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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재생에너지

#4. 기후위기 시대, 6공화국에서 대처 가능한가?

- 30년 이상을 책임지고 위기를 관리할 정치체제 필요
  • 입력 2021.06.03 15:06      조회 1103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탈핵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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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1. 집권당의 당론은 무엇인가?
 
지난 201610,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종합감사 자리에서 당시 환노위원장이던 홍영표 의원은 정부의 수소차 보급 지원 사업을 강하게 질타했었다. 그는 유일하게 수소차 상용화에 역점을 두는 곳이 현대기아차다. 자동차 산업의 흐름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심지어 자율주행 쪽으로 가는데 우리는 이런 국제적 경쟁에서 밀려있다10년 동안 수소차에 매달려 있다 보니 전 세계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은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때 정부 사업의 내용은 2030년까지 수소충전소를 전국 520여 곳에 설치하고, 이를 위해 당장 다음 해에는 산업부와 환경부 등 사업에 1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었다.

홍 의원은 신산업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소기업에는 지원도 않으면서 왜 현대기아차에 정부 지원으로 R&D를 하게 해주느냐며, 이 사업은 특정 회사에 대한 잘못된 특혜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부가 잘못된 시그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전 달에 열린 환경부 국감에서도 정부가 현대기아차의 로비로 말도 안 되는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년 예산에서 전액 삭감하도록 하겠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그의 지적은 대부분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계 친환경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에도 맞지 않고,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비중이 아주 작은 탓에 그린수소생산 여건도 전혀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소차 증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것이며, 수소차의 비용과 효과에 대한 정부의 검토와 논의도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기 대선으로 정부의 주인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뀐 다음, 청와대가 갑작스레 수소경제의 깃발을 들고 나왔다. 20191월 울산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수소차와 연료전지에서 세계시장 1위를 목표로 하겠다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소 연료전지와 그린수소 생산도 포함되긴 했지만 일단 방점은 수소차였다. 2040년까지 수소차 620만대 생산과 수소충전소 1200개 구축 등 사업이 제시되었고, 2020년 예산 중 수소경제 지원 관련 사업으로 총 4930억원, 이중 수소차 보급이 2272억원이 편성되었다.

사업의 내용과 구성은 2016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여당의 중진 홍영표 의원이 이에 대해 어떤 지적을 했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수소경제 로드맵이 발표되던 20191월에 홍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였다. 홍 의원의 입장과 의사는 여당 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일까? 또는, 대체 수소경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기후위기 대응에서 에너지산업 정책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수소 활용은 재생가능에너지 생산과 변동성 대응, 수송부문의 에너지 믹스 변화 등과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그만큼 적절하고도 신중하게, 기술과 시장에 대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 기반하여 탄탄한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정 재벌 도와주기나 이것도 해두면 좋겠다는 식의 접근으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이너서클의 누가 어떻게 다시 꺼내와 포장한지도 모를 수소경제 정책이 이렇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그린뉴딜이나 2050 탄소중립 전략에 들어 있는 다른 많은 정책들도 이런 꼴의 반복이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여야 누구 하나의 반대표 없이 국회 기후위기 비상 대응 결의안을 통과시킨 불과 몇 달 뒤,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게 뻔한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여당과 제1야당의 합의로 제정한 일 역시 이러한 모습의 연장이다. 요컨대, 너무도 중요한 기후와 에너지 정책에 대해 한국에서 책임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긴 시야를 가진 당론과 이에 입각한 대응을 체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정치체제는 이런 상황의 원인 또는 결과, 아니면 그 둘 다일 것이다.

 
2. 외환위기의 회고
 
몇 해 전 <이코노미스트>지에 한 경제칼럼니스트가 실은 글에는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지낸 강경식의 회고담이 소개되어 있다. 강 부총리는 퇴임 후 어떻게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지 않고 갈 수 있었을 것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았다고 한다(백우진, 2017).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9971110일 강 부총리와의 통화 이전에는 닥쳐올 외환위기의 심각성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해 초 한보그룹 부도 사태가 일어났고, 대통령의 차남과 측근들이 구속되면서 집권 말기 정권에 대한 지지는 급락했다. 김영삼 정부는 레임덕 단계를 지나 식물정권상태가 됐다. 기아차 법정관리와 금융개혁법 처리 문제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대외신인도는 하락했고 외화 유동성 감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책임 있는 자세가 없었고 모두의 관심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만 쏠려있었다. 대선주자들과 유력 정치인들은 역시 표가 될 만한 얘기가 아니면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도처럼 닥쳐온 외환위기 속에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그는 함께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하자는 이야기로 취임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강 부총리가 말한 역사의 가정은 만약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였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1997년 초 한보 부도로 정부 지지가 급락했을 때 내각제라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르게 되었을 것이고 곧 새 정권이 들어서서 집권 초기의 열정으로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환란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공조가 기본인 내각제에서는 어떻게든 위기를 막아보려는 행정부의 노력을 국회가 방관하는 직무유기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이 모든 주장은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레임덕이 구조적으로 불가피하고, 집권 기간의 1/4 가까이 사실상 국정 운영보다 차기 대선 준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행 대통령제와 비교한다면 의원내각제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당(집권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정당들)이 당의 입장을 가지고 국정을 돌파할 전략과 장관을 함께 내놓음으로써 과정과 결과에 대한 잘잘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중요하다. 내각제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외환위기의 경험은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무엇이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많은 이들이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위기 앞에서는 제왕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정작 필요한 일에 응답하지 않는 제왕인 것이 문제다. 이를 그람시의 표현처럼 현대의 군주로 바꿔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군주인 집권당과 청와대가 지성적으로 매우 둔감하고 안일한 것인데, 이것이 원인인지 혹은 다른 어떤 것의 결과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3. 기후위기 대응이란 무엇인가?
 
외환위기와 코로나 위기는 매우 고통스럽지만 어쨌든 고비를 넘어가고 극복된다. 그러나 기후위기라면 어떨까? 지금 정치권, 구체적으로 청와대와 국회 다수당의 모양새를 보면 기후위기와 그 대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있는지, 또는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2050 탄소중립은 간단히 말해, 지구온난화의 티핑 포인트로 지목되는 1.5도 이상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포함하는 주요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에너지, 수송, 건물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부문의 감축을 위해 비상한 수단을 적용해야 한다. 기술적인 전환뿐 아니라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이를 달성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과 산업 전환의 경우 2050년까지 향후 30년의 지속성을 가지고 일관된 정책 집행과 관리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측면에서도 정책의 수미일관함과 정교함뿐 아니라 유연하면서도 지속적인 적용이 필수적이다. 사실 기후위기는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 생물종의 일시적 멸종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다. 이전 지질시대에서의 생물 대멸종도 실은 몇 만 년에 걸쳐서 일어난 과정이다. 그러나 일시적 멸종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해 54일에 걸친 장마와 같은 날씨 변덕과 극한적 상태가 더욱 잦아지게 될 것이다. 티핑 포인트를 넘으면 그러한 더 많은 가뭄과 해일과 해수면 상승, 그리고 패턴이 허물어진 강수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결국, 상시적이면서도 고조되어 가는 저강도 비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럴 때 필요한 조치들을 상상해 보자. 어쩌면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여러 수준과 방식으로 지속된다고 했을 때, 현상유지 또는 생존을 위한 방책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막거나 그나마 견뎌내기 위한 전환의 방책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대비하고 소화해내는 정치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난해에 한국의 현실 정치가 보여준 기후위기 대응의 단면들을 돌아보자.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지 않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런 감소가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탄소중립으로 향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공식 정치의 언어 속에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은 적지 않은 진전일 수 있다. 국회에서 기후위기 비상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의 지시와 언급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도 발표되었다. 이제부터는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의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 지면에서 제안과 논박과 실천의 경합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민주당 바이든 정부가 탄생하면서 파리협정과 국제적 기후체제의 작동도 상당히 동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깊게 들여다보는 이들이라면 이런 표피적 선언과 실제 대응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탄소중립을 표방했지만, 그것을 실현할 큰 수단은 제시되지 않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의 2030년의 중간목표 상향도 유보되었다. 한국판 그린뉴딜은 녹색산업 지원책이 나열되었을 뿐, 온실가스를 줄이는 가시적인 지렛대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상황에 대한 적응을 마친 한국은 이미 성장 회복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도 다시 상향하고 있다. 에너지원과 설비 구성의 변화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의 징검다리를 놓아야 할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되었지만,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은 줄지 않고 신규 건설도 취소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의 선언 따로 정책과 집행 따로의 태도를 보고 부정직하다며 분개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조차 한국 정부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거나 예상하고 있을까를 물어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과연 어떤 정부가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제왕적이든 아니든, 대통령 개인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온실가스 감축을 외치고 공무원들을 다그치면 전향적인 정책이 나오고 온실가스 배출이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될까? 여당과 제1야당이 변심하거나 회개하여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서는 긴 시야를 가지고 장기적인 기후 비상사태를 염려하며 입법과 예산 편성에 나서면 될까? 우리는 그들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가? 청와대와 몸집 큰 정당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이론적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화석에너지 기업의 압력 때문인지, 또는 다른 무엇인지 충분히 따져보고 있는가?

 
4. 기후위기와 현 정치제도
 
한국의 정치제도와 구조,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 구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좀 더 따져보자. 사실 기후위기를 다루는 데 있어 지금의 5년짜리 대통령제는 최악의 제도라 할 수 있다. 보수적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티핑 포인트 시간표를 따르더라도, 기후 재난을 피하려면 2030년에 대략 지금의 절반까지 그리고 2050년까지 배출제로에 이르도록 일관되게 그리고 더욱 강화된 목표와 수단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해가야 한다. 이런 수치상의 목표 달성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그 전에 지구온난화의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더라도 기후를 어떻게든 안정화하고 장기적인 생태적-경제적-사회적 위기 상황을 견뎌내는 데에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시그널이 장기적으로 분명하게 유지되고 공무원과 기업, 그리고 시민이 이를 인지하면서 따라주지 않으면 더욱 큰 위기와 고통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다른 많은 정책들이 그렇듯,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5년을 주기로 리부팅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만이 모자라거나 잘못한 게 아니다. 전 정부들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이행 수단이 무엇이었는지는 잊히고, 서류들은 캐비닛으로 들어가고, 담당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교체된다. 4년마다 바뀌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주기적인 레임덕과 선거 준비시기를 빼면 결국 청와대는 대략 4, 국회는 3년씩만 일한다. 30년 뒤는커녕, 5년 뒤도 내다볼 틈이 없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인기 있는 정책과 예산이 우선 관심사가 되는 게 당연하고 그게 한국의 현실 정치다.

4년 중임 대통령제라면 더 나을까? 재집권에 성공하여 8년 임기가 이루어진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조금은 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개인의 의중에 모든 것이 맡겨진다는 점, 전문성과 민주성을 담보할 수 없는 선출되지 않은 청와대 인사들이 실제 정책을 좌우한다는 점, 집권당이 장관을 내각에 파견하지도 않고 정책과 실행에 실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의원내각제, 더 정확한 표현으로 의회중심제라면 더 나을까? 확실히 나은 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을 주요하게 관리해야 할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을 배출하는 집권당은 장관의 공과에 따라 그 결과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의 방법론을 두고 집권당과 장관이 한편이 되고 야당이 다른 한편이 되어 구체적으로 논박을 주고받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환경부 장관이나 산업부 장관이 설령 여당 소속 의원 출신이라 하더라도 집권당의 당론과 장관의 행보는 직접 관련이 없다. 장관은 청와대가 임명하는 것이고 여야 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인사청문회에서의 검증과 국정감사에서의 감시뿐이다.

의회중심제에서는 집권당이 재집권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은 어느 정도 유지된다. 그 정당의 예비내각(섀도우 캐비넷)의 산업부와 환경부 장관이 지속적으로 정부의 기후 정책을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야 정당 모두가 자신들이 내세운 당의 파견자로서의 장관과 총리, 그리고 예비 장관과 총리로서 정책을 제안하고 판단하며, 당론을 통해 이를 실현하거나 비판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제에서는 자신의 임기 뒤에 기후 정책이 탈선할 것을 걱정하고 책임지는 장관도 없고 정당이 장관을 통해 정책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이유도 없다. 당론 없고 책임 없는 정당과 장관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후 정책과 정치 제도가 갖는 관계에 관한 일부 연구들도 이런 측면을 보여준다. 국가의 환경정책은 정책결정 기구의 중앙집권성의 정도 및 사회세력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성 정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의원내각제의 국가들은 대통령제 국가들보다 국제 및 국내 기후 의무공약 설정에 적극적이며(Dolsak 2001), 의원내각제의 지도자들은 국제 조약을 비준함에 있어 대통령 체제보다 더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김의영 외, 2012).

물론 어떠한 정치체제든 장단점이 있고, 의원내각제가 기후위기 해결을 보장해준다고 말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핵심은 지금과 같이 주기적으로 리부팅되고 정작 중요한 의제와 쟁점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정치체제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5. 지금의 해법들로 충분할까?
 
역사적으로 큰 위기와 재난은 정치적 기회구조의 일부를 열어주기도 하며 다른 선택지를 위한 집단적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봉쇄 조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정하게 줄였고 불필요한 과잉 생산과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대한 일종의 예행연습을 해본 것이다. 그리고 기후위기는 비록 많이 미흡하지만, 파리협정을 통해 국제사회의 공식 논의와 책임 분담을 공식화했고, 각국 정부는 위험하고 유해한 에너지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공황과 양차 대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다중적 재난의 시대에 과거의 경험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기억을 소환한 그린 뉴딜도 그런 기획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들이 위기를 해결이라는 희망으로 연결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염려했던 것처럼, 재난을 배경으로 더 많은 불평등과 소수의 지배를 가속화하는 재난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크다.

관건은 지금 제안되는 정책과 현재의 정치 제도들이 우리 사회와 위험과 안전을 잘 다룰 수 있는 구조나 구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북미의 비판적 지리학자들인 조엘 웨인라이트와 죠프 만은 2018년 『기후 리바이어던(Climate Leviathan)』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기후위기 극복이 가능한지, 그리고 전 지구적 주권자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후 리바이어던, 기후 베헤모스, 기후 마오, 기후 X라는 네 가지 정치체제 이념형들을 제시했다. 지배적인 국제적 기후체제가 기후 리바이어던인데, 그러나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시장주의적 해법을 반복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도하에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중국으로 대표되는 기후 마오의 모델이 있지만, 저자들도 이런 모델이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서 그리고 지역 수준의 자생적 대응인 기후 X’를 설정해 보지만, 이것이 어떤 정치체제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영국의 기후단체 멸종저항은 기존 의회를 불신하며 기후 시민의회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 정치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는 알기 어렵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지질시대의 명칭으로 인류세를 넘어 자본세를 주창했던 안드레아스 말름은 최근의 저서에서 코로나 19 위기와 기후위기라는 만성적 위기와 관련해, ‘전시(戰時) 공산주의또는 생태적 레닌주의같은 구상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까지 주문한다.

어떤 게 정답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정치체제로 기후위기를 대응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오답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맞서고 견디는 정치와 사회를 위한 거대한 전환 앞에서 필요한 정치체제의 요소들을 나열하고 또 종합해 보아야 한다. 장기적인 시야, 책임성, 일관성, 반응성과 유연성, 통합성 모두가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담보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거대한 담론이자 구체적인 정책으로 소화하는 데에 현재의 정치 제도가 걸림돌이 된다면 이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연동형 비례제를 제대로 하거나 조금 확대하면 될 일인지,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면 될 일인지, 고착된 양당제를 깨는 제3당 운동으로 될 일인지를 제한 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내년의 대선보다 기후위기가 몇 배 몇십 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대선을 포함하고 또한 넘어서는) 정치 구상과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예컨대 지질시대의 단계와 이름마저 바뀌었다는데 공화국의 단계와 이름 정도를 유지한다는 게 말이 될 일인가. 새로운 공화국을 장기 비상시대를 맞이하고 인민들을 일깨워 세울 거대한 전환과 더 많은 민주주의의 공화국으로 구상할 일이다. 개헌이든 운동이든 그런 총론과 각론들이 과감히 펼쳐져야 한다.
 

 
[참고문헌]
 
Malm, Andreas (2020), 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 War Communism in the Twenty-First Century, Verso.
Wainwright, Joel and Mann, Geoff (2018), Climate Leviathan: A Political Theory of Our Planetary Future, Verso.
김의영 외 (2012), “국제화에 따른 환경정책 입법의 특징과 국회의 대응과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환경정책의 해외 입법례를 중심으로”, 국회입법조사처.
백우진, “[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15) 권력구조] 의원내각제였다면 외환위기 막았을까”, <이코노미스트> 1403(201710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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