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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국제질서

9-3. 동아시아 산업경쟁과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 녹색산업정책과 기후대응 평화협력
  • 입력 2023.09.15 14:26      조회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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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동아시아 산업경쟁과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김병권.pdf
 
김병권 기후경제와 디지털경제 정책연구자

- 2019~2022년까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정의당의 기후정책과 그린경제, 디지털경제 정책 설계를 책임졌다.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으로 8년 동안 사회경제정책을 설계했고, 서울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 책임을 맡아 혁신과 협치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기후를 위한 경제학』,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사회적 상속』 등이 있다.



 

1. 근본적 변화의 기로에 선 동아시아

   우리가 알던 익숙한 세계의 지형이 뿌리에서부터 바뀌고 있고 그 중심에 동아시아가 있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기본 관계는 2차 대전 후 냉전 시대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1990년 냉전의 해체와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과 대만 등 신흥 경제강국의 등장과 일본의 상대적인 쇠퇴 등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하나의 특징이 있다.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다양한 차이와 갈등, 견제들이 변화무쌍하게 교차하면서도 이와는 독립적으로 공급망을 포함한 경제 관계가 점점 더 상호 의존적인 방향으로 심화하여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강한 압력이, 다른 편에서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도약을 이루려는 잠재적 대국 중국의 욕망이 교차했고, 그 사이에서 일본과 한국, 대만은 물론 아세안까지 수출과 대외경제 팽창으로 성장을 이루려는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깊어져 가는 경제적 의존관계는 한반도 긴장 문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이해관계 문제 등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잠재된 긴장과 갈등 요소가 많았던 동아시아에 ‘평화’라는 안정을 강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토록 강하게 서로 얽혀가던 동아시아의 경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미·중 기술경쟁과 경제갈등이 도드라져 보인다. 2010년대 중반 중국 글로벌 통신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필두로, 미국은 점점 더 중국을 협력자로 보기보다는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정부의 일탈적인 행위로 보였던 대중 경제제재는 바이든 정부에서 약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는 중이다. 지난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은 핵심안보와 관련된 중국 기업에 대한 금융투자까지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정도였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관계가 장기간 평화적 협력과 의존관계에서 벗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체 경제 관계 양상도 동시에 달라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교역구조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점차 경쟁, 대체의 관계로 전환되며 경제블록으로서의 성격이 매우 약해”졌다면서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일본의 첨단 소재 장비와 한국과 대만의 범용 중간재가 중국의 조립 가공 공정을 거쳐 역외시장으로 간접 수출되는 동아시아의 수직적 분업구조, 즉 기러기 편대 모형은 정말 옛이야기가 되었다. 조립 가공 공정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아세안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은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기존의 GVC(글로벌 공급망–인용자)가 새롭게 재편되는 핵심고리로 변모했을 뿐만 아니라, G2 패권경쟁이 본격화하면서부터는 주요국의 경제안보 전략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지역으로 부상했다. 최근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핵심소재, 부품의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갈등이 모두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김상조, 2023).

   경제적 의존관계 양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은 거의 필연적으로 정치, 외교, 군사 관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동아시아의 미래를 불안하고 불확실한 국면으로 몰아가게 된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정치, 외교 양상과 군사적 긴장 고조들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미·중 경제협력 시대에서 양국과의 교역을 통해 최대 수혜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의존 관계 덕분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가 억제되는 혜택을 누린 한국의 미래는 그 어느 나라보다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제부터 동아시아 정치, 외교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는 동아시아의 경제의존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근원적인 변화 조짐을 보이는 미·중 경제 관계와 그에 수반되는 한-미-일-중-아세안, 그리고 인도까지를 포함한 범아시아의 경제 관계 변동은 그 자체로서도 동아시아의 경제지도를 바꾸게 될 뿐만 아니라, 정치와 외교, 군사적 지도의 변화를 강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글로벌 변수가 더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역학과 기후위기를 제대로 연결해서 바라본 관점이나 정책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현재의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경제, 정치, 외교 관계 양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잠재력이 충분한 변수다. 기후위기는 그 자체로 글로벌 이슈일뿐 아니라, 미·중을 포함해서 어떤 나라도 기후재난에서 면제될 수 있거나, 위기를 외면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또한, 2023년 6, 7월에 처음으로 지구 온도 추가상승이 1.5°C를 넘었을 정도로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기후위기 양상을 보면, 기후위기는 경제 관계의 급변동 못지않게 동아시아 지정학에 영향을 줄 개연성이 높다. 특히 최근에 미국, 중국, 일본 등이 앞다퉈 기후위기 대응과 자국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엮어내는 ‘녹색산업정책’ 도입을 서두르면서 새로운 변화 조짐까지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현재 미·중 경제의존 관계 변동이 어떻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여기에 기후위기 대응이 결합한다면 변화의 방향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어떤 대외경제 정책과 외교 정책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볼 것이다. 



2. 격화되는 미·중 경제갈등의 성격

   우선 최근 심화하고 있는 미·중 갈등 양상과 이로 인한 경제 관계의 변화가 과연 1980년대 이래 가속화된 세계화가 꺾여가는 장기적인 추세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를 확인해보자. 동아시아의 경제 관계는 미·중 경제 관계를 빼고는 거의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의 협력적 미·중 경제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중국경제의 지위가 바뀌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매력환산 기준(PPP)으로 2016년부터 미국을 넘어섰고, 양적으로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인공지능이나 양자 컴퓨터 등에서 한국을 넘어 미국과 경쟁을 시도하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를 감지한 미국은 이미 2013년 미국 정부 기관 조달에서 화웨이를 금지하는 등 서서히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태도를 강화해왔고, 최근에는 전방위적인 첨단기술 중국 배제전략을 공공연한 경제외교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여 중국도 국가적인 대규모의 연구 지원, 대량으로 쏟아지는 우수한 기초과학 연구논문, 엄청난 숫자의 팹리스 업체들의 증가 등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정면대응에 나서고 있다. (주 : 물론 반도체 등에서는 “현재 독점화된 네덜란드 ASML이 중국에 노광장비를 수출할 수 없는 이상 중국이 자체적으로 EUV공정을 세팅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독립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성능 향상 경쟁에 따라올 수 없을 것”이어서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배제되었을 때 매우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권석준, 2022).) 

   그러나 현재의 변화된 미·중 관계의 갈등이 지난 40여 년 동안 지속한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단절시키고 탈세계화로 전환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많지 않다. 그동안 심화한 상호의존을 쉽게 단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 마크 레빈슨(Marc Levinson)은 “2019년 말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성 질병이 중국 우한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여 뉴질랜드에서 덴마크까지 사업활동 중단 및 자가격리 사태가 발생하고 전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던 상업 및 여행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세 번째 세계화(지금까지 세계화-인용자)는 매우 다른 일련의 국제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었다”라고 평가하면서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화로 보기도 한다(마크 레빈슨, 2023). 어쨌든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압도적 우위에 기초한 글로벌 국제분업체제 – 하위생산기지로서의 중국 수용’이라는 체제가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무너지면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체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석하고 분석할 것인지에 관한 3가지 정도의 접근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 번째 접근은 가장 온건하다고 볼 수 있는데, 미국-중국이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고 있다는 견해다. 정치학자 헨리 패럴(Henry Farrell)과 아브라함 뉴먼(Abraham Newman)이 네트워크 이론을 국제정치, 외교에 적용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이라는 2019년 논문에서 제시했다. 그들은 비대칭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중심국가들이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평화가 아니라 강압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네트워크상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서 네트워크에 참여한 다른 국가들에 대해 정보 우위를 장악하는 판옵티콘(panopticon) 효과와 네트워크 지배력을 이용해서 특정 국가를 해당 네트워크에서 배제시키는 관문 효과(choke point effect)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금융지배력을 기반으로 이란이나 북한 등 일부 국가의 금융자산을 동결시키거나 제재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고, 중국 화웨이 5G 장비 도입을 미국이 통제해온 사례도 마찬가지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중국이 희귀자원 등을 무기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반도체 등의 산업 네트워크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기가 관철되지 못하면서 네트워크에서 일정한 허브 역할을 수행할 역량도 가지고 있는 일본, 대만, 한국 등 동맹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때 한국의 포지션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 : 김병권, “신냉전 시대의 도래? 글로벌한 세계, 다시 블록화로 갈까?” 『레디앙』 (2022.07.01).  http://www.redian.org/archive/163070) 최근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한다는 의미의 ‘디커플링’ 전략을 명시적으로 버리고, ‘상호의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체제로 가고 있는 것은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접근법의 타당성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 견해는 탈세계화, 또는 경제 블록화하고는 거리가 멀고 기본적으로 경제적 세계화가 지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표 1]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선택한 미국

디커플링(De-Coupling)인가? 디리스킹(De-Risking)인가?

- 미국은 처음에 중국 글로벌 기업 화웨이를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 전략을 쓰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최근 디리스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오고 있음. 디리스킹은  '위험 줄이기', '위험 감소'라는 뜻의 영어 단어로서, 2023년 3월 30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가진 대중정책 관련 연설에서 처음 언급하며 주목을 받은 용어로 알려져 있음. 
- 폰데어라이엔은 "나는 중국으로부터 디커플링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유럽의 이익에 들어맞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라며 중국과의 관계분리가 아닌 위험요소를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 이후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23년 4월 27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후 2023년 5월 21일 채택된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에까지 '디리스킹'이 언급
(주 : Jihye Lee, “‘We are not decoupling’: G-7 leaders agree on approach to ‘de-risk’ from China”, CNBC (May 21, 2023).  https://www.cnbc.com/2023/05/22/g-7-leaders-de-risk-china.html)


   미·중 사이의 기술경제 경쟁을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견해는 ‘투키디데스 함정론’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이 주장해온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협을 해올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앨리슨, 2017). 앨리슨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에 그에 따른 구조적 압박이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법칙에 가깝다”라면서, 현재의 지배세력인 미국은 새로 부상하는 중국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신흥세력인 중국은 현재의 질서가 자신들에게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투키디데스 함정 구조에 들어온 미·중 갈등은 상당히 장기화할 개연성도 높고, 위험한 군사적 긴장 상태까지 치닫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최근의 변화를 ‘미·중 자본 사이의 경쟁 구도의 근본적 변화’로 파악하는 것인데 훙호펑의 접근법이 대표적이다(훙호펑, 2022). 그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국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미·중 관계를 형성하는 데 모두 중요”했지만, 초점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90~2000년대까지 중국 기업들이 하위파트너로서 거대한 수익을 만들어 주는 생산기지이자 소비처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국 기업들은 “차이메리카 체제의 접착제, 안정제이자 동력원”으로서, “중국을 주요 지정학적 경쟁자로 전망하는 워싱턴의 외교·군사 기관의 경향을 제어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토착산업 육성정책으로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 되면서” “우호적인 미·중 관계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지지가 점점 사라져갔다”라고 그는 평가했다. 결국, 전통적으로 중국을 경쟁자로 보는 외교·군사적 관점에 더해서, 기업들마저 최근 중국을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더는 과거와 같은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훙호펑의 판단이다. 당연하게도 자본 사이의 근본적 경쟁 구도 변화로 인식하게 되면, 이제 더는 과거와 같은 미·중 자본협력은 앞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미·중 자본 사이의 갈등과 경쟁이라는 반대쪽으로 곧바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의 재계 지도자들이 연달아 중국을 방문하여 화해 제스쳐를 취하는가 하면, 미국이 미·중 관계를 해석하는 공식 용어로 ‘디커플링’ 대신에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례는 미·중 자본이 곧바로 대결체제로 갈 수 없을 만큼 글로벌 분업체제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표 2] 미·중 자본과 외교의 관계변화 추이(훙호펑)



   이상 미·중 기술경제 경쟁 양상을 해석하는 세 가지 접근법을 간단히 살펴봤다. 사실 21세기 20여 년 동안 한국의 산업이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장기간에 걸친 미·중 경제의존 관계와 그를 토대로 만들어진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절묘한 한국의 포지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 자본은 낮은 비용을 찾아 제조업을 해외로 아웃소싱하는 추세였고, 중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임금과 토지비용 등에서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녔지만, 상대적으로 기술과 인적자본에서는 한국, 대만 등이 우위에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조립생산라인을 구축하면서 선진국들이 아웃소싱한 제조업의 첨단분야에서 이니셔티브를 장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의 재편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에서 한국의 위치를 잡아야 할 시점이 왔다. 이 같은 전환기에 새로운 위치설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산업역량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3. 글로벌 산업정책 경쟁과 동아시아 : 녹색산업을 중심으로

   앞서 확인한 미·중 경제의존 관계의 변화를 토대로, 1) 최근 글로벌 경제의 균열과 갈등이 일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과 그 결과 미·중 두 나라에 경제, 안보 면에서 깊숙이 얽힌 한국의 포지션도 당분간 매우 불확실한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점. 2) 미·중 사이의 새로운 경쟁 구도는 앞으로 보겠지만 산업정책 측면에서 기존의 리쇼어링 정책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국의 제조기반을 강화하는 산업정책의 강화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 특히 매우 유동적인 글로벌 공급망 변동기에 자국의 산업기반을 재정비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 있다는 것. 3) 반도체, 바이오 산업과 함께 자국 산업기반 강화전략에서 핵심은 녹색산업정책이 될 것이라는 점, 특히 태양광, 풍력 등 녹색산업분야의 경쟁력은 반도체보다 훨씬 더 중국의 리더십이 크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녹색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한국 역시 이 추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의 화웨이 규제가 상징하듯이 흔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쟁에만 미·중 갈등의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사안을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현재 미·중 기술경제갈등은 사실상 제조업 전체에 걸쳐서 자국 산업기반 강화라는 큰 맥락 안에서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인도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제도화시킨 ‘반도체와 과학법(일명 칩스법)’,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그리고 사실상 녹색산업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일명 IRA)’ 등이다. 특히 미·중 기술경제 갈등이 자국 산업 강화와 긴밀히 연동되면서 최근 강력한 산업정책 부활이 녹색산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림 1]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의 법적 기반(김윤희, 2023)
 



   산업정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정책에서 배제된 유물처럼 취급되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으며 그 단적인 증거가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워킹 페이퍼를 통해 주장했던 ‘산업정책의 귀환’(the return of the industrial policy)이다(Chief 2019). IMF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이유가 진정한 산업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라면서, 단순히 비교우위에 입각한 시장개방만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 대열로 진입할 수 없었고, ‘국가의 주도적인 손’(Leading hand of the state)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적극적 산업정책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은 사례는 아시아의 후발주자들이 처음은 아니었고, 오리지널 후발주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의 미국, 독일, 일본이 영국을 따라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20세기 후반기에 반도체나 아이폰 등 첨단산업들이 부상하고 연이은 혁신이 일어난 것 역시, 자유시장 경쟁의 귀결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과 지원에 의존했다는 점을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 등이 이미 설득력 있게 지적했었다. 

   또한, 산업정책은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녹색분야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독일과 중국이 가장 강력한 정책을 폈지만, 미국이나 인도 등도 폭넓은 정책수단들을 썼는데, 연구개발비 지원, 정부조달, 대출, 신용보증, 직접보조금 지원 등이 그 사례다. 오바마 정부 1기였던 2009년 7,87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회복과 재투자법(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에서 재정 710억 달러를 그린투자로 돌리고 대출보증, 세금 우대, 기타 보조금 등으로 녹색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에 200억 달러를 지출한 바가 있다(Harris, 2013).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19년 그린뉴딜 정책이 제시될 수 있었고, 이후 녹색산업정책은 주류 정책 의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최근 IRA 입법 이후 산업정책 경쟁 국면에서 훨씬 강도 높게 진화하고 있다. 

  [표 3] 늘어나고 있는 녹색산업에 대한 보수적 비평

녹색산업정책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었나?

-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경쟁적으로 녹색산업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잠잠했던 일부 보수경제학자들이나 미디어에서 반발의 목소리들이 최근 조금씩 나오고 있음.
- 우선 국내에서는 보수적인 경제지인 한국경제에서 외부인 칼럼을 빌어 포문을 열었음.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경제 기명 칼럼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산업정책을 모방한 듯한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미국 경제의 회생 전략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함. 
-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의 정책과 함께 미국 내 반도체산업 등 제조업 부활 정책을 다양한 정책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중심주의에 기반한 산업정책에 직면해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산업, 특히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세계 선진국에 확산하는 자국 내 제조업 부활을 위한 경쟁적인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정책이 지속 가능한 산업정책 및 무역정책은 될 수 없으며, 결국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 김영한 교수는 결론적으로 “기술 변화와 경제적 효율성을 무시한 정치적 동기에 의한 산업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은 과거 중남미 산업정책의 실패 사례가 분명히 보여준다. 작금의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도 주목해야 할 교훈”이라며 산업정책을 저주함.
(주 : “미국 新산업정책의 실체”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3072806421)
- 한편 해외에서는 이코노미스트지가,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고, 국가안보를 강화하며,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성장이 둔화된 지난 40년간의 세계화를 바로잡기 위해서” 산업정책을 경쟁적으로 부활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비평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
- 일단 이코노미스트지는 ‘산업군비경쟁(An industrial arms race)’이라는 용어를 동원하면서, “막대한 공적 자금이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고 민주주의의 안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는 서구의 녹색산업정책이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 “제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호하는 정부는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임. 또한 “정책 입안자들이 보조금의 위험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않는 한, 울타리가 쳐진 마당(the fenced-in yard)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
(주 : “Subsidies and protection for manufacturing will harm the world economy”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3/07/13/subsidies-and-protection-for-manufacturing-will-harm-the-world-economy?utm_medium=social-media.content.np&utm_source=linkedin&utm_campaign=editorial-social&utm_content=discovery.content&fbclid=IwAR1zs5LUekM5QsdKPcn3EdGYm9MnFCej1QSJImnFi4G-LrgNTEpeIAguw_s)

※ 한국경제와 이코노미스트 모두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점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학관계 재편을 인정하면서도, 녹색산업정책을 보조금 정책과 보호주의로 폄하하면서 선진국에서 다시 산업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실패할 운명이라고 지적함. 그러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함.

   
  [표 4] IRA의 주요 인센티브(김용균, 2022)



   미국의 사례를 조금 더 살펴보자. 2019년 그린뉴딜 제안, 2021년 바이든 정부의 더 나은 재건법(Build-Back Better Act)을 이어받아 2022년에 입법화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녹색 분야를 중심으로 자국산업기반을 강화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산업경쟁을 증폭시킨 상징적인 법안이다. IRA에서 예정된 총투자금액은 4,370억 달러인데 이 가운데 80%인 3,690억 달러를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 지출할 만큼, IRA는 기후대응과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일자리 안정화 모두를 도모하기 위한 다목적 전략이다. 한마디로 IRA는 “미국 역사상 시행된 기후변화 대책 중 가장 적극적인 대책으로 평가되며 2030년까지 44%의 탄소배출량 감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IRA는 과거 주변적이었던 녹색산업정책을 중심으로 끌어올린 그린뉴딜의 연장선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었던 전기차 관련 지원은 모두 합해 100억 달러 남짓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재생에너지 전력이나 녹색산업생산 쪽에 몰려 있으며, 상당 부분 세액공제나 보조금 지급의 형태로 지원되지만 ‘투자’ 총액에 대해서뿐 아니라 ‘생산’에 대해서 지원을 함으로써 실제 산업생산과 일자리 창출 효과 연계성까지 확보하고 있다(김용균, 2022). 더욱이 초기 단계의 투자세액공제 외에, 실제로 제조와 설치단계에서 얼마나 부품이나 에너지를 생산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세액공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포함(태양광 모듈당 7센트, 폴리머 백시트 40센트, 배터리 모듈당 AMPC 10달러 등)하고 있다.

   미·중 경제경쟁이 녹색 분야의 산업경쟁으로 옮겨갔을 뿐 아니라, 이는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으로도 파급되었다. 특히 유럽은 2022년 5월, 2030년까지 총 3,000억 유로(약 400조 원) 규모 투자하여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에너지 의존을 탈피하겠다는 ‘리파워 유럽계획’에 이어, 2023년 2월 ‘유럽 녹색산업계획(넷제로 산업법과 핵심원자재법)’을 발표하면서 2019년 그린딜 프로젝트를 녹색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계속 진화시켜 나갔다. 유럽 녹색산업계획이 일환으로 입법 제안된 넷제로산업법(탄소중립산업법)을 보면, 재생에너지를 핵심으로 하는 녹색 핵심기술을 열거하고 2030년까지 탄소중립 전략산업 제조역량을 EU 연간 수요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규제를 단순화하여 12개월 허가시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인이 이뤄진 것으로 간주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또한, 공공입찰 절차에서 지속 가능성과 공급망 안정성 기여도를 반영하고, 법안 이행을 감독할 ‘탄소중립 유럽 플랫폼’ 설립을 명시한 점도 주목된다.

  [그림 2] 유럽 그린딜에서 넷제로산업법까지


출처 : 김윤희, “기후위기 관련 2023년 글로벌 통상이슈 점검,” NABO 경제동향 제36호 (2023년 4월호), p.65.

   사실 개별 유럽국가들 차원으로 들어가면 영국은 이미 보리스 존슨 정부 시절인 2020년에 ‘녹색산업혁명을 위한 10대 계획(10-Point Plan)’이라는 이름으로 녹색산업정책을 공식화했는데, 이는 노동당의 ‘녹색산업혁명’ 공약을 보수당 방식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국은 10대 계획을 통해 녹색산업혁명의 토대를 마련하였는데, 2030년까지 최대 2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엔지니어, 수리공, 건설 노동자 및 기타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여 청정에너지를 생산 및 사용하고 전 세계 새로운 시장에 수출하는 훌륭한 신산업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10대 계획을 통해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억 8천만 톤(이산화탄소 환산 톤) 줄이”겠다고 계획했는데, 이는 모든 자동차를 약 2년 동안 도로에서 퇴출하는 것에 해당한다. 한편 최근인 2023년 5월 녹색산업법안을 발의한 프랑스는 가장 늦게 녹색산업정책을 공식화하면서 녹색산업 전환과 제조업 강화를 위해 녹색산업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미국 등에 비해서 그리 야심적인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기차 보조금 기준 연내 개정, 인허가 기간 단축, 세액공제 등 15개의 녹색산업정책의 세부 이행 방안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친환경기술 선도국 지위 확보 및 녹색산업 육성을 통한 탈탄소화”라는 목표를 내걸고, “CO2가 4백만 톤 감소되는 환경적 효과 및 ‘30년까지 230억 유로 상당 투자 유치와 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달성”하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탈탄소, 에너지 안정공급,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GX 실현을 위한 기본방침: 향후 10년을 바라본 로드맵’(GX 기본방침)을 발효했고, 이어서 2023년 2월 정부 입법으로 입안된 ‘탈탄소 성장형 경제구조로의 원활한 이행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의 GX 기본방침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의 확대, 원자력의 최대한 활용, 성장지향형 카본 프라이싱(탄소 과금)의 적극적인 도입, 150조 엔 규모의 탈탄소 관련 민관 GX 투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 : 구혜경, “일본 정부의 녹색전환 추진 현황,” 국회도서관 『현안 외국에선?』 2023-6호, 통권 제56호(2023.03.23.). 허인, “국회도서관, 일본 정부 녹색전환 추진 현황 소개,” 『신아일보』 (2023.03.23.)에서 재인용. http://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7993)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산업정책으로 재생에너지와 이차전지 등의 기술과 제조역량을 키워왔고, 최근 인도 정부 역시 유사한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표면으로 드러난 반도체 기술경쟁보다 더 넓고 깊게 미래 기후위기 대응과 자국제조업 재구축이라는 전략목표를 향해 주요 국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5] 녹색산업에서 중국의 리더십

중국은 녹색산업의 선두주자인가?

- 태양광과 풍력발전량에서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선 지 한참인 중국이, 재생에너지 제조, 2차전지 제조 등 발전부문은 물론 녹색산업과 녹색기술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은 2010년대에 가장 두드러진 경향임.
- 심지어 IT쪽 분야에서 미국의 배제전략으로 큰 타격을 입은 화웨이가 2022년 4월 “친환경 개발 2030 보고서’를 발표하고 ‘녹색산업’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주류로 자리 잡은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의 친환경화 △전기 교통수단 본격화 △탄소중립으로 운영되는 건물 △친환경 디지털 인프라 △저탄소 생활에 대한 관심 증대 등”이라고 시사인이 보도.
- 시사인은 “세상이 친환경·탄소중립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거기에 발맞추겠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중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2021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계획의 현실성과는 별개로, 2022년에 탄소중립을 선언한 한국의 삼성전자보다 빨랐다”고 지적.
- 2010년대 10년 동안 태양광 패널 가격이 1/10로 내려가고 풍력발전 설비 단가도 1/3 미만으로 내려갔던 이면에는 중국의 적극적인 녹색산업정책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기억해야 함. 2022년 기준 글로벌 자동차 시장(8천만 대) 가운데 1/10이 전기차(800만 대)인데, 이중 40% 이상이 중국산 전기차임. 2021년 기준 태양광 설치는 중국(54.9GW), 유럽연합(28.7GW), 미국(26.9GW), 인도(13.4GW), 일본(6.6GW) 순으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을 합친 규모에 해당함.
- 한편 녹색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은 주요 부문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중임.




4. 기후대응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협력 모색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 동아시아는 미·중 기술경제 경쟁 구도를 중심으로 지정학의 근본적 재구성을 압박하는 경제의존 관계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해지자, 기후대응을 하면서 동시에 경제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녹색산업정책을 앞다퉈 도입하고 대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 중이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국 역시 경제산업정책과 대외경제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그런데 집권 초기에 남북관계를 '리셋'하겠다면서 대북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던 윤석열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와 남북 연락채널 단절상황을 반전시키기는커녕,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민주주의정상회의 주최,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 평화코드가 아니라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한·미·일 3각 동맹화에 명시적으로 합류하는가 하면, 동시에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시사 등 중국-러시아와는 긴장 관계를 자초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그리고 제1야당 민주당 역시 이를 반전시킬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서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정책, 기후정책, 산업정책,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걸쳐서 폐기되거나 보류되었던 핵발전 전면배치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테면, 2023년 5월 15일 문재인 정부에서 백지화되었던 1.4G급 신한울 3·4호기(경북 울진) 주기기 제작에 들어가는가 하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한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한국형 원전(APR) 해외 수주를 위한 수출 대상국 규제 충족 기술 개발, 청정수소 생산 등 원전 활용 다변화 등에 집중하는 중이다. 당연하게도 미래를 대비한 녹색산업 기반을 새롭게 구축하여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기후위기 대응, 동아시아 경제 관계 재편에서의 능동적 역할과 관련한 어떤 긍정적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박한 대변동기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경제학자 김상조는 4가지 선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전략적 모호성을 지속”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G2 관계에서 기본적으로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국익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주도적으로 조정, 견인하는” 파생된 운전자론, 셋째는 “한-미 또는 한-미-일 동맹을 기초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 속에서 안보, 경제 측면의 국익을 제고하는 전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EU처럼 “G2 패권경쟁에 따른 분절화 흐름에 편승하기보다는 다자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국제규범의 창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이 그것이다(김상조, 2023). 김상조는 네 가지 옵션을 혼용하자는 지극히 모호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네 가지 가운데 일단 윤석열 정부는 매우 거칠게 세 번째 옵션으로 가고 있다. 

   한편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은 “군사 활동 축소를 통한 기후위기 대처와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 사이에 선순환을 도모하는” ‘그린 데탕트’를 제안했었다. 그에 따르면 기후위기야말로 모든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최대 안보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군사 활동 자체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과 대처가 현재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군사 활동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고, 악화한 기후위기가 갈등과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해 정치·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이 최근에 더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는 공동의 기후대응도 부족한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기후위기 대처를 핵심 화두로 삼아 한반도 평화와 국제적 신냉전 대처에도 전환기적 발상과 실천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주 : 정욱식, “군비 축소 통한 ‘그린 데탕트’는 가능하다”, 『한겨레신문』
(2022.01.22.)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28370.html)
 

   또한, 다소 세부적이지만 경제학자 정태인은 한·중·일의 탄소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1/3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한·중·일 탄소공동가격제를 기반으로 하는 ‘탈탄소클럽(또는 생태클럽)’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었다. 탈탄소클럽을 최초로 제안한 학자는 노드하우스(Nordhaus, 2015)이다. 탈탄소클럽은 정치학의 용어를 원용해서 “최소 승리 연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최소 탄소가격 만큼 각국의 상대적 비용을 덜 수 있고 역외국가에 대해서는 가격 차이에 비례해서 국경세(탄소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과 중국, 일본의 거대한 외환보유고(약 4조5천억 달러)와 탄소 세수 중 일부를 탄소배출량에 비례해서 생태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제안도 했다. 이 기금으로 미세먼지, 황사 대책, 팬데믹 대처 등 공동 정책, 공동의 생태기술 혁신(예컨대 신소재 배터리 기술), 역내 지역의 구조조정 보조, 탄소클럽에 들어오려는 발전도상국에 대한 보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정태인, 2020).

   확실한 것은 고조되는 미·중 사이의 경제갈등과 동아시아의 경제의존 관계 변화, 그리고 심화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제고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냉전식 이념에 따른 진영논리를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후대응과 같은 공통의 대응 명분 아래 평화와 협력 코드를 살려내면서, 능동성과 자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자국의 제조와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녹색산업정책을 착실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제는 한국도 미국이 약화하고 중국이 부상한다는 식으로 특정 국가 패권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미국-유럽-아시아가 병존하는 체제"를 전망하는 보다 넓은 시야를 열어야 한다. 이는 세계적인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Paragh Khanna)의 제안이기도 하다. 그는 글로벌 미래를 전망하면서, "세계질서의 중심은 현재 점차 힘을 잃어가는 서양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처럼 반드시 하나의 국가나 하나의 가치 체계일 필요는 없다. 대신 새롭게 등장하는 세계질서의 토대는 미국, 유럽, 아시아 체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북미-유럽-아시아가 각각 권력을 공유하는 진정한 다극 체제와 다문명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극 체제에서는 하나의 초강대국이 다른 후속 국가로 대체되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발상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더 나은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파라그 카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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