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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그래도 진보정치] 단일화를 거부하라

  • 입력 2022.01.07 13:24      조회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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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선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밀리자 국민의힘 주변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도 조심스레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이 이야기된다. 선거 막판에 결국은 닥치리라 예상되던 단일화 정국이 윤석열 후보의 부진으로 조기에 열리는 양상이다.

정치를 여전히 양대 정당 중 한쪽으로 다른 한쪽을 심판하는 게임으로 본다면, 단일화를 해서라도 일대일 접전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이 논리가 거의 수학 공식처럼 적용된 대선이 이미 있었다. 2012년의 18대 대통령 선거다. 이때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득표율 합계는 무려 99.57%였다. 둘 말고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진 0.43% 안에 든 나 같은 유권자는 마치 외계인이라도 된 듯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결과였다.

한데 이런 선거로 들어선 정치 지형은 어떠했는가? 정부는 무능했고, 국회도 하는 일이 없었다. “이게 나라냐?”는 참담한 물음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행어였다. 변화의 조짐은 2016년 총선과 함께 나타났다. 야당 쪽에 더불어민주당 말고 국민의당이 더 생겨 여당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 같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유권자들은 복수의 선택지를 슬기롭게 활용해 새누리당을 심판했고,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했다.

국회가 이렇게 구성되었기에 그해 겨울 칼바람 속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외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촛불 시위의 직접적 효과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후 바른정당을 창당한 새누리당 탈당파 의원들을 통해 새누리당 쪽까지 복수 정당 구도로 바꿈으로써 원내에 탄핵안 가결 연합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양당 구도 아래에서 한국 사회는 정체했고 다당 구도에서는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이것이 ‘촛불혁명’의 신화 이면에서 실제 작동한 정치 논리이며, 우리가 2010년대의 정치 경험에서 건져내야 할 진짜 교훈이다.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과오는 집권 초기에 다당 구도를 활용해 협상과 합의에 따른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고, 종국에는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까지 급조해 정치 지형을 양당 구도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국민의힘과 합작하여 완성한 것이 2012년 대선의 반복인 이번 대선 지형이다.

지금 논의되는 단일화는 이 과정을 더욱 돌이킬 수 없게 굳히려는 것이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에서든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대선 이후 정치 지형은 양당 구도로 더욱 단단히 고정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답답했던 상황의 부활이다. 더구나 양당 독점 정치와 한국 사회현실 사이의 간극은 그때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 그만큼 낡은 정치가 초래하는 사회의 피로감도 더 심해진 상태다. 그런데도 단일화가 반복되어야 하는가?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선 이후에 양당 독점 정치의 구심력이 최대한 약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본래는 선거 이후에 양대 정당 중 패배한 쪽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약해지면서 정치 지형이 요동치게 마련이다. 양당은 이를 잘 알기에 어떤 식으로든 동요를 막으려 하며, 어쩌면 단일화 같은 시도는 대선 승리 자체보다도 선거 뒤의 이런 격동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책략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양대 정당 이외의 정치 세력들이 해야 할 일은 단일화일 수 없다. 오히려 완강하게 버텨야 한다. 양당 구도의 유지와 강화로 이어질 어떠한 시도도 거부하고, 완주를 통해 양대 정당이 아닌 선택지에 고뇌 어린 한 표를 던지는 시민들의 존재를 가시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힘으로 대선 이후 기존 정치 지형의 원심력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돌출시켜야 한다. 99%의 투표자가 저 둘의 연극에 동원되는 꼴을 다시 겪지는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당장은 당신들의 역사적 사명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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