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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 정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

  • 입력 2022.09.14 15:14      조회 1343
    • 박주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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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현 정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박주영.pdf
현 정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

(*.  박주영,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한계와 노동법적 과제”, 「윤석렬정부 출범 정책진단 토론회 5 – 노동분야 현황과 과제」, 민주노총/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주최 2022. 5. 27.자 토론회 자료집의 발제문을 재가공하여 싣습니다.)
 


박주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부원장

- 2000년 공인노무사라는 길을 통해 노동운동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다. 금속노조 법률원을 거쳐 지난 2017년부터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민주노총의 정책법규업무를 지원해왔고 2021년 설립된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연구기관 노동자권리연구소의 상임연구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1. 노동시장에 대한 문제의식, 그 첫머리에 등장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그러나 불평등 해소방안은 없었다


  얼마 전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이 공개되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 부인의 71억 원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삶의 과정을 일일이 알지 못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선거기간 드러난 그녀의 학위와 경력에 비추어 보면, 이는 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정상적으로 취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녀가 자신의 노동으로 일했다던 학교의 강사 이력들도 정상적인 학위취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여있지만, 백번 양보해도 그 정도 벌이로는 가당치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살아온 노동의 건강함과 불로소득 격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의 축적은 불평등을 먹고 더욱 성장한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보유가 백억 단위를 훌쩍 넘어서면서 과연 이들에게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현 정부 출범 이후 고용노동부가 꺼내든 업무계획의 첫머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첫 번째 추진과제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2022. 6. 23.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근로시간 유연화 확대와 성과급 임금체계 개편이다.
  정작 현 정부에게 있어 사회적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저출생고령화로 노동생산성과 성장잠재력 약화, 디지털기술발전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고용형태 확산” 등과 함께 그저 열거되는 현상에 불과할 뿐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불평등 구조에 대한 원인 분석은 없이 개인 능력에 따른 공정보상을 말하고 취약계층은 보호하겠다는 정부 대책은 ‘금수저(불평등조차)도 능력’이라는 불공정과 부정의를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용노동부 새 정부 업무계획」(2022. 7. 15.자)에서 제시된 방안(원인을 알고 싶지 않고!)은 그저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대처하기에 노동법·제도·관행은 낡았고 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여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근로시간제도와 임금체계가 국민의 삶의 질 형상과 기업의 활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현 근로시간과 임금제도가 경직되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초래했다는 것인지,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고 성과급 임금체계를 만들면 불평등한 부의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 노동수요독점 하에서 능력에 따른 임금협상의 공정성이라는 환상 
  국정과제에서 정부는 성과급 임금체계를 세대상생형 임금체계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는 성과급 임금체계가 젊은 세대에게 공정한(? 혹은 유리한!) 임금배분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환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직무능력이나 성과를 평가하여 임금을 지급하면 장년층이 받는 임금을 빼앗아 젊은 세대에게 임금을 배분할 수 있다’는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약탈적 사고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그러한 임금배분이 진정 노동자에게 유리하기는 한 것일까. 
  상품시장의 가격결정보다 비탄력적인 노동시장에서 임금결정은 상품시장의 수요-공급에서의 균형이나 공정 논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E. 포스너는 노동시장에서 사용자가 수요독점력을 갖게 되는 요인으로 ① 노동시장 집중(labour market concentration), ② 일자리 차별화(job differentiation), ③ 탐색 마찰(search frictions)을 열거하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임금수준을 탐색하여 이동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고(탐색 마찰), 수행하는 직무의 실제 내용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서 직무상의 차별성이 크거나 직무를 둘러싼 회사의 편의 조건(통근,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시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친밀도 등)도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일자리 차별화), 특히 노동자가 수행하고자 하는 직무의 성격상 그를 필요로 하는 노동시장이 좁거나 이러한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경우(노동시장 집중)에도 노동자의 노동공급 탄력성은 낮아지기 때문에, 통상 임금 변화에 반응하는 노동자의 민감도는 0.5 수준으로 비탄력적인바, 노동수요독점이 형성된다고 분석한다.(주: Eric Posner, How Antitrust Failed Workers,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pp.14-21.)
  이러한 조건에서 개인 노동자가 사용자와 개별적인 임금협상을 통해 유리한 임금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경쟁노동시장이라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현재 임금을 노동자가 발생시킬 수 있는 생산성(추가적인 수익의 양)인 한계수입생산물(marginal revenue product)에 일치시키겠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수요독점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에서 사용자는 한계수입생산물보다 낮은 임금수준에서 임금결정을 하게 된다. 근속이 낮은 경우 이직을 통해 높은 임금을 선택할 경우,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노동자의 노동시장 탄력성이 과거보다 높아질 수 있지만, 통상 장기적 성격을 갖는 고용관계에서 잦은 이직 이력을 가진 개인 노동자는 결국 노동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개인 노동자들이 동료의 임금협상액을 알 수 없도록 하고(심한 경우 자신의 임금액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서약서를 징구하기도 함), 동일노동을 하는 동료의 임금정보를 요구할 법적 권리도 없는 한국 사회에서 사용자는 차별적인 임금전략을 활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처럼 현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공급측면의 탄력성은 1 미만이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인 단체교섭으로 고용과 임금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노동자의 중요한 노동시장 전략이 되는 이유이다.

   2) 차별 해소 없는 임금계층화의 가중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에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차별 해소방안이 없다. 이미 기업 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뿐 아니라, 직군이나 직무에 따른 상이한 임금체계가 유지되고 성차별적 임금격차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차별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내부에 성과와 능력이라는 자의적 기준에 따라 또다시 임금체계의 계층화를 추가한다. 
  ‘복잡하고 계층화된 임금체계’는 분절된 노동자 간 이해충돌과 소통단절을 증가시키고 차별화된 노동자들 간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게 된다. 차별시정을 위한 법 제도적 측면에서도 계층화는 차별적 결과를 드러내는 비교나 차별의 합리성 부재를 논증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업장의 차별을 공고히 하고 노노간 연대와 결속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3) 차별적 임금체계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
  사회양극화와 시장불균형의 심화는 비정규직 남용, 재벌독점과 시장집중으로 인한 대기업의 이윤집중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노동시장 양극화의 책임을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위한 논거로 삼아왔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전반에서의 차별과 격차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 차원의 차별 해소만이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노동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한 ‘초기업수준의 협약구조’와 ‘단체협약 효력확장’ 등 집단적 노사관계제도의 근본적 변화가 요구된다.
  개별적인 성과가 아니라 공동의 협력적 성과를 이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적 고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연대임금 원칙이 수립되는 것,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정부 차원의 임금차별 개선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과 사회통합적인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하는 것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에는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이 배제되어 있다. 
  현 정부 국정과제에서 집단적 공동결정이 필요한 노동정책과 법제도에 대해 ‘노사의 자율과 합의’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개별 근로자나 근로자대표를 앞세워 자율을 포장하고 있다. ‘공정한 노사관계’에서 비치는 노동조합은 불공정한 단체협약과 불법파업을 하는 존재로서, 공정의 원칙에 따라 규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려졌고, ‘협력적 노사관계’에서의 주체는 노동조합이 아닌 노사협의회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2. 새 정부가 그리는 근로시간제도 설계에서 실근로시간에 대한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

  새 정부가 제시하는 근로시간제도란 ‘노사 자율에 의한 근로시간 선택’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첫째, 법정 근로시간 규제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변경하고, 둘째,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며, 셋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더 길게 연장하고, 넷째, 스타트업 기업과 전문직의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하는 것을 세부 추진과제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공정한 보상체계란 연공급 임금비율을 줄이고 성과급 임금비중을 높이는 것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1) 주 52시간 한도를 지키면서 월 단위 근로시간을 규율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정부는 근로시간제도의 핵심 개편방안으로, 주 최대 52시간의 틀을 유지하면서 월 단위로 규율하는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1주 40시간은 법정 기준근로시간을 의미하고, 주 52시간 한도란 연장·휴일근로 등을 포함한 ‘실근로시간’ 제한을 의미한다. 즉 1주 52시간 틀을 유지한다는 말이 사실이 되려면 ‘주 단위 실근로시간’인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준수되어야 한다. 그런데 월 단위로 근로시간 관리를 하겠다는 말은 ‘월 단위 평균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주 단위 실근로시간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어서, 결국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의 골자는 주 단위 52시간의 실근로시간 한도를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법정 40시간의 기준근로시간을 원칙으로 주 52시간의 실근로시간을 규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2018년 개정 근로기준법의 기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2)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늘린다는 의미
  정부는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 법정기준 및 실근로시간 주 52시간 제한이라는 근로시간제도의 제1준칙을 허무는 것에서 출발하여, 근로시간 유연화를 더욱 확장하는 방안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실근로시간 단축 원칙 하에 허용되는 근로시간 유연화는 법정 기준근로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차출퇴근제(주: 회사에서 정한 시간에 따라 통상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근로시간을 유지하되 근로자별로 출퇴근시간을 조정하는 방식), 자율출근제(주: 노동자의 재량으로 출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설정하면, 해당 근로일의 근로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퇴근시간이 결정되는 방식)를 비롯하여, 법상 예외를 허용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로시간제, 간주근로시간제 등 이미 다양화되어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단위기간 주 평균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하되 일 12시간, 주 52시간의 실근로시간 제한을 두는 구조를 취한다. 작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단위기간이 6개월까지 연장되어 충분한 탄력성을 확보했으나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해 일과 주 단위 실근로시간 최장한도를 정하였다. 
  그에 비하면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정산기간을 1개월(연구개발 등의 경우 최대 3개월까지) 한도 내에서 평균 주 40시간을 초과하지만 않으면 법정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 12시간과 주 52시간의 실근로시간 제한을 전혀 두지 않고 있다! 사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감안하여 도입된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특정일과 특정주의 실근로시간에 대해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로시간에 대한 유연성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비해 매우 높은 제도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정산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된다. 이미 연구개발업무 등에 대해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IT 분야 프로그램 개발직무에서 ‘크런치 모드’로 과로나 과로자살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법제는 이러한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 대한 안전방안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1년으로, 무려 12배를 늘리겠다는 것(국민의 힘 대선공약집)은 과로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에 미칠 심각한 위험이 불가피함에도 이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을 사실상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주: 1개월의 정산기간을 초과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근무일 사이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규정하였지만, 이마저도 근로자대표 서명합의만으로 예외를 허용한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를 할 사항으로 정산기간 내 반드시 일해야 할 시간대와 근로자가 일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반드시 일할 시간대를 정하려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시간대가 충돌될 경우 과연 근로자측의 의사대로 근로시간에 대한 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월 단위 주 40시간 초과분에 대한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하지만, 8시간 초과 휴일근로 및 야간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법적용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결국,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재량보다는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되는 업무량에 맞춰 노동자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인건비를 절약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3) 한계 없는 장시간 노동의 판도라 상자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스타트업이나 전문직종 기업의 근로시간 운영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는 경총이 연초부터 반복적으로 요구해왔던 전문직 근로시간 규제면제(White exemption)의 도입을 떠올리게 한다.(주: 이정,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의힘-경총주최 토론회, 2022. 5. 9.자)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구 및 개발, 방송출판이나 영화, 상품이나 광고의 디자인 고안 등 창의적 업무나 회계, 법률, 법무, 노무관리, 특허, 감정평가 같은 위임·위촉을 받아 상담·자문 등을 하는 전문분야 업무에 대해서 재량근로시간제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 팬데믹이나 워케이션(Work+Vacation) 트랜드에 따라 확대되고 있는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제도는 근무장소를 지정하지 않고 사업장 밖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근무 형태로, 현행 근로기준법상 간주근로시간제도를 통해서 이미 가능하다.
  버스운전기사의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 사회 문제로 드러나면서 지난 근로기준법 개정은 상당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도입 와중에도 그마나 근로기준법 제59조 근로시간과 휴게에 관한 규정의 적용제외업종을 축소하려는 노력을 했다. 현 정부가 재계의 입맛에 맞춰 간주근로시간제나 재량근로시간제도 아닌 일정 업종 또는 직종 전체를 근로시간 법규제 자체에서 제외하려 한다면, 장시간 과로노동으로 인한 위험사회를 개선하려던 그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조치가 될 것이다. 특히 임금이나 고용 등 근로조건 전반에서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일하는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마저 완화하려는 의도라면, 노동권 보호에 취약노동자를 무법지대로 내모는 꼴이 될 것이다.


3. 과연 한국의 현행 근로시간 법제는 경직적인가? 

   1) 1일 및 1주 단위 실근로시간 규율 실태
  정부는 경제단체들이 주도하는 친자본 언론을 앞세워 해외 법제에 비해 우리나라의 근로시간법제가 불합리하게 제한하여 노동시장의 활력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유럽 선진국에서는 연장·휴일근로시간을 포함한 주 단위 최대 근로시간 한도를 법률로 정하고 있지 않은데, 한국의 52시간제는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정하여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근로시간제도가 엄격하다는 주장이다.(주: 구자형, “해외 사례를 통해 살펴본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 활용방안”, 법무법인(유한) 지평 뉴스레터, 2018. 8., p.33.)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다. 먼저 유럽연합 회원국의 법적 기준이 되는 EU 근로시간지침(2003/88/EC)은 회원국 입법에 일정한 재량을 허용하면서도 통상 4개월 평균 1일 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되며, 일정한 예외를 두고 있지만 주 최대 48시간의 제한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또한, 야간근로는 1일 8시간 초과금지를 준수하도록 하며(단협에 의한 예외 허용),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11시간의 연속휴식시간과 6시간 이상 근로에 대해 휴게시간도 보장하도록 하므로 이를 준수하려면 1일 최장 1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사실상 1일 또는 1주 단위 최장근로시간 기준을 정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법정 기준근로시간으로 주 35시간과 함께, 연간 법정 1,607시간을 정하고 있다. 1일 단위 기준근로시간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지만 1일 최장 10시간(기업협약에 의해 최장 12시간), 1주 최장 48시간, 연속 12주 평균 주 최장 44시간(기업협약이나 행정관청 승인에 의해 최장 46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근로시간 규율을 통해 일 단위와 주 단위 실근로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 또한, 휴식권에 대해서는 한국처럼 주휴만이 아니라 일휴 규정을 함께 두고 있어, 1주 6일을 초과하는 근무 금지, 24시간 주휴에 11시간의 근무일별 휴식을 더하여 주 1회 최소 35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며, 일요일에 주휴를 부여하도록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주: 조용만, “탄력적 근로시간 관련 법제 해외사례 분석 : 프랑스”, 월간 노동리뷰 2019년 3월호, p.51. 일부 업무성격상 제한적으로 1주 6일 초과하는 근로나 다른 요일의 주휴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도 1일 8시간의 기준근로시간 및 6개월 또는 24주 내 1일 평균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1일 10시간의 실근로시간의 한도를 정하고 있다. 1주 단위 근로시간 한도를 정하고 있지 않지만, 일요일 근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1주 48시간의 기준근로시간을 두고 있으며, 주 평균 8시간을 기준으로 특정 주의 실근로시간 한도는 주 60시간의 제한이 적용되고 있다.(주: 박귀천, “”탄력적 근로시간관련 법제 해외사례 분석 : 독일“, 월간 노동리뷰 2019년 3월호, p.40.) 유럽의 근로시간제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주 단위 실근로시간 규제만이 아니라 “일 단위 실근로시간 제한”을 명확히 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에 대한 이중의 제한을 활용하고 있다.

   2)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전제조건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자마자 경제계 언론은 일제히 독일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1년이라거나 프랑스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이 최장 3년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6개월까지로 제한하는 우리나라만큼 근로시간 규율이 경직된 나라는 세상에 없는 것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들은 독일과 프랑스 모두 일 단위와 주 단위 최장근로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근로시간 사례를 꺼낼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실근로시간 수 자체의 차이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을 일하고 있다. 한국은 OECD 32개국 중 2,000시간을 넘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 다음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이다. 그나마 2018년 실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2,000시간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뒤에서 4~5위에 있다. 반면 프랑스는 2016년 근로시간 유연화에도 불구하고 연간 1,500시간 수준이며, 독일도 1,350시간 내외로, 우리나라와는 실근로시간에서 연간 400~500시간이 짧은 고용조건에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가 설계된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주: OECD.Stat, Average annual hours actually worked per worker.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NHRS)

[표-1] OECD 국가별 노동자 1인당 연간 실근로시간

 

2017

2018

2019

2020

2021

Australia

1,738

1,733

1,722

1,683

1,694

Austria

1,498

1,502

1,509

1,401

1,442

Canada

1,695

1,708

1,690

1,644

1,685

France

1,508

1,514

1,518

1,407

1,490

Germany

1,389

1,385

1,382

1,324

1,349

Ireland

1,775

1,782

1,771

1,746

1,775

Italy

1,719

1,719

1,710

1,554

1,669

Japan

1,709

1,680

1,644

1,598

1,607

Korea

2,018

1,993

1,967

1,908

1,915

United Kingdom

1,536

1,536

1,537

1,364

1,497

United States

1,778

1,782

1,777

1,767

1,791

OECD countries

1,757

1,753

1,742

1,668

1,716


  둘째, 복합적인 실근로시간 규제, 특히 1일 단위 최장 실근로시간 제한이다. 프랑스의 근로시간 유연화는 법정 주 35시간을 기준으로 한 연장근로시간 제한이다. 프랑스의 근로시간제도가 2016년 개정으로 종전보다 상당히 유연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연간 1,607시간에서 연장근로 22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1일 및 1주 단위 최장 실근로시간 제한과 휴식권에 관한 제반 규정을 준수해야 하므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단협으로 3년)으로 하더라도 특정 시기 과로노동의 집중화를 막을 수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1일 8시간을 기준근로시간, 6개월 또는 24주의 단위기간 평균 1일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1주 최장 60시간까지 허용되지만, 이는 1일 10시간의 최장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즉 독일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을 12개월까지 허용하고 있으나 1일의 최장근로시간은 10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는 것이다.(주: 박귀천, 위의 글, 44면. 근로시간의 상당부분이 대기시간에 해당되는 직종의 경우 1일의 최장근로시간 10시간을 초과하는 예외를 허용하나 이 경우에도 12개월 평균 1주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한편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유비될 수 있는 프랑스의 개별적 근로시간제(주: 개별 근로자가 이번 주 근무시간의 일부를 다른 주로 이월하여 근로하는 방식을 말한다.)의 경우도 1일 최장 10시간의 실근로시간 제한과 일휴 및 주휴 등 휴식권에 관한 규정 준수 및 이월할 수 있는 근로시간은 주 3시간, 누적 총 1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여 사실상 1일 및 1주 단위 최장근로시간을 중첩적으로 제한한다.(주: 조용만, “프랑스 근로시간법제에서 근로시간의 유연화와 근로자 보호”, 서울법학 제26권 제3호, 2018, pp. 538-539.)
  독일형 선택적 근로시간도 단체협약으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유연호출제도를 통해 사용자가 원할 때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처럼 국내에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노동자가 일할 수 있다고 정한 선택적 근무시간대와 사용자가 원하는 의무근무시간대 중에서 정한 9시간(근무 가능 시간대) 내에서 필요한 업무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근무 가능하다고 선택한 근로시간대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용자가 근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도 하루 9시간을 넘을 수 없고 유연근무제도에 대한 노사자율 결정 범위도 일일 12시간의 한도는 여전히 준수되어야 한다. 
  이처럼 외국 사례들을 살펴보면, 정작 우리나라의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는 이러한 일 단위 최장근로시간 제한을 전혀 정하고 있지 않아서 장시간 노동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한국의 선택적 근로시간제야말로 과도한 유동성과 노동집중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일 단위 최장근로시간 제한이 추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도입과 시행과정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노동조합을 통한 단체협약에 대한 신뢰와 사업장 전체의 집단적 공동결정을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기능과 역할을 기업부터 전국 및 산업 차원으로 보장하는 프랑스의 경우(single-channel system), 1일 최장 10시간을 초과하는 12시간 한도, 12주 평균 1주 최장 44시간을 초과하는 46시간 한도에 대한 예외도 모두 노동조합을 통한 단체협약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주: 2016년 개정에서 기업협약을 우선하도록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강화되었으나 기업협약이 없다면 여전히 산별협약이 적용된다.) 종업원평의회의 기업단위 집단결정권한과 노동조합의 산업 차원의 단체교섭을 보장하는 이중구조(dual-channel system)를 취하는 독일의 경우에도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같이 근로시간제도의 예외를 도입하려면 근로시간제도 결정과 그에 따른 임금보상은 모두 의무적 공동결정사항으로,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또는 단체협약에 근거한 (종업원평의회와의) 사업장협정을 체결해야만 한다.
  결국, 근로시간 유연화를 논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노동법제의 근간을 정비하는 논의과정에 노동조합의 대표성에 대한 존중과 단체협약을 통한 실질적인 장시간 노동 규율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새 정부 추진과제에 근로시간 단축의 묘안은 있나?

   1) 장시간 노동을 유인하는 과로사회라는 매듭 풀기
  새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정부는 ‘노사 자율’이라는 명명을 통해 마치 노동자의 선택권을 확대, 강화하는 정책인 것처럼 표면화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용자의 인력활용의 재량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3월 30인 이상 202개사의 부서장 이상의 직급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경총의 기업조사에서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중점 추진”을 희망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 측의 매우 강력한 요구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주: 경총, “최근 경제 상황과 차기 정부에 대한 전망 조사 결과”, 2022. 3.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노동정책으로 응답 기업의 59.4%가 근로시간제도 유연화라고 답하였다고 경총 발표함.) 정부가 발표한 핵심추진과제는 경총이 요구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사전에 탄력적 근로시간을 예정하지 않고 물량변동에 따라 단기간의 근로시간을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조정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 활용의 규모를 쉽게 증감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희망 사항이 바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확대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노사 자율에 의한 근로시간 선택”이라는 합리적인 과정만 있다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노동자가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에서 장시간의 실근로시간이 계속되어 온 이유는 저임금 하에서 노동자의 생계 필요와 인력충원보다는 초과노동방식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편의가 만나 공고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로사회라는 결과를 바꾸려면 개별 노동자와 사용자의 필요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일자리 나누기 촉진정책과 근로시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적정근로시간 규제가 필요하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보편적인 노동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보편적 노동권으로서 적절히 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현 정부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처하여 노동자의 ‘건강보호조치 방안을 병행하여 추진’하겠다 한다. 그러나 정부가 국정과제에 내놓은 건강보호조치란 “건강보호체계 구축으로 근로자 휴게시설 설치 지원 및 건강센터 확대 추진 등 직업건강 인프라 확충, 직업성 질병 모니터링 체계 확대(120대 국정과제 중 49대 과제)”뿐이었다. 이런 수준의 건강권 정책은 당장 일하다 죽거나 바로 증상이 발현되지만 않으면 장시간 노동에 의한 만성적인 질병과 과로의 누적은 정부의 관심 밖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과로사회 한국이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과 휴가·휴식에 대한 권리가 전면적으로 배제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적 보호를 전면화해야 한다. 법정 기준근로시간에 대한 예외를 두더라도 1일 최장근로시간과 1주 최장근로시간, 1일 연속휴식시간 등 모든 노동자에게 반드시 지켜져야 할 보편적 기본조건의 한계를 명시하여야 하고, 법정 기준근로시간을 정상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노동자의 동의 철회권을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근로시간이나 휴게?휴일?휴가에 대한 포괄적인 적용제외를 두는 조항은 원칙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과로와 직무스트레스 위험도를 측정하는 평가척도를 개발하여 근로시간 유연화로 인한 과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에게 위험 수준의 과로와 직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등 과로위험을 인식하고 제동할 수 있는 장치들이 다각도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3) 재택근무, 원격근무 확대는 근로시간 단축 방안이 아니다
  이번 노동시장 개혁방안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근로시간 단축방안은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확대다.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는 간주근로제를 통해 운영될 수 있는데, 사업장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 곧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당연히 가져오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된 간주근로제의 적용은 장시간 노동을 은폐하고 무료노동을 당연시할 위험이 있다. 재택근무과정에서 생활과 근무가 분리되지 못하는 환경에 있거나 업무량 조절이나 업무처리기한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는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과 무관할 뿐 아니라 간주근로시간제(사업장 밖 근무형태)를 확대하기 전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즉 노동자의 업무수행방식이나 업무량에 대한 협의권한, 통상 근로시간 평가 기준 및 방법을 결정할 때 노동조합의 참여, 근로시간 평가에 관한 이의제기절차 등 노동자 측의 업무수행에 대한 실질적인 자율권한이 보장되도록 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ILO ‘일의 미래와 근로시간 보고서’(2022)에서는 지나치게 긴 근로시간이란 “일주일에 48시간 이상 정기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미 ILO는 1919년 제1호 협약에서 주 48시간 노동을 초과하지 않도록 노동기준을 수립하였으며, 수많은 경험적 실증사례를 통해 인간의 건강과 직장 안정에 대한 48시간 또는 50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지적해왔다.(주: 장시간 노동은 흡연, 알코올 남용, 불규칙한 식사, 운동부족과 같은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초래하거나 만성피로, 스트레스, 수면 장애와 같은 생리적인 기능에 부정적 반응을 야기하고(Afonso, Fonseca and Pires, 2017) 장기적으로는 심혈관 질환, 위장 및 생식 장애, 근골격계 질환과 만성 감염 및 정신질환 발병율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Tucker and Folkard, 2012; Spurgeon, 2003)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의 위험이 증가하여 작업장 안정과 그에 따른 비용을 증가시킨다(Johnson and Lipscomb, 2006). 주 4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 수준을 감소시키고 일과 가정의 갈등을 증가시키고(Fagan et al., 2012),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보다 당료병, 심장병, 관절염 등의 발병 위험의 연관성이 높으며(Dembe and Yao, 2016), 자연유산이나 조산 위험을 초래한다(Takahashi, 2014)고 평가된다. Jon Messenger, “ Working time and the future of work”, ILO Future of Work Research paper series. 2022, pp.11-13.)
  나아가 보고서에서 주 4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자율성을 앞세운 높은 성과 요구, 초과근무에 대한 외부 압력, 낮은 보상과 같은 요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이러한 효과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과로사회를 지지하고 독려하는 고용환경과 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근로시간 주권의 실질적 목록들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4) 근로시간 양극화 속에서 노동자의 근로시간 주권 바로 세우기
  더불어 우리의 장시간 노동문제는 단순히 총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근로시간을 둘러싼 양극화 실태에서 노동자의 근로시간 주권의 실질적인 내용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시간의 문제이다. 평균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짧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내의 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높아지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시간 자체가 감소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대체로 2005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경향이 있고, 2010년 이후 감소 추세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근로시간의 특성이 경기적 요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근로기준법 개정의 영향으로 실근로시간이 점진적으로 감소하다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경기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고용 규모가 축소되고 정규직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현상과 맞닿아있다.(주: 김문정, “단시간 근로자 증가 추세 및 정책 함의”, 재정포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19년 4월호, p.11.) 코로나19 여파로 고용상황이 나빴던 2020년에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정규직과의 관계에서 비정규직의 근로시간 주권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편 단시간 노동자가 증가하는 경향은 단시간 노동자가 생계부담자라면 생계의 안정적인 확보가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 통계청의 고용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시간제는 주로 보건사회복지 분야, 음식점업,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에서 그 규모와 증가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주: 통계청,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보도자료, 2021. 10. 21.자, p.11.) 이러한 업종의 단시간 노동은 생계부양자인 고령 여성 비정규직이 집중되는 분야로, 이들에게 근로시간 주권이란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시간 확보의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
  둘째, 근로시간 단축은 저임금 구조의 개선 없이는 실질적으로 진전되기 어렵다. 한국의 저임금에 기반한 장시간 노동 특성상 노동자의 생계유지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방식의 근로시간 단축은 성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근로시간의 양극화를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특히 포괄임금약정을 통해 만연한 장시간 무료노동을 당연시하는 고용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사용자로부터 노동자를 지킬 수 없다. 포괄임금 규제 없는 근로시간 유연화 확대와 성과급 임금체계의 중첩적인 도입은 노동자의 선택권을 더욱 위축시키게 될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경총, “최근 경제 상황과 차기 정부에 대한 전망 조사 결과”, 2022. 3.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시간 조사 결과”, 2021. 6. 22. 자
-------------,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관련 주요 Q&A”, 2022. 6. 23.자
-------------, “고용노동부 새 정부 업무계획 보고” 보도자료, 2022. 7. 15.자
구자형, “해외 사례를 통해 살펴본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 활용방안”, 법무법인(유한) 지평 뉴스레터, 2018. 8.
김문정, “단시간 근로자 증가 추세 및 정책 함의”, 재정포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19년 4월호.
박귀천, “탄력적 근로시간관련 법제 해외사례 분석 : 독일“, 월간 노동리뷰 2019년 3월호.
박주영,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한계와 노동법적 과제”, 「윤석렬정부 출범 정책진단 토론회 5 – 노동분야 현황과 과제」, 민주노총/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주최 토론회 자료집, 2022. 5. 27.자
이정,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의힘?경총주최 토론회 자료집, 2022. 5. 9.자
전경련, “근로시간 제도 국제비교” 보도자료, 2022. 8. 4.자
조용만, “탄력적 근로시간 관련 법제 해외사례 분석 : 프랑스”, 월간 노동리뷰 2019년 3월호.
--------, “프랑스 근로시간법제에서 근로시간의 유연화와 근로자 보호”, 서울법학 제26권 제3호, 2018.
통계청, “202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보도자료, 2021. 10. 21.자

Eric Posner, How Antitrust Failed Workers,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Jon Messenger, “ Working time and the future of work”, ILO Future of Work Research paper series. 2022.
OECD.Stat, Average annual hours actually worked per worker
        (https://stats.oecd.org/Index.aspx?QueryId=10162)
OECD.Stat, Average wages Total, US dollars, 2021 or latest available
        (https://data.oecd.org/earnwage/average-wag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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