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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김건희 특검과 배신의 정치

  • 입력 2023.03.07 14:02      조회 680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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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상대방의 선택을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론화한 정치이론이다. 한 예로, 같이 학생운동을 한 둘이 잡혀가 조사를 받는데 친구가 뭐라고 진술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술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말한다. 둘 다 끝까지 잡아떼면 풀려나지만, 친구가 이미 불었는데 나만 잡아떼다가는 괘씸죄로 중형을 피할 수 없다. 친구가 불었다면 나도 부는 것이 현명하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경험’이다. 오래 운동을 하다보면, 친구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그가 의리가 있다면, 나도 불지 않고 버틴다. 그가 쉽게 배신한다면, 나도 부는 것이 낫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추진 중이다. 특히 이를 위한 패스트트랙에 정의당의 동참을 촉구했다. 정의당은 곽상도 아들의 황제퇴직금 무죄 판결과 관련해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에는 찬성하지만, 김건희는 검찰 조사를 촉구하는 것이 먼저이며 특검은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 입장이 조국 사태에 대한 침묵 때문에 제기된 ‘민주당의 2중대’라는 비판과 지지율 급락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정의당에 묻는다. 국민의힘의 2중대는 괜찮나”라는 등 민주당 쪽에서 정의당 비판이 쏟아졌다. 이때 떠오른 것이 죄수의 딜레마였다. 김건희 특검이 사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필요한 것인가는 논쟁적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덕에 의원이 된 조정훈 의원조차도 주가조작, 학력위조 등 민주당이 제기한 김건희 의혹이 윤석열 대통령과 무관한 결혼 전 의혹으로 특검이 성립할 수 없으며 이재명 이슈를 덮기 위해 정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사법적, 정치적 타당성 문제와는 별개로,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에서 정의당을 배신한 역사가 있기에 정의당에 패스트트랙을 요구한 것은 후안무치다.

여러 번 지적했지만, 박근혜 탄핵이 정의당 등 여러 정치세력이 함께 이룬 것이고 국회 다수 의석을 갖지 못해 개혁입법을 위해 이들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촛불연정으로 나가야 했지만 탐욕에 빠져 권력독점을 택했다. 그 결과 개혁입법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제는 조국 사태였다. 조국 사태 후 검찰 견제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급해진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추진을 위해 정의당 지지가 필요했다. 민주당은 정의당이 주장해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수처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독일이 실시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수를 갖도록 하는 제도로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도입하라고 제안한 제도였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때늦은 촛불연합’으로 공수처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패스트트랙을 통해 제정했고 공수처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짓밟고 위성정당을 만들자, 민주당도 기다렸다는 듯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국민의힘은 애당초 이에 반대한 만큼 위성정당 설립에 대해 변명할 여지라도 있다면, 민주당은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이를 만든 장본인인 만큼 말이 되지 않는다. 공수처라는 자신들의 목표를 이뤘으니 더 이상 명분이나 정의당, 나아가 국민과의 약속은 필요 없다고 배신한 것이다. 이처럼 패스트트랙을 배신해놓고 자신들이 급하다고 정의당에 김건희 특검 패스트트랙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

배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검찰이 수사에 미온적이라고 판단, 김건희 특검도 추진하기로 입장을 바꾸고 구체적 내용을 민주당과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건희 의혹이 결혼 전 의혹이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는 정권이 끝나면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공소시효는 기소중지하면 된다), 패스트트랙이 시급한 것은 노란봉투법 등 민생법안들, 그리고 이 대표가 대선에서 약속한 위성정당 금지, 다당제 등 ‘정치교체’법들이다.

말로만 민생을 외칠 뿐, 민주당이 지난 3년 동안 다수 의석을 가지고 제정한 민생법안이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어야 할 노란봉투법을 왜 이제 와서야 추진한다고 난리인가? 정치교체 역시, 포퓰리스트답게 대선용이었을 뿐, 대선이 끝났으니 쓰레기통에 버린 것인가? 이 대표가 ‘허수아비 당대표’는 아닐 텐데, 기이하게도 민주당 선거제 논의에서조차 정치교체안들은 사라져버렸다. 필요하면 약속하고, 필요 없으면 뒤통수치는 ‘배신의 정치’ ‘기만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 이 글은 2023년 3월 7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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