산업분야에서 수출 장벽을 높이는 조치를 취함. 
- 이런 일본 정부의 행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제시하는 등 노력을 했으며 미국의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제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 ‘우리 경제에 대한 공격과 미래성장 가로막기’ 등으로 규정하며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더해졌지만’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를 표명함.
- 정부당국은 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업그레이드와 해외 기술도입 지원’ 등을 천명. 한편, ‘기술개발 등 필요한 경우로 인정되는 경우 환경절차 패스트트랙 적용, 특별연장근로 인가와 재량 근로 활용, 핵심 R&D 과제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예비타당성제도 개선’ 등 환경, 안전, 노동 문제에 있어 반개혁적 정책 추진 가능성도 시사함.
- 자유한국당과 수구적 언론 등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문제 해결’,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접근으로 한미일 동맹 훼손’ 등의 비판이 이른바 ‘토착왜구’ 논란을 빚고 대중의 반감을 삼. 이를 의식해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에 대해 비판. 그러면서도 민경욱 대변인 등이 소재와 부품 산업 육성 등 정부 대응책에 대해서도 ‘일본과 기술격차 50년, 냉혹한 현실 직시’ 등의 비판을 가함. 그리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는 한미 동맹 훼손’, ‘북한 위협에 맞서 오히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필요’ 등을 주장.
- 정의당은 일본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대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65년 체제 청산,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환경권, 노동권 후퇴 방지 및 대기업-중소기업 수평적 체제 실현 등을 주장하고 있음. 일각에서 반일 정서에 편승해 진보정당답지 않게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을 훼손하거나 지나치게 근본주의적 접근법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왜 정의당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와 대응 기조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할 필요.

□  일본의 대한국 경제압박 조치의 배경과 목적

- 일본정부 조치의 배경과 목적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과거사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갈등 및 일본식 해법 강제, 평화헌법 개정 등 전쟁가능 국가화를 위한 환경 조성, 한국 경제의 일본 추격 저지,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서 일본 위상의 제고 및 한국의 굴종 강요 등을 들 수 있을 것임.
 
▶ 과거사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갈등 및 일본식 해법 강제 
- 일본정부는 수출규제조치 발표 초기만 하더라도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 배상판결 등 과거사 문제에 연유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냄. 이후 WTO 협정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안보적 우려, 즉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에 소홀함으로써 일본 안보에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꿈. 그러나 과거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안보문제의 경제 연계에 대한 반대 등 과거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고, 일본보다 한국이 오히려 전략물자 관리에 철저한 객관적 상황에 반하는 주장임. 
- 아베 총리가 6일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접적인 배경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2015년 말 한일 정부간 ‘위안부(전시 성노예)’ 합의의 사실상 무효 조치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대법원과 정부 당국의 일련의 조치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음.
- 일본정부는 대한 경제압박을 통해 ‘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는 불법이 아니었으므로 배상 불가 입장 관철, 징용 등 모든 청구권 문제는 이미 해결, 다만 위안부 문제 등 협정 체결 당시 인지·포함되지 못했다고 한국 측이 주장하는 건은 민간재단을 통한 위로금 지원하되 최종적·불가역적 해법임을 분명히 한다’는 일본식 해법을 강요하고자 하는 것임.

▶ 평화헌법 개정 등 전쟁가능 국가화를 위한 환경 조성
- 아베 총리는 전후체제 청산, 평화헌법 개정을 필생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음. 아베 등 우익은 1945년 패전(일본에서는 ‘종전’으로 칭함) 후 미국 등 연합국이 전전 체제에 대한 청산과 반성, 전후체제를 강요했다며 그 핵심이 평화헌법이라고 규정. 그 자신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 주도로 자민당을 창당하며 주요 목표로 내건 것도 바로 평화헌법 개정이었으나, 1960년 ‘안보투쟁(미일안보조약개정 반대 투쟁)’에 의해 수십 년 동안 유보되었던 것을 이제 실현하겠다는 것임. 아베는 2차 집권 후 집단적자위권 해석개헌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안보법 통과 등을 통해 ‘보통국가화’라는 미명하에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시키는 데 있어 일보 전진을 이뤄냄. 하지만, 전쟁과 군대보유 포기를 명기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고서는 결정적 고비를 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 
- 7월 28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여당은 과반수를 획득했지만, 헌법 개정이 가능한 2/3 확보에는 실패함. 참의원 선거는 임기 6년의 참의원 중 1/2을 3년마다의 선거를 통해서 뽑는데, 자민당, 공명당의 연립여당과 개헌세력인 유신회 등은 자민당(이번 회 57+비개선 56=113), 공명당(이번 회 14+비개선 14=28), 유신회(이번 회 10+비개선 6=16), 합계 157석으로 전체 245석의 2/3를 넘지 못한 것임. 특히 자민당은 단독으로는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해 평화헌법 개정에 상대적으로 신중한 공명당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됨.(진창수,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 아베의 성적표” (성남: 세종연구소, 2019) 등 참조.)
- 하지만 아베 등 일본 자민당의 현 주류세력은 평화헌법 개정의 환경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임. 2020년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을 발판으로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는 한편, 일본 국민대중의 여론을 보수화시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획득 가능성 제고를 계속 추구할 것임.
- 이런 정치적 환경 조성을 위해 아베 등 일본의 우익은 대외적 적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음. 1990년대 후반 대포동 미사일 발사, 2000년대 초 이후 납치 문제 등으로 ‘북한 위협론(혐오론)’이 톡톡한 효과를 안겨주었으나 2018년 이후 일정한 변화를 맞은 상황. 지난 몇 년 동안 보수언론 등을 통해 확산된 혐한 여론(일본 내부의 병폐적 측면이 큰 원인이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극단을 오간 대일 정책이 빌미를 제공한 점도 무시할 수 없음)을 이용해 한국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계속 공격하고, 관계 전반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보수세력 결집과 여론의 보수화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임. 

▶ 한국 경제의 일본 추격 저지 및 한국의 굴종 강요
-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대한 경제압박 조치는 경제 관련 상식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임. 미중 무역전쟁, 기술전쟁, 환율전쟁 등 경제전쟁이 한창이지만, 이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이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막대한 대한국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 1965년 국교수립 이후 2018년까지 일본은 약 6,046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 중임. 2018년만 하더라도 약 241억 달러에 달함.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이익을 내면 그 주요과실을 일본이 먹는다고 해 일명 ‘가마우지 경제’라고도 불림. 그런데 한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면, 소재·부품·장비 등을 납품하는 일본 기업에 피해를 주게 되고 무역흑자도 줄어들 수 있음. 일본 기업 및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자임한 일본 경제정책에 대한 세계적 신인도도 떨어질 수 있음.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아베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임. 그런데도 왜 아베 정부는 이럴까?
- 필자가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최근 조치의 경제적 배경, 원인 규명과 대책 등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의 몫으로 돌리고자 함. 사실 경제전문가들도 경제적 합리성으로는 설명하기 힘든지 관련 보고서는 찾기 어려움. 설명에 나서는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배경과 목적이 주된 것으로 판단함.(최배근, “일본 경제침략의 목표는 한국을 희생으로 정상국가 지위의 복구,” 정의당 주최 토론회 자료집, 『아베 내각의 경제도발 의미와 우리의 대응』, 2019.7.25. 등.) 한일 간 총 GDP 및 1인당 GDP 격차가 급격하게 축소되고 메모리반도체와 휴대폰, 생활가전 등에서 한국의 완성품업체가 일본을 추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 기회에 추격의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것 아니냐는 것임(문재인 대통령도 ‘미래성장 가로막기’로 규정해 이런 판단에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됨). 
- 1965년 수교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1인당 GDP는 108달러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900달러를 웃돌아 약 9배에 달하는 격차를 보임. 그런데 2018년에는 한국이 3만 1362달러로 일본 3만 9286달러의 약 80%에 달함. 일본은 총 GDP 부문에서 1968년에 세계 2위에 오른 이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다 2010년에 중국에 내줌. 당시 일본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으면서도 1인당 GDP에서는 일본이 중국의 10배에 달한다며 국민들 삶의 질에 있어서는 현격한 격차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함. 그런데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이른바 ‘30-50클럽’에 세계 7번째에 들게 되는 등 한국이 1인당 GDP에서 격차를 축소하고 곧 역전당할 수도 있다는 상황에 아베 등 일본 보수 세력은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음. 
- 특히 다음 항에서 살펴볼 한반도비핵화 과정에서의 일본 패싱과 외교안보 부문에서의 일본의 위상 저하 가능성에는 위기의식까지 느꼈을 것임. 이에 그동안에는 한일 간에 정치·외교적 긴장관계가 조성되어도 경제는 무풍지대였는데, 역으로 총량 면에서 격차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장비 등에서 대일 의존도가 높은 경제를 이용해 한국을 길들이기 하려는 것으로 판단됨. 
- 참고로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간 주요 산업의 경쟁력은 섬유, 의류, 생활용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추세적으로는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위 혹은 절대열위상황임. 전기·전자산업은 일부 세부 업종의 경우 우위를 점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경쟁력이 열위이며 다른 부문과 달리 개선은커녕 악화되고 있음. 화학, 플라스틱·고무·가죽과 정밀공작기계 등 기계 산업의 열위 정도와 의존도가 큼. 일본 수입의존도가 50% 이상인 산업품목 수는 253개이며, 90% 이상인 품목의 경우 48개에 달함. 
- 물론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일 기초과학과 기술력 격차가 50년이라는 것은 별 근거도 없으며 과장된 것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요국 간 기술격차를 조사한 ‘2018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에 따르면 최고기술 보유국을 기술수준 100%로 했을 때 한국의 기술수준은 76.9%, 기술격차는 3.8년이며, 일본의 경우 각각 87.9%, 1.9년임.
- 소재·부품·장비 등 관련 산업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초과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의 지원 및 기업들의 노력이 강화되는 한편, 기업들이 일본 기업에 쉽게 의존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대기업-중소기업 간 및 기업들 간 상호 의존과 신뢰의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한다면, 자립성과 경쟁력 제고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임. 문제는 그것이 몇 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힘들고, 단기적 대책인 기술도입선 변화나 자금 확보 등에도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과 그 구성원들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임.
- 경제적 어려움이 현실화될 경우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저하되고 일본 정부에 대한 타협을 강조하는 세력과 주장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과거사 문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정책에서도 한국 정부가 일정한 타협에 응하거나 굴종을 하게 하는 것이 아베 정부의 노림수일 수 있음.

▶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서 일본 우위, 한국 열위의 수직적 질서 추구
- 19세기 중반 이후 서세동점의 제국주의적 질서 속에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보수적 근대화를 이루는 한편, 전쟁과 힘을 앞세운 강압을 통해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 대한 지배를 확대해 감. 마침내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으로 미국·영국이 주도하는 패권질서에도 도전하는 폭주를 거듭한 끝에 처참한 실패로 끝남. 그러나 독일과 달리 분단도 되지 않았고 동아시아 냉전과 한반도 열전으로 과거사는 적당히 덮고 그 책임자들 대부분이 주요 직위에 복귀하는 한편, 경제적 부흥을 달성하고 외교적으로도 미국의 주요 파트너로 화려하게 복귀함. 그것을 국제법적으로 공식화한 것이 1951년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체제임. 미국이 정점에 서고 일본이 핵심파트너로서 역할해 동아시아 냉전을 관리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한일관계에서도 관철시키려 한 것이 1965년 한일수교임. 
-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소련에 공동대응하는 전략적 이해에 따라 중국과 미국, 일본의 수교 등으로 크게 변화됨에도 불구하고 그 하위체제인 한반도 분단과 정전체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 세계적인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한반도는 북방정책에 따른 한국의 소련, 중국과 수교에 대비되는 북한의 고립 지속, 북한 핵 문제의 대두 등으로 대립체제가 지속됨.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대소 공동대응이라는 전략적 이해의 해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정냉경열(政冷經熱)’ 관계가 지속됨.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 현격해지자 미국, 일본 등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안보 부문을 중심으로 해서 점점 커졌고, 이제 경제 부문에서도 경쟁이 노골화되고 있음. 
- 이 새롭게 형성되는 미(-일) 대 중(-러)의 전략적 경쟁체제를 아베 정권은 인도태평양전략을 선도적으로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단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그 체제에서 누렸던 외교적, 경제적 위상의 회복을 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절대적 우위를 누렸던 전전 체제에서의 위상 회복을 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그러기 위해서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폭주했던 과거사를 봉합하고 미화하며, 자국에 대한 침공에 대해 전수방위(專守防衛)를 하는 데서 나아가 해외에서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려는 것임.
- 일본 보수세력은 한때 북일 수교 등을 성사시켜 자기 나름대로 동아시아의 종전 질서를 청산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의 위상도 제고시키려고 함. 그러나 미국의 간섭, ‘북한 위협론’의 대두 등으로 북일 수교가 여의치 않자,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형성에 자국의 이해를 앞세워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
- 6자회담 진행 및 무력화 과정에서 직접적 의제와 무관한 일본인 납치 등 자국 문제를 선결과제로 제시하거나 2.13합의 등에서 합의한 각국 분담의 중유 제공을 끝내 거부한 바 있음. 2018년 이후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형성-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은커녕 훼방꾼의 모습을 보여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회로 새로운 전기를 형성하기 위해 한미군사연습을 올림픽 이후로 미루기로 하자, 아베 총리는 “한미군사연습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함. 동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하자 방미해 일본인 납치문제, 모든 탄도미사일 폐기, 생화학무기 전량 파괴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으나 거부당하는 등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막지는 못했으나, 미국 및 한국의 보수세력과 공감대를 높이며 하노이 회담 무산에 일정한 역할을 함.
- 아베 정권 등 일본 보수세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일본을 배제한 채 빠르게 추진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설사 저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이해를 깊숙이 개입시키는 것과 함께, 동아시아 전략경쟁체제에서 미국을 정점으로 호주, 인도와 함께 중국 포위를 주도하며 한국을 한미일 3각동맹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하위파트너로 삼으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임.


☞  대응방향

□  정의당의 기본 입장

- 앞서도 밝혔듯이 정의당은 사태 발생 초기부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65년 체제 청산,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환경권, 노동권 후퇴 방지 및 대기업-중소기업 수평적 체제 실현 등을 주장하고 있음. 세 번째 사안의 경우, 소재·부품·장비 등의 분야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자립성을 제고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을 푸는 등 환경 및 안전을 훼손하고, 탄력근로제 확대 강행을 통해 노동권을 후퇴시키려는 기업, 보수 언론·정당, 정부당국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이기에 진보정당다운 것이라고 생각해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임.
- 이에 비해 첫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의 경우 일본의 폭주를 견제하도록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한 전술적 활용용인지, 아니면 이후 미국이 반대하고 정부가 주저하더라도 밀어붙여야 할 사안인지, 정의당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하며 분명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내외의 의견이 있음. 둘째, 65년 체제 청산을 주장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게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것인지, 셋째, 이들 주장을 통해 정의당이 그리는 한일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적 대안의 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내외의 궁금증에 대해 나름대로 답하고자 함.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이하 GSOMIA)는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11월 23일 체결됨. 애초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하려다가 국회와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국무회의에서 협정안을 비공개 의결했다가 밀실처리 비판에 밀려 체결이 무산된 바 있음. 박근혜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불편해지며 정지되었다가 북한 위협 제고를 빌미로 미국의 종용 하에 2015년 말 위안부문제 야합에 이어 촛불 시위가 이어지던 국면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격 체결된 것임.
- GSOMIA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첫째, 북한의 위협이 엄존하는 가운데, 일본의 우수한 미사일 탐지와 대북 감시 등 정보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고, 둘째, 북·중·러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에 대응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셋째, 앞의 이유들 때문에 미국이 이 협정 체결의 후원자이고 유지를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파기를 한다면 한미동맹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
- 파기론자들은 크게 파기론의 전술적 활용론과 상황론, 협정 자체의 문제점에 기반한 반대론 등으로 나뉨. 아직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세 가지 모두 일정한 의의가 있음. 그러나 이들 중에서 현재 한일관계 악화 방지를 위해 미국의 중재가 필요한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용하자는 전술적 활용론자들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끝내 실행될 경우 이탈할 가능성이 높음. 둘째, 상황론자들은 애초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안보적 불신과 전략적 경쟁 의지를 표방한 것인데, 그런 일본과 어떻게 비밀군사정보를 공유하고 안보협력을 할 수 있겠냐는 것임. 이들은 현재 상황을 나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미국의 압력이 가중될 시 다시 동요할 가능성이 높음. 셋째, 협정 자체의 문제점에 입각한 반대론자들 중 정의당은 일본의 대한 경제압박 초기단계부터 동 협정 파기 주장을 선도적으로 제기했는데, 현 상황을 계기로 대중적 관심과 이해가 제고된 상황에서 이슈화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 체결 당시부터 동 협정에 대해 강한 반대의사를 견지해옴.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음.
- GSOMIA는 첫째, 한미일 공동 MD 등 3각동맹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의 반발을 야기하며 진영 간 대립을 초래할 수 있음. 둘째,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형성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이와 연동된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 형성에 반할 수 있음.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미국이 설사 반대하더라도 파기하는 것이 현재 한국이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지역 평화-공동번영의 질서 구축에 훨씬 부합함. 셋째, 우리가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할 직접적 군사적 이유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일본이 이익을 보고 있음.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위성 등 정보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한미동맹을 통해 취득한 것 이상이 될 수 없으며, 휴민트 등 한국이 뛰어난 정보나 일본 쪽으로 발사되는 미사일의 초기 탐지에 필요한 정보를 한국 측이 제공해야 하는 등 정보 필요성, 유용성면에서 일본에 훨씬 이익이 되는 구조임. 이것을 상황론에서 이야기하듯이 일본에서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오는 가운데 지속하는 것은 배알도 없는 행태임.

▶ 65년 체제의 청산
- 65년 체제는 1965년 한일수교 당시 미국의 종용, 경제개발의 급박성 등을 빌미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한일병합의 불법성, 원천무효 선언 등)에 기초한 과거사 청산(불법 지배에 대한 일본국가의 배상 등)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끊임없이 현재에 갈등을 재생산하고 미래의 평화로운 관계 도모를 훼손하는 불평등하고, 단기적 안목의 경제지상주의적 체제임. 냉전의 전진기지로서 요구받은 수직적 체제로서 반성과 화해, 연대에 기반한 공동체 형성에 반하는 반평화체제이자, ‘민족중흥’을 위한 압축적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역설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종속을 구조화하고, 식민통치 피해자의 인권과 노동의 권리를 압살한 반민주체제임.
- 65년 체제 청산은 당연히 상기 65년 체제의 문제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평화와 공동번영, 민주주의와 인권 창달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국내-한일관계-한반도 및 동아시아 차원에서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임.
- 65년 체제는 1965년 체결, 비준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의 조약에 기반을 둠. 한일기본조약은 2조에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는데 합법이지만 해방을 기점으로 비로소 무효가 되었다는 일본의 입장과, 병탄 자체가 불법으로서 원천무효임을 주장하는 한국의 입장을 봉합해 각자 해석에 맡긴다는 식이었음.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 자체를 불법적 행위로서 규정하지 못했기에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약칭, 청구권협정)’을 통해 사실상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돈을 받고, 그나마도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음. 
- 이에 따라 지금도 일본정부와 법원은 구일본군위안부(전시성노예)와 강제징용자(전시노예노동자)에 대한 배상이나 개인청구권을 거부하고 있음. 이는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는 이전 해석을 뒤집는 것임은 물론, 전시 인권유린 문제라는 인식과 그에 기반한 해결책을 부정하는 것임. 성노예 및 사실상의 노예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강제징용 등 전시 인권침해는 국제법상 절대적 규범인 강행규범(jus cogens)에 위반되는 범죄로서 그 피해자의 구제를 제한하는 국가 간 조약이나 합의는 강행규범을 위반한다는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 및, 전쟁범죄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2015년 12월 26일 유엔총회가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과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조치와 손해배상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에 저촉되는 것임.(심우정, “국제적 강행규범의 시각에서 본 강제징용 청구권의 소권(訴權) 소멸 여부”, 『서울국제법연구』Vol.26 No.1, (서울국제법연구원, 2019). ; 정구태, 김어진,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와 소멸시효-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기로”, 『법학논총』 vol.25 no.3, (조선대학교 법학연구원, 2018). 등 참조 바람.)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국가책임이나 전시인권유린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조차 다수가 국가배상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 
- 정의당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이런 65년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들에 연유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신 한일협정’ 체결 혹은 한일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1910년 한일병탄조약 등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원천무효를 선언하는 결의’를 추진할 것을 공약. 아베와 자민당의 공고한 권력 등 현재 일본 정치상황으로 보아 여의치 않으나,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발본적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음. 위 두 제안 중 후자는 2010년 한일 지식인 1000명이 발표한 ‘한일병합조약 무효’ 공동성명을 양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화하자는 것임.

▶ 과거사 청산에 기초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위한 ‘신 한일관계’ 구축
- 한일관계에서 과거사-미래의 관계에 대해 ‘과거사와 미래를 분리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를 지향하자’거나, ‘완전한 분리 접근이 현실적이다’, ‘과거사 핵심 문제를 사죄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미래도 없다’는 각종 견해가 있음. 정의당의 기본 입장은 과거사와 미래는 옷감의 씨줄, 날줄과 같은 관계라는 것임.(노회찬, “역사·영토분쟁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공생의 공동체를 향해”, 무라야마 전 총리 초청 정의당 주최 토론회『동아시아 평화와 올바른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좌담회 자료집』, 2014.02.12.) 씨줄과 날줄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제대로 된 옷감이 만들어질 수가 없듯이 과거사 청산과 바람직한 미래는 떼려야 뗄 수가 없음.
- 미래를 이야기하더라도 어떤 미래냐, 바람직한 미래는 전쟁과 침략, 식민과 수탈의 과거사를 잊거나 미화하는 가운데서는 불가능함. 또한, 자신이 잠재적 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를 봉쇄하고 압박하며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미래는 과거의 재연이기에 단연코 거부하며,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위한 협력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선도하자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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