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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서평35] 심상정 후보가 불붙인 '주4일제', 지금 가능한 현재다.

  • 입력 2021.10.31 17:51      조회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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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주요 정당 후보들이 얼추 주요 공약을 모두 발표한 마당이지만, 시민들과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회자되는 공약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공약은 고사하고 '고발사주'와 '대장동' 등 과거의 비리와 의혹을 서로 덮느라고 바쁜 상황이어서 국민들의 불신만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발표되어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공약이 바로 '주4일제'다. 어째서 심상정 후보가 내놓은 다양한 신노동 공약 패키지 가운데 유독 주4일제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지는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19가 2년 가깝게 길어지면서 그 동안 재택근무나 원격근무, 또는 단축근무를 경험한 직원들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들의 최근 실제경험은, 비록 주4일제를 자신의 직장에서 실시한다고 해도 크게 업무 수행의 차질이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직관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국면이 주4일제의 '자연실험실' 역할을 해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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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주4일제는 아직 낯설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 52시간 제한을 두고 씨름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심지어는 주52시간제한도 임시 중단해야 한다는 대통령 후보까지 있는 판에, 여전히 연간 2,000시간에 육박하는 세계최장 노동시간 국가중의 한 나라에서 주4일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주 5일제를 제도로 도입한 것이 2004년이니, 이미 17년이나 지날 정도로 오래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얘기가 나온지도 꽤 되었다. 그런 마당에 코로나19거치면서 학습한 경험이 겹치면서 주4일제가 전문가들이 예기치 못한 호응을 얻는 것이 아주 얼토당토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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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번역출간된 지는 1년쯤 되었지만 주4일제를 주제로 온전히 조사연구를 한 단행본이 번역되어 있다. 미래학자이자 컨설턴트로 알려진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Kim Pang)의 쓴 <쇼터(Shorter)>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임금 삭감없이 주4일제(또는 노동시간 단축)달성했던 전 세계의 100여개 기업들을 인터뷰하고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이들이 어떻게 주4일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어떤 단계를 밟아 도입했으며, 그 결과는 어떤가에 대해, 잘 알려진 디자인싱킹 방법을 틀로 삼아 풀어내고 있다. 그 무엇보다 실제 사례를 가지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심층인터뷰로 살펴본 주4일제 질적조사'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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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기준으로 주4일제의 몇가지 궁금증을 공유해보자.  
첫째, 주4일제는 누가 도입하는가? 경영자의 결단? 노동조합의 요구? 단체협상의 결과? 국가의 제도화? 대체로 창업주의 결단이 대부분이란다. 그 가운데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창업자 자신이 지독히 과거에 과로노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스스로 창업하면서는 그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더이상 하지 않기로 결단하면서 주4일제를 시도했단다. 

둘째, 주4일제는 많은 선입견과 달리 이윤 많이내는 대기업이 선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오히려 아마존은 임금을 줄일 목적으로 일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단축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주4일제를 한 많은 기업은 임금삭감없이 경영적 변화를 시도하기 좋은 중소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첨단이라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데 앞장섰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1990년대 실리콘 밸리가 부상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미화하는 새로운 노동, 성공 모델이 등장했고, 일 중독자들이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과도한 노동이 자랑스런 훈장감으로 대우받았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과도한 노동은 누군가에게는 부를 안기는 원천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짐이 되었다." 

저자가 사례를 든 기업들은 근무시간 단축 + 임금유지 + 동일한 생산성과 수익성 + 고객서비스 수준 유지(영엄단축 안함)를 한 기업들인데, 이들 기업가운데는 물론 소프트웨어 기업등 첨단 기업도 있었지만, 자동차 수리센터, 콜센터, 양로원 등 대단히 다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기업들이 한창 잘 나갈때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위기와 직원이탈 등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돌파 해법으로도 주4일제가 도입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째, 주4일제를 도입하면 기업은 수익이 줄고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가?  저자는 역으로 주4일제로 직원들의 능률이 올라가고 회사 전체 생산성이 향상되는 수 많은 사례를 든다. 특히 저자는 한국의 기업 사례를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한국 유기농 화장품 제조 기업인 에네스티는 2010년 들어 주4일 근무를 실험하기 시작했고, 2013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했다. 그 후 3년 동안 에네스티의 총매출은 60억원에서 2016뇬 100억원으로 증가했고, 직원은 32명에서 50명으로 늘어났다"고.

오히려 저자가 강조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왜 실리콘 밸리 등 혁신 기업들이 그간의 생산성 향상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에 사용하지 않고 주주를 부자로 만드는 쪽으로만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에서 효율성을 높여 창출되는 가치는 직원이 아닌 소유주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근무시간 단축은 직원들에게 생산성 향상에 따른 혜택을 즉시 누리게 해주는 사회적 계약"이어야 한다면서 주4일제가 기업의 시혜가 아님을 강조한다. 

네째, 주4일제를 하기보다는 '탄력근무, 유연근무'를 하는게 더 현실적이고 좋지 않을까? 저자는 '유연성 낙인(flexibility stigma)' 문제를 들어 이 견해를 반대한다. 유연성 낙인이란, "유연근무를 선택한 직원들은 중대한 시기에 신뢰하기 힘들거나, 야망이 적거나, 다른 직원에게 여분의 업무를 지우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인터뷰 응답자의 발언을 길게 사례로 든다. "유연근무는 조직에 힘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유연근무를 하는 직원은, 조직에 고마움을 느껴야 하고, 그러면 조직에 혜택을 받고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직원 입장에서는 유연근무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자기 일정을 모든 직원에게 알리는 등 별도의 활동을 해야 하며, 유연근무의 효과를 입증해야 하므로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

따라서 유연근무를 무질서하게 확대하기 보다, 경력단절 여성에게 조차 차리리 모든 직원들이 주4일제를 함께 실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섯째, 주4일제는 그냥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업무수행방식, 사고방식, 문제해결방식 등 모든 직장의 패턴을 혁신하는 것과 동반되어야 한단다. 불필요한 회의를 대폭 혁신한다든지,  각 직원들에게 고도의 집중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준다든지 하는 다양한 변화를 수반해야 성공하는데 이는 직원들의 참여에 의해 이뤄져야 한단다. 

"주4일 근무제는 주말을 3일로 굳히는 개념이니만큼 매력적이지만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기업은 가뜩이나 바쁜 직원에게 스스로 업무수행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회사에 실존적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제도를 추진하면서 동료와 더불어 일하고 동료를 다루는 방식을 다시 고안하라는 개인적 과제를 부여한다."

여섯째, 주4일제는 이렇게 노동자와 기업에게도 좋지만 기후에게도 좋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근무시간이 1% 증가하면 에너지 사용은 1.3%, 탄소발자국은 1.3%증가하고, 전반적인 환경발자국은 1.2%증가한다. 연구자들은 주4일 근무제를 채택했을 때 직원의 통근시간과 직장의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들고 다른 요인도 작용하면서 국가의 탄소배출량이 16~30%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이렇게 주4일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근무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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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저자는 주4일제에 대해서 기업을 단위로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며, '우아한 형제들'을 포함해서 한국기업들도 자료로 다룬다. 물론 저자가 성공사례만 다룬 것은 아니다. 적지만 중도포기한 사례들도 다룬다. 

물로 이 책은 기업들이 주4일제를 경영적 결단에 의해서 어떻게 도입되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국가나 지방정부가 정책으로 이를 설계하고 법적, 제도적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주제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이 주제에 대해 단행본이 없다보니, 충분히 읽어볼마한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더 풍부하게 주4일제 미래를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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