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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전의 실현 의지가 사라진 정의당, 답해야 할 질문들

  • 입력 2022.06.14 14:25      조회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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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비전의 실현 의지가 사라진 정의당, 답해야 할 질문들-박갑주.pdf

 

박갑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정책부장을 거쳐 법조인이 되었으며, 민주노동당 이래 현재까지 진보정당 법률지원단 활동, 노회찬 의원 법률자문 활동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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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

  “우리 당이 뭔가 잘못됐다거나 많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당 내외에 널리 퍼져 있다. 어쩌면 스스로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공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이다).”(주 : 이재영, 2000.6.9., “새로운 당적 지도중심을 세우자”, 『진보정치』 10호.)

  다시 정의당 강령을 읽었다.(주 : https://www.justice21.org/newhome/about/info02.html)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복지국가’가 정의당이 만들고자 하는 국가 모습이었다. 조금 진부하고, 시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느낌이었지만, 나름 괜찮은 국가 비전이었다.
  문제는 강령을 읽으면서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필자가 강령이 이야기하는 비전이 실현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의당도 비전을 실현할 방법과 경로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며, 정의당의 실력과 조직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정의당은 꿈꾸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지 못한 도도(dodo)새가 멸종한 것처럼 강령, 비전을 실현할 의지와 경로, 주체와 조직, 언어와 문화를 가지지 못하는 정당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정의당은 다수파가 되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의지는 있는가? 집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평당원의 의견이다. 필자는 최근 선거 결과들이 낙담할 수준이고, 지방자치 선거 결과도 좌절할 정도로 실망스럽겠지만, 그래도 보수 양당의 힘과 자원, 기회에 투항하지 않고, 진보정당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실현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정의당원과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보고자 발제(發題) 같은 이 글을 썼다. 물론 한편으로는 정의당의 상태가 이 글에서와 같은 논의를 할 수 있지도 않고,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 글에서 지적하는 문제의식만이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자 했다.


2. 답변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들

  1) 정의당은 집권의 비전이 있는가?
  87년 이후 진보정당 역사를 살펴보면, 그래도 강한 정당을 만들려는 장기적, 조직적 기획과 집권 비전이 있었던 정당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정도일 것 같다.
  민주노동당을 설계한 주체들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요 운동권 정파가 합류하고, 대중조직이 결집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를 바탕으로 원내 진출을 하고, 진보정당이 보수 양당과 3자 정립을 한 후 집권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후 다시 만들어진 통합진보당은 진보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을 기반으로 원내교섭단체가 되고 집권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단숨에 원내교섭단체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원대하였다면 원대하였고 오류였거나 몽상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때 꿈꾸었고, 이루고자 했다. 그런데 현재 정의당은 다수파가 되고자 하는 꿈은 있는가? 집권하려는 의지와 계획이 있는가?
  그와 같은 비전 실현과 관련하여 정의당 강령은 “좋은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며, 이상은 항상 멀리 떨어져 보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힘이 크다고 믿는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다. 정치가 행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행복해질 수 있고, 정의당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의당이 만들려는 좋은 미래는 정의당의 정치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당 강령은 바로 그곳에서 멈춘다. ‘집권한 정의당’이라고만 호명(呼名)할 뿐, 정의당 비전을 실현할, 즉 ‘집권할 수 있는’ 방법과 경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현재가 그렇다. 다수파가 되겠다는, 집권하여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꿈을 꾸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부터 진보정당 운동의 한 순환(cycle)의 하락국면에서 마지막 노력이었던 연동제 비례대표 선거제도 개혁이 실패한 후 정의당은 더는 꿈을 꾸지 않게 된 것 같다. 가산을 털어 넣은 사업에 실패 후 부모도 돌아가시고, 그 많던 형제자매도 사라지고, 가세도 기운 집안 같다. 남은 자식들은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명절 때마다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소비하면서 그 와중에 누가 제수(祭需)를 더 챙겨갈 것인지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재 정의당의 모습이다.
  결국, 정의당, 정의당원 모두 집권 의지, 비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정의당 강령을 읽어도 뜨거워지지 않는 것이다. 정당의 강령이란 실현 가능하다는 기대가 있어야 하며, 그래야 정당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당원들에게도 정당의 비전이 실현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 의욕과 투지, 열정적 참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2) 정의당은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가?
  한때 진보정당 당원이었거나 현재도 당원인 사람을 만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의견, 질문을 듣게 된다.

  정의당은 한국 사회의 진보적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가? 정의당은 유의미한 원내정당이라도 될 수 있는가?(주 : 결국, 핵심은 ‘정의당이 정당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 참을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노회찬, 김어준, 진중권 외, 2010,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북스 중 노회찬, 「여는 글 –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정의당이 3~5%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안들에 대해서 여론에만 민감한 입장 외에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입장, 이슈(issue), 어젠다(agenda)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에서 당선 가능성은 아주 낮고, 비례에서 당선 가능성도 정의당 지지율과 연동하여 매우 낮아진 상태에서 자력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기획이나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받는 질문일 것이다. 특히 진부하고 관성적이며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것처럼 보이고,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10년 이상 고난의 대장정을 해보자는 정의당 내외부의 합의나 동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고참 활동가, 정치인들은 해볼 만큼 해봤다는 이유로, 신참 활동가, 정치인들은 당장 성과가 있을 활동을 해보겠다는 이유로 한 두 번의 도전 후 정의당에서의 활동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주 : 이럴 경우, 당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민주노동당 정책국장 이재영은 오래전에 ‘(당에는) 바보들이 앉아 있다. 왜냐하면, 이 당이 집권하려 하지 않는 당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은 투자하지 않는다. 결국, 오갈 데 없는 바보들이 당을 장악한다.’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이재영, “자연사냐, 도전이냐”, 이재영 지음, 이재영추모사업회 엮음, 2013, 『이재영 유고집 1 -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 미디어, 해피스토리, p.353.)
  나도 위와 같은 의견에 반박하지 못하며, 질문에 답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안토니오 그람시의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는 반면,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주 :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2006, 『그람시의 옥중수고 1』, 거름 중 「‘유물론의 물결’과 ‘권위의 위기’」, p.327.)라는 말을 뒤집어, 지금 상황에서 정의당이 소멸한다면 진보정당 전체가 청산될 것이므로, 새로운 것의 탄생을 위해서는 낡은 것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 새로운 것이 도래할 때까지, 정의당이라는 거름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싹트기를 희망하면서 정의당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미루어 두더라도 정의당의 지도자, 정치인, 젊은 당원들은 최소한 아래와 같은 질문에는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의당은 유효한 수단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답변을 준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

  1) 정의당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정의당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정의당의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과 같은 강령 수준의 답변과 모색도 필요하겠지만, ‘당(黨)’과 관련하여 진보정당, 대중정당, 원내정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집단적 답변이 필요하다.
진보정당, 대중정당과 관련해서 적어도 ‘당’이라면 진보정치 세력이 다수파가 되어 집권해보겠다는 목표를 위해서 모인 것이라는 합의, 그래서 당 또는 당원의 활동은 각자의 가치, 이념을 지키고, 내부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필요하다. 원내정당과 관련하여 원외의 조직, 운동과 합쳐져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과하여 다른 정당과 경쟁과 협력을 통해서, 집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법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2) 정의당은 어떤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
  ‘진보 세력의 경우 기성의 지배 이념과 경쟁할 수 있는 대안적 이념과 미래지향적 비전의 필요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를 바라는 집단의 경우 현실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반면, 현실의 변화와 변혁을 지향하는 정치 세력의 눈은 불가피하게 미래에 두어지게 된다.’(주 : 조현연 지음, 2009,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후마니타스, p.278.)

  국가의 모습에 대한 것이다. 국민에게 새로운 국가의 모델로 ‘사민주의 국가’이든, ‘제7공화국’이든 하나의 상(image)으로 제시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3) 정의당은 어떻게 다수파가 될 것인가, 어떻게 집권할 수 있는가?
  ‘정치라는 게임의 결과는 무수한 많은 잠재된 갈등 가운데 어떤 갈등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주 : E.E. 샤츠슈나이더 지음, 현재호·박수형 옮김, 2008,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p.115)

  정의당의 정치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갈등은 과연 무엇인가? 그와 같은 갈등이 있기라도 하는가? 정의당이 기존에 대변해오던 갈등의 집합, 갈등 간의 구조 또는 우선순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난 몇 년간 계속되어 온 실패를 역전하여 다수파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영원히 고립된 소수파로 남을 것인가?(주 : ‘모든 패배한 정당·대의·이익은 기존의 노선에 따라 계속 싸움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낡은 싸움을 포기하고 새로운 연합을 형성하고자 노력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는 기존의 싸움을 계속하려는 완고한 소수파들이 어리석게도 낡은 갈등 구도를 동결시켜 영원히 고립된 소수파로 남게 되는 경우이다.’ E.E. 샤츠슈나이더 지음, 현재호·박수형 옮김, 2008,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p.133.)
  현재 정의당 정치인들과 당원들은 노동, 젠더(gender), 환경, 기후, 동물, 지역, 청년 등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의당 정치란 개별적 이익, 관심의 단순한 집합일 뿐이고, 정의당은 그와 같은 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 집권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조직, 즉 당(黨)은 아니게 된다. 정의당 정치가 그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각각의 관심사로 분리되어 집합체의 힘은 약하고 가치들은 상호 충돌하게 된다. 이에 정의당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핵심가치(주 : 필자는 아래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먹고 사는 문제’(노동, 경제)와 ‘생명, 안전’(평화, 치안, 환경, 인권)이 핵심가치이고, 정의당 입장에서는 특히 근로대중의 ‘먹고 사는 문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를 중심으로 핵심 의제 전략을 수행하고, 자신이 대변하는 갈등의 공약수를 발굴하되, 그와 같은 공약수를 넘어서서 시너지(synergy) 효과를 가지는 다수파 지향의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주 : 이것은 정의당을 통한 근로대중, 서민과 중산층, 자유주의자, 소수자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이해관계의 연합으로 다수파가 되어야 할 것이며, 집권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관점으로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 정의당 정치에서 영향력이 큰 이슈였던 젠더, 청년의 문제도 포괄되고 대표되어야 할 것이다. 젠더, 청년의 가치만이 강조되고 다른 가치에 대하여 우위를 가지는 것처럼 다루어지지 않고, 정의당을 관통하는 핵심가치와의 연계를 통해서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대변해야 할 것이다.

  4) 민주주의와 진보적 의제의 관계는 어떠한가, 정의당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촛불과 탄핵을 배경으로 압도적 지지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촛불광장에서 드러난 대중의 개혁 열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탄핵을 가능하게 한 정치세력 간의 협력 분위기도 양 정치진영의 극단적 대립으로 소멸해갈 때, 정의당은 스스로 촛불 정신을 대변하면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로부터 정립(定立)되는 위치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는 진영적, 좌우적(左右的) 접근이 아니라 대중과 정책이라는 현실적, 상하적(上下的) 접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의당이 민주주의 확장과 진보적 의제 실현을 동시에 자기 임무로 설정하는 것이며,(주 : 이와 관련하여 정의당은 강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를 통해 대표될 때 민주주의는 강해진다. 더 많은 민주주의만이 시장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탐욕을 제어하고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불평등과 양극화로 피폐해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강화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라고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정당과의 연합,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의당은 그와 같은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5) 정치와 정책이란 무엇인가, 정의당의 정치와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정당이란 일정한 이념과 가치에 기반하지만, 그와 같은 이념과 가치가 현실화되는 모습은 정책의 생산과 실현,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통해서이다. 특히 국회라는 공간에서의 정당정치가 그러하다.
  그런데 필자는 정치가 다루어야 하는 핵심적 사안은 ‘먹고 사는 문제’(노동, 경제)와 ‘생명’(평화, 치안, 환경,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핵심적 주제가 그렇다면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쟁점을 그와 같이 ‘먹고 사는 문제’와 ‘생명, 안전’의 문제로 해석하고, 정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정의당에게는 한국 사회에서 압도적 다수인 근로대중의 ‘먹고 사는 문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먹고 사는 문제가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 여론에서의 지지율로 정당성을 보장하고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결정한다면, 굳이 정치, 국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주 : 가장 전형적 사안이 소수자의 인권, 권리와 관련된 것인데, 소수자인 그들은 자본주의적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여론(투표)에 의해서는 존재의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도, 사회적 자원을 배분받을 수도 없게 된다.) 이에 정치, 국회는 일종의 시장원리인 여론(투표)을 넘어서서 정당성을 보장하고 자원 배분을 조정하는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정당성의 보장 및 자원 배분의 조정은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라는 가치, 이념적 관점이 아니라 차이의 인정, 이해관계의 조정, 타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정책의 결정 과정 및 자원 배분의 조정과정에서 일방적 다수라는 힘으로 관련된 ‘법률’, ‘제도’를 통과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이 통과된 법률, 제도가 정치 및 국회의 외부에서의 압도적인 여론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그와 같은 법률과 제도는 규범적 힘(강제력)이 없게 되고, 반동(backlash)의 계기가 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가능한 법률과 제도는 치열한 논쟁과 합의, 타협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6) 진보정당에서 리더십은 무엇이고,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모든 (정치) 조직은 정강, 대표자(리더), 의사결정 구조로 구성되며, 진보정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진보정당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시대적 정합성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진보정당의 몫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고, 사람 질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고 체제 경쟁에 이길 묘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주 : 이재영, 2005.11.9., “민주노동당, 사람의 문제”, 『프로메테우스』.)는 이유에서 정의당에서 리더의 질과 양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란 지지자에게 의제를 제안하고,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그와 같은 의제, 메시지로 지지자, 대중을 소환하고, 자신과 조직의 행동과 결정에 대하여 설명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다. 문제는 현재 정의당에 그와 같은 리더가 부재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1세대 리더들이 부재하거나 그 영향력, 역할이 소멸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의당의 차세대 리더십이 형성되고는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당분간은 1세대와 함께 진보정당을 이끌어왔던 1.5세대 내지 2세대가 정의당을 운영하고 관리할 것이다.(주 : 한편 필자는 정의당의 당적 자원으로 정치인으로 성장한 기존 정치인들이 정의당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거나, 정의당에 복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당원들처럼 심각하게 회의적이다.) 그러나 차세대 리더십의 형성과 성장 없이 정의당의 미래는 가능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의당에서 (차세대) 리더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정의당은 현재로서는 다시 당의 비전과 성격, 비전을 실현할 경로와 방법 등에 대하여 기본적인 컨센서스(consensus)가 일치하는 ‘집단적 주도세력’이 형성되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주 : 민주노동당의 정책국장이었던 이재영은 ‘진보정당에 있어 지도력이란 집단적 주도세력에게서 나오고, 개인은 그 인격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 당의 지도력의 한계는 당을 주도할 집단이 채 형성되지 못한 데 있지, 개인에게 있지 않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재영, 2000.6.9., “새로운 당적 지도중심을 세우자”, 『진보정치』 10호.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정의당의 지도력과 관련된 상황이 바로 그런 상태이다. 이것이 정의당 비극의 근원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집단적 주도세력은 잠정적으로는 특정한 정치적 경향성(네트워크) (주 :  개인적으로 현재 정의당에 존재하는 여러 정치 그룹을 정파 수준으로는 평가하지 않는다. 정치적 경향성의 네트워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며, 대중정당에서 당내 정치조직은 정파보다는 그와 같은 형태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 경우 정치적 네트워크는 첫째, 당에 복무하고 당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며, 둘째, 경쟁하되 타협하며, 셋째, 과잉대표하지 않고 정치적 네트워크 간의 담합으로 경쟁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변자들의 경합과 협력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 또는 리더십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의견을 덧붙이다.
  첫째, 진보정당에서는 정치인의 중요성에 대하여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치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인 유권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표방하는 바를 … 인격화할 수 있는 것은 패인이기는커녕 결정적 승인일 수 있다’(주 : 이재영, 2008.4.11., “진보신당은 ‘있으면 좋은 남의 당’이었다”, 『레디앙』.)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둘째, 각 정치적 네트워크는 내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실력 있는 사람을 자신의 정치의 대표자로 내세워 실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였으면 한다.
  셋째, 정의당이 건강하고,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당에 대한 충성심, 당에 대한 기여 등이 당의 자원, 기회를 배분하는 기본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선적으로 지역 정치인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당의 관료 및 전문가에게 일정한 자원, 기회가 배분되었으면 한다.
  넷째, 청년 정치인의 경우에도 정의당 내부의 정치인으로 일정 기간 지역과 현장에서 활동을 거쳐 훈련되고 성과를 보인 사람들에게 자원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이상을 위해서 즉시 당내 선거제도 변경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기존 관행대로 진행될 경우 정의당에게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의식 정도는 공유되었으면 한다.

   7) 정의당은 고유한 조직기반 없이 생존할 수 있는가, 정의당의 조직기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성공한 배경에는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정의당은 조직적 지지기반도,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열정적으로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계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자신의 독자적인 지지기반 없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와 같은 안정적 지지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대변해야 할 계급, 계층, 이해관계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 정의당의 정치는 그때그때의 이슈와 쟁점에 대한 여론에 의해서 좌우되며, 불안정하게 부침을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당으로서는 자신의 고유한 조직적 지지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이해관계와 자원 배분에 기반하여 핵심적 지지기반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주 : 이와 관련해서는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2013,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후마니타스, pp. 162~172.에서 아이디어 일부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당 차원의 기획, 활동과 동시에 당원 각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당과 조직의 결합을 만들어 정의당의 기반을 확대하는 개별적 활동이 동반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 그 과정에서는 범진보 지지 성향 유권자, 일시적으로 국민의힘 지지 성향으로 이동한 유권자, 특히 정치고관여층인 유권자를 전향(conversion)시키는 것만큼 기존에 투표하지 않았던 투표불참 유권자나 새롭게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젊은 유권자를 동원(mobilization)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정의당은 그를 통해서 기존의 보수 양당 우위의 정당과 유권자 관계를 재정렬(realignment)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이다.(주 : 전향(conversion), 동원(mobilization), 재정렬(realignment)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크리스티 앤더슨 지음, 이철희 옮김, 2019,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후마니타스를 참조하였다.)
  한편 정의당이 조직적 지지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정의당의 정치가 이슈화되어 대중운동적으로 확산될 수 있게 하고, 반대로 그와 같은 대중운동이 정의당 정치로 수렴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사회운동 정당(a social movement party)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실천이 중요할 것이다.(주 : 조현연 지음, 2009,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후마니티스, 특히 pp. 229-230. 참조) 그리고 이것은 정당조직과 대중조직의 관계 설정의 문제이다.
  덧붙여 정의당의 조직기반과 관련하여 진보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관심사인가, 대중적으로 요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검토해야 하고, 진보 다당제라는 것이 정의당의 정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진보 다당제 자체가 정의당 정치 활동의 결정적 장애물이 아니며, 민주노동당 분당, 통합진보당 합당 및 분당을 겪은 입장에서는 함께 할 정당의 정강, 성격, 조직운영의 원칙, 문화 등에 대해서 공동의 인식,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면, 당장은 공동의 정치 활동이 요구되는 것이지 진보통합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한다.

  8) 정의당의 정치 언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정의당의 정치 언어는 정의당 내에서만 통용되는 문법, 어휘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중의 언어로 구성되고, 가능하다면 설득과 지지 획득의 대상인 상대방, 주류의 언어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정치인의 정치 언어는 정치 공급자의 입장에서 선 계몽적인 태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치 소비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풍자는 정치적 주장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조롱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정치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선도적일 수는 있지만, 고립적이어서는 안되며, 결국 문화적 낭만주의가 정치적 고립주의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4. 마치며 – 다시 진보정당의 꿈을 꾸었으면 한다

  꿈의 핵심은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정당의 비전도 마찬가지이다. 비전보다 중요한 것은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 경로와 방법이다. 결국 비전(vision)이란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의 문제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말하며 대규모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진보세력(정의당)에게 현재와 미래의 간극인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기제로서 이념의 발전과 리더십의 발전은 필수적인 것이다.’ (주 : 조현연 지음, 2009,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후마니티스, p.278.) 따라서 정의당이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비전의 내용과 리더십의 형성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정의당의 조직적 지지기반의 형성 문제가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현재 정의당에는 다수파가 되어 비전을 실현해보겠다는 의지와 계획이 없다. 그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 같은 것이 없다. 앞으로 10년 동안 2024년 4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2027년 3월 21대 대통령선거, 2028년 4월 23대 국회의원 총선거, 2032년 3월 22대 대통령선거 등 총 2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2번의 대선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이제부터라도, 오히려 이렇게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존속할 수 있는, 비약할 수 있는, 그래서 집권할 수 있는 10년의 비전과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질문과 답변 자체는 실천이 아니지만, 질문과 답변의 부재(不在)가 정의당의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므로, 우선은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부터 시작하자. 난상토론부터라도 시작하자.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진보정당의 집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의미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와 관성이라는 동굴에서 나와 다시 진보정치라는 황야를 거쳐 진보 집권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주 : 노회찬, 김어준, 진중권 외, 2010,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북스 중 노회찬, 「여는 글 –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는 노회찬의 말처럼, 아직까지는, 적어도 앞으로는 진보정당의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노회찬, 2010, 「여는 글 –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노회찬, 김어준, 진중권 외,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북스.
매튜 A. 크렌슨,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2013,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후마니타스.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2006, 「‘유물론의 물결’과 ‘권위의 위기’」, 『그람시의 옥중수고 1』, 거름.
E.E. 샤츠슈나이더 지음, 현재호, 박수형 옮김, 2008, 『절반의 인민주권』, 후마니타스..
이재영, 2000.6.9., “새로운 당적 지도중심을 세우자”, 『진보정치』 10호.
이재영, 2005.11.9., “민주노동당, 사람의 문제”, 『프로메테우스』.

이재영, 2008.4.11., “진보신당은 ‘있으면 좋은 남의 당’이었다”, 『레디앙』.
이재영, 2013, “자연사냐, 도전이냐”, 이재영 지음, 이재영추모사업회 엮음. 『이재영 유고집 1 -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 미디어, 해피스토리.
조현연 지음, 2009,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후마니티스.
크리스티 앤더슨 지음, 이철희 옮김, 2019,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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