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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팬덤정당과 대중정당

  • 입력 2022.08.02 03:05      조회 617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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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지현 당시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긴급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수 지지자들이 특정 정치인을 광적으로 지지해 일반당원 나아가 대중과 갈등을 일으키는 ‘팬덤정치’란 인터넷시대, 그리고 ‘탈진실시대’에 나타난 최근의 현상이다. 그러나 소수 열정적 활동가들과 일반당원·유권자 간의 갈등과 긴장은 선거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20세기 이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왔다. 현대정치는 핵심에 대중정치인이 있고 그를 중심으로 열정적 활동가·지지자들이, 그 밖에 일반당원, 그리고 제일 밖에 유권자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대중적 정치인으로부터 일반유권자까지 네 개의 동심원이 있다. 정당과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넷이 서로를 ‘교육’시키고 강화하는 ‘상호작용의 선순환’을 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 같은 선순환이 깨어지고 긴장을 일으키는가 하면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주목할 예는 독일 등 유럽 사회민주당이다. 20세기 초까지 노동자 등 민중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투표권조차 없었다. 사회민주당은 노동자정당, 즉 ‘계급정당’으로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했고, 그 덕으로 이들이 투표권을 얻으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곧 ‘3분의 1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지지율이 3분의 1을 넘지 못해 만년 야당에 머문 것이다. 이를 넘기 위해 사회민주당은 계급정당을 버리고 ‘대중정당’을 선언했다. 이는 ‘계급성’을 강조하는 핵심활동가들과 유권자의 ‘대중성’ 간의 갈등을 야기했다. 강성활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정당으로 나아간 사회민주당은 중간층 등의 지지를 얻어 집권에 성공했다.

  반대 예는 민주노동당의 친북 논쟁 등으로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이 2008년 탈당해 만든 진보신당이다. 이 당은 높은 정치의식과 헌신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진성당원으로 한국 정당사에 새로운 정당모델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분열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 총선에서 실패했다. 노·심 의원은 진보통합을 주장했지만 대중성보다는 이념성을 강조한 활동가들은 이를 부결시켰고, 이들이 탈당해 통합진보당을 만들면서 진보신당은 활동가들만 남은 ‘정치서클’로 전락하고 말았다.

  위의 경험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이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논쟁이며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팬덤정당, 팬덤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팬덤정치는 대중과 당원들을 단순한 ‘정치소비자’나 수동적 유권자를 넘어 적극적인 정치주체로 만들어준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소수 열성지지자들이 정치와 정당을 좌지우지함으로써 정치인, 활동가, 당원, 유권자 사이의 선순환을 파괴한다. 특히 SNS 등 인터넷시대와 결합해, 자신들의 신념에 부합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에 의해 맹목적 추종과 반(反)지성주의로 나아간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진짜 문제는 정당의 목적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승리하는 것인 반면 팬덤정당은 일반유권자, 특히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멸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정치로 인해 이를 벗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팬덤정치가 대선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됐지만, 자성보다는 졌지만 잘 싸웠다는 ‘졌잘싸’로 나아가고 지방선거에서 송영길·이재명 의원이 돌려막기와 ‘셀프공천’으로 출마했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연이은 패배와 ‘사법 리스크’ 등에도 이 의원을 둘러싼 팬덤정치는 바뀌지 않았고,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섰다. 팬덤세력의 영향력이 워낙 큰 데다가, ‘내 편이 지고 우리 당이 이기느니, 내 편이 이기고 우리 당이 지는 것이 낫다’는 ‘정파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의원이 여러 문제로 강한 ‘방탄조끼’가 필요하고 이번 당권은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권을 못 차지해 우리 편이 공천을 못 받고 우리 당이 130석을 차지하느니 100석밖에 못 차지하더라도 우리 편이 공천을 받아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가 무능과 오만으로 집권 초부터 죽을 쑤고 있으니 혁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당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중장기적으로는 팬덤정당이 ‘자멸의 길’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은 2022년 8월 2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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