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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9-6.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병행 가능성의 탐색

  • 입력 2023.09.15 14:26      조회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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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병행 가능성의 탐색-서보혁.pdf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와 이화여대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이다. 근래 저서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발전의 평화·인권 효과와 한반도』, 『배반당한 평화』 등이 있다. 



 

1. 문제의 제기

   평화와 인권은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이 국제사회의 보편가치이자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천명하고 있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와 한반도 현실에서 이 두 가치가 상호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커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특정 권리를 옹호하거나 획득하려는 과정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는 물론 시민사회 집단 간의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접경지역에서 인권과 평화는 극명하게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주민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대형 풍선을 날리는 일종의 의사 표현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보편가치들의 조화로운 발달이라는 규범적 논의와 달리 왜 한반도에서 인권과 평화는 충돌하는가? 그 원인이 정치세력들 간의 성향 차이에 있는가, 아니면 상식과 달리 인권과 평화를 관계지을 때 존재하는 내적 긴장의 표출에 있는가? 이 질문은 흥미로운 학술적 주제이겠으나,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숙명과 같은 화두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평화와 인권의 관계를 규범적 차원에서 토의하여 둘의 관계를 파악하고 한반도에서 두 가치를 병행 추진할 기반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어서 한반도 현실에서 평화와 인권 담론이 어떤 지형을 형성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 논의는 두 가치가 규범과 현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북한 인권 개선과 한반도 평화 증진을 병행할 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북한 인권 개선과 한반도 평화 증진을 병행 추진할 방안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2. 평화와 인권의 관계

    1) 평화와 인권의 각개약진

   인권의 범주, 특히 중심 내용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 하는 논의는 인권 개념에 대한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해왔다. 먼저, 제1세대 인권이라고 불리는 시민정치적 권리(일명 자유권)는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에 재산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정치적으로 보장할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보편성을 넓혀갔다. 그 결과 1966년 채택된 자유권 규약은 생명권, 신체의 자유, 노예상태 및 강제노동 금지, 자의적 체포 및 구금 금지, 거주이전 및 주거 선택의 자유, 법 앞의 평등한 대우, 형법의 소급 적용 금지, 개인의 사생활 보호, 사상·양심·종교·표현·집회·결사의 자유, 공무 참여와 선거 및 피선거권과 같은 참정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 내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러시아혁명을 거치면서 제2세대 인권으로 불리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일명 사회권) 개념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국제관계에서 사회권은 주로 사회주의진영에 의해 강조되었지만, 국제법적 장치는 자유권보다 약한 상태이다. 역시 1966년 채택된 사회권 규약은 노동권, 노조 결성 및 가입의 권리, 사회보장권, 건강권, 교육의 권리, 문화생활 영위 권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자유권과 사회권 가운데 인간의 삶에 바탕이 되는 생명, 안전, 생존에 관한 권리를 기본권(basic rights)이라고 하고, 여성, 아동,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권리는 자유권이나 사회권을 관통하며 사회적 약자로서 별도의 인권 영역으로 다루어진다.

   한편, 인권 문제를 둘러싼 3세대 논쟁은 1960년대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1, 2세대의 인권 논의가 냉전 시대 동서 양 진영의 정치적 이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제3세대 인권은 제3세계 약소국을 주요 행위자로 하는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어 ‘연대권’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결권, 발전권, 문화적 유산의 존중, 인도주의적 원조 그리고 평화권 등이 제3세대 인권들로 간주되고 있다. 이 중에서 제3세대 인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발전권과 평화권은 제3세계 국가들의 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에 의해 1970년대부터 그 의의가 부각되었으나, 정치적이고 법리적인 문제로 인해 국제법으로 성문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평화 개념의 발달도 간략히 살펴보자.
(주 :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서보혁 · 강혁민 엮음, 『평화개념 연구』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2) 참조 바람.) 평화 개념이 물리적 폭력의 부재(소극적 평화)에서 사회 정의, 경제 평등, 문화 다양성, 생태와의 공존 등으로 확대된 것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지구촌 차원의 산업화와 불평등을 배경으로 한다. 평화 연구에서 갈퉁(J. Galtung)의 ‘적극적 평화’론은 지금까지 가장 주목받고 있는데, 그는 적극적 평화 개념을 통해 근대 국가폭력과 힘에 의한 현상유지의 한계를 직시하고, 진정한 평화는 구조적?문화적 폭력의 중단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평화를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거나 폭력이 감소하는 것”으로 정의하되, 적극적 평화 = 소극적 평화 + 구조적 평화 + 문화적 평화로 정식화한다. 갈퉁의 폭력-평화 이론은 각각 3차원의 폭력과 평화를 한 축으로 하고, 여기에 자연(N)-개인(P)-사회(S)-세계(W)-문화(C)-시간(T) 등 6개 영역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대단히 구체적인 폭력과 평화를 제시하고 있다.(주 : 요한 갈퉁, 김종일 외 옮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서울: 들녘, 2000).)

   적극적 평화에 관한 바라쉬(D. Barash)와 웨벨(C. Webel)의 설명에 따르면, 소극적 평화는 현실주의 시각으로서 전쟁 부재와 강자에 의한 질서 유지를 의미하고, 적극적 평화는 전쟁 부재를 넘어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사회적 차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사회 조건을 말한다. 적극적 평화론에서 강조하는 구조적 폭력은 ① 직접적 폭력이 부재한 가운데서도 사회, 문화, 경제 제도의 구조에 존재하는 일련의 사회적 억압으로서, ② 간접적이고 교활한 폭력인 관계로 광범위하게 존재하면서도 잘 인식되지 못하지만, ③ 그 결과는 가시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선량한 시민들도 타인에 많은 해를 입히는 데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적극적 평화는 사회 정의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그에 대한 견해는 이념에 따라 일치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과 같은 사회 불의는 구조적 폭력은 물론 전쟁 발발의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에 따르면 국제적?사회적 차원에서 특권층은 폭력 근절을 평화라고 주장하며 특권 유지를 꾀하지만, 민중이나 피압박 민족은 그런 평화를 기만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대규모 피해가 예상되는 폭력과 갈등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주 : David P. Barash and Charles P. Webel, Peace and Conflict Studies (Thousand Oaks: Sage, 2002), pp. 7-9.) 여기서 적극적 평화가 소극적 평화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이해이고, 적극적 평화는 소극적 평화 위에서 평화를 보다 깊고, 넓게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2) 평화와 인권의 조우

   평화와 인권을 어떻게 상호보완적 관계로 파악할 수 있고 연계시킬 수 있는가?

   먼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론적 측면에서 평화와 인권은 각기 범주를 확장해나가면서 둘 사이의 교집합이 형성된다. 평화가 소극적 평화에서 적극적 평화로 확장해가면서 보게 되는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의 평화라는 것은 사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범주와 대동소이하다. 반대로 인권 범주 역시 시민정치적 권리에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로 나아간 점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발전권, 소수집단의 권리 등 제3세대 인권은 소극적 평화를 밑바탕으로 삼아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히, 평화권(Right to peace)은 평화와 인권이 일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평화는 인류의 존엄한 삶의 전제조건이자 일종의 집단적 의무로 인식되어 오다가 1970년대 들어서 하나의 거대 인권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는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양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핵 군비경쟁,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경제 불평등 하에서 제3세 국가들의 국제무대 진출 등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1984년 유엔 총회에서 ‘평화권 선언’이 채택되었다. 평화권은 안전하고 비폭력적인 세상에 살 권리로 정의되는데, 선언은 갈등의 발생 및 영향을 최소화하고 그 원인까지 축소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사회 구조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화권을 실현한다는 것은 모든 억압의 기제들과 차별, 착취에 대한 투쟁과 관련되어 있는데, 억압과 착취가 평화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고 다른 모든 인권의 가치와 그 실현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평화권은 개인에서부터 국가와 국제사회 차원에 이르는 집단적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평화권은 소극적?적극적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데, 소극적 의무는 평화가 전적으로 인권 존중의 원칙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조성(peace-making)이 반드시 인권의 토대 위에 수립되어야 하고 평화유지 및 평화구축도 반드시 인권을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 : Bertrand G. Ramcharan, Human Rights and Human Security (Hague: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2). p.13.) 적극적 의무는 지역, 국가, 국제적 차원에서 평화를 달성하고 유지하는 노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평화와 인권은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조화를 맺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3. 한반도에서 평화와 인권의 담론

    1) 남북한의 평화·인권관

   먼저, 남북한의 평화관을 살펴보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2022년 국민들의 ‘통일의식조사’
(주 : 이 조사는 전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면대면 설문조사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95%의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2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을 지지하는 여론은 45%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가장 우선시해야 할 대북정책으로 남북의 평화적 공존 및 한반도 평화정착에 62.7%로 응답했다. 이 응답은 남북통일(16.8%),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 경제공동체 통합(20.1%)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또 한국인들은 핵보유에 대해 55%가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들이 대북정책의 제일 목표로 평화공존을 꼽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여론이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통일 지지 여론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도 합리적이라 판단된다. 장기분단에서 오는 남북 간 체제 이질감의 심화, 3대 세습과 핵개발 등 북한체제에 대한 혐오감, 경제침체와 결부된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감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북한 주민들은 통일과 핵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코로나19 이전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여론을 엿볼 수 있다. 통일의 필요성에는 응답자 1,241명 중 97% 이상이 지지하였고, 핵보유에는 응답자 877명 중 50%가 지지하였다. (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주민 통일의식 2022』, pp. 270, 368.) 북한 주민들의 통일의식이 높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지만, 핵보유 지지 여론이 50% 수준인지는 의문이 든다.

   남북한 주민들의 평화관보다는 남북한 정권의 평화관에서 더 뚜렷하게 체제 경쟁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8회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로…튼튼한 안보를 구축할 것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주 : 대통령실, “한·미 동맹 영역은 계속 확장될 것...국민 기회는 더욱 커질 것,” 제18회 국무회의 윤석열 대통령 모두 발언 (2023.05.02.).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lpT6u70b (검색일: 2023.8.24.)) 
윤 대통령은 2023년 한미 연합연습(을지연습)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북한의 핵사용 상황을 상정하여 한미 양국의 핵과 비핵전력을 결합한 강력한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주 : 대통령실, “브리핑: 尹 대통령, 한미연합사 찾아 을지훈련 연습상황 점검,” 2023.08.23. https://www.president.go.kr/newsroom/briefing/K0bW62k4 (검색일: 2023.8.24.).)

   적어도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이 핵에 전적으로 의존해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핵보유국 지위를 자처하고 헌법에 이를 성문화하고 계속해서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북한은 2023년 7월 있었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 시험발사를 선전하면서 이를 “적대세력들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준동을 철저히 억제하기 위한 정당방위권 강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주 : 『조선중앙통신』, 2023.7.13.) 북한 관영언론들은 이 발사에 김정은이 참가해 지도했다고 전하면서 “적대세력들에 의해 한반도 안전환경이 엄중히 위협받고 있는 현 정세는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핵전쟁 억제력 강화 노선 관철에 더욱 분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화성포-18》형 시험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공개회의를 개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반공화국 노선을 포기할 때까지 가장 압도적인 핵억제력 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반발하였다.(주 : 『조선중앙통신』, 2023.7.14.)

   위에서 보듯이 남북한 정권의 평화관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힘에 의한 평화, 나아가 핵무력에 기반한 안보를 추구하고 그 명분을 상대의 군비증강에서 찾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 한반도 안보 상황은 불확실성을 넘어 위험한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둘째, 남북한의 인권관을 살펴보는데, 여기서는 남북 간에 일정한 차이를 볼 수 있다. 남북한은 국제법상으로 유엔에 가입한 별개의 주권국가로서, 유엔 헌장이 추구하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 인도주의 등 보편가치들의 준수를 공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련 국제법규의 비준 및 이행, 기본 입장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인권을 예로 살펴보자.

   한국은 14개 국제인권협약 중에 10개에 비준하였다. 비준한 협약은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 아동매매·매춘·포르노그라피 관련 아동권선택의정서, 아동무장갈등 관련 아동권선택의정서, 장애인권리협약, 고문방지협약, 강제실종자보호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이다.
(주 :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국제인권협약은 이주노동자보호협약, 고문방지 선택의정서, 사형제폐지 선택의정서, 강제실종국가통보절차 등 4개이다.) 그에 비해 북한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은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 아동매매·매춘·포르노그라피 관련 아동권선택의정서, 장애인권리협약 등에 6개에 불과하다. 또 비준한 인권협약의 위원회에 이행보고서를 제출하는 성실성에서도 남북한은 비교될 만하다. 북한이 정기적인 보고서 제출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인권 제도 및 정책에서도 남북한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법부 독립,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의 설립, 비정부기구의 활동 등과 같이 인권 발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측면들에서 뚜렷한 수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차이 이면에는 인권의식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인권관의 차이가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관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계급적 시각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인권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어서 인권관 역시 계급적 시각을 띠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권의 보편성과 상충한다. 둘째, 북한의 인권관은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북한에서 집단주의가 널리 고취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자유권이 억제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북한은 기본권과 사회권을 중심으로 인권을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권을 “그 누구도 침해, 유린, 훼손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로동에 대한 권리로부터 먹고 입고 쓰고 살 권리, 배우며 치료받을 권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모든 권리가 철저히 보장되고 있는 나라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입장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인권을 국가 주권과 결부시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국가의 자주권을 떠난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국권을 잃은 나라 인민은 인권도 유린당하게 된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국권론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배경으로 2003년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집단주의적 사회주의 인권관과 대외적 긴장상태가 결합되어 나타났다고 하겠다.
(주 : 서보혁, 『북한 인권: 이론·실제·정책』 (서울: 한울아카데미, 2014), pp. 140-142.)

   북한의 인권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한의 인권관은 보편적 시각, 개인주의적 관점, 자유권 중심의 시각, 국가안보의 영향 등의 특징을 보인다. 물론 한국은 민주주의 체제의 역동성과 다원성에 힘입어 집단적 차원의 인권, 사회권 및 동물권 등 인권 영역의 확대, 그리고 가치외교의 강조 등으로 인권의 보편성은 물론 포괄성과 상호연계성 측면에서 계속 발전해가면서 인권 선진국의 위상에 올라와 있다.

    2) 평화와 인권의 관계 담론 지형

   이상으로 남북한의 평화·인권관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평화관에 있어 남북한은 유사한 입장, 즉 힘에 의한 평화, 핵안보론을 같이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그런 평화관이 남북 대결을 고취하고 한반도 평화를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에 비해 인권관에서는 자유권 대 사회권, 개인주의 대 집단주의의 양상으로 남북 간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남한의 인권관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그런 차이는 남북 간 비교 차원의 상대적 논의이다. 이렇게 평화·인권관을 묶어 남북의 입장을 [그림 1]에서 보면 남한은 Ⅰ, 북한은 Ⅳ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평화·인권 담론의 지형



   평화·인권 정책은 그 관점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 별개의 영역이다. 가령, 발달한 국내 인권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대북 인권정책에는 국내 인권제도를 모두 활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전략적·정치적 고려사항들이 개입한다. 거기에는 통일관, 대북관, 역내 국제정치적 동학, 그리고 국내정치적 고려가 포함된다.

   도식적으로 볼 때 남한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전개할 때는 소극적 평화 중심의 입장에서 북한의 자유권이 표적이 된다. 전반적으로 열악한 인권 상황 중에서도 자유권은 북한 정권이 보호책임(R2P)을 방기한 주요 영역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은 물론 남한체제로의 통일이 불가피한 이유로도 거론할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 미국의 핵억지전략, 인권침해의 책임자로서 북한 정권의 처벌, 교류협력 및 지원 중단, 흡수통일론 등이 대북 강경정책을 펼 때 선호하는 선택지들이다. 위 그림에서 Ⅰ의 위치가 중심에서 더욱 멀어져가는 형국이다.

   그에 비해 남한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전개할 때는 적극적 평화론을 운위하고 북한의 사회권 개선에 중점을 둔다. 물론 분단·정전체제라는 구조적 제약 아래 있으므로 대북정책 성향을 막론하고 어떤 남한 정부도 소극적 평화, 즉 힘에 의한 평화를 무시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대북포용정책을 전개하는 정부는 소극적 평화를 위해 대북 압박을 시위하는 일은 삼가는 모습을 보인다. 적극적 평화론을 펴는 이유는 상대를 인정하고 각종 협력 프로그램으로 공동 이익과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접근이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적극적 평화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사회권 중심의 접근을 하는 것은 자유권 침해가 북한의 약점이기 때문에 그 문제 해결은 국제인권기구에 맡기고, 대신 사회권 개선은 남북 교류협력으로 가능하고 그것으로 평화정착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는 Ⅲ의 위치인데, 그런 정향이 실제 정책으로 실행되기에는 안팎의 제약들로 어려움이 많다.



4. 전망과 과제

    1)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의 전망

   앞으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가능한 시나리오는 네 가지이다. 먼저, 북한 인권 문제를 우선시하는 접근이다. 이 입장은 인권이 평화, 민주주의, 발전 등 다른 보편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 위에 서 있다. 평화는 인권 신장의 전제조건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평화 자체가 아니라 인권이라는 것이다. 이 입장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 심각하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군사적 개입도 불가피하다는 인권 근본주의 시각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평화권, 즉 평화롭게 살 권리를 인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북한 인권 문제를 대북정책의 제일 순위로 놓는 입장은 과거 수많은 양자회담과 4자, 6자회담 등을 통해 비핵화, 평화정착에 우선순위를 두어온 정책 관행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2023년 한국을 비롯한 유엔 안보리 주요 이사국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안보리에서 다루기로 한 것은 그동안 전개해온 북한 인권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북한 인권=국제평화 문제라는 등식은 깊은 토의가 필요하지만, 이제 북한 인권을 대북정책에서 하위 관심사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한반도 평화를 우선하는 접근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관련국들의 기존 대북정책은 이 입장에 기반을 두고 전개해왔다. 물론 그 내에서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 사이의 선후 관계를 둘러싸고 정책 차이가 나타났다. 그런 차이 속에서도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성명 등을 통해 둘을 묶은 포괄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평화 우선 접근은 그 내의 주요 정책과제들 사이의 우선순위는 물론, 북한체제에 대한 근본적 불신과 인권 문제의 중요성 등 평화 외적 요소들의 제약에 의해서도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그동안 평화 우선 접근이 관련국들 정부 주도로 정치·군사적 이슈 중심의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의 존엄한 삶,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 전망을 소홀히 하였다는 비판을 샀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병행 접근하는 경우이다. 이 시나리오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데 비해, 어떻게 그런 상황을 조성하느냐에 대해서는 논의가 크게 미흡하다. 이는 그만큼 한반도 혹은 북한 문제가 안보 중심으로 다뤄져 왔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북한 인권 문제도 효과적으로 전개되지 못했음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또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병행 접근하지 않아 온 것은 두 가지 상반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 하나는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가 병행 접근할 성질인지 하는 의문이다. 다른 하나는 둘의 깊은 연관성을 파악하지 않고 별개로 접근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이다.

   네 번째는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두 문제 모두를 방기할 가능성이다. 이럴 가능성은 북한이 의도할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조율되지 않은 대북 접근이나 한반도 이슈가 타 국제 이슈에 눌려 정책 우선순위가 낮아진 결과 나타날 수도 있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가 방기된 경우가 없지 않았다. 주요 국가의 국내정치적 변화나 국면을 전환시킬 정도의 글로벌 이슈가 등장했을 때 그러하였다. 또 정치적 수사로 언급되는 빈도와 무관하게 대북정책의 효과 측면에서 한반도 문제가 방기될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상태는 긍·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면서 유동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긍정적인 것은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 접근할 성질이라는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위 네 시나리오로 본다면 기존의 첫째, 둘째 시나리오가 셋째 시나리오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문제는 두 문제를 병행 접근할 조건 조성과 방안 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방기)가 현실화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2)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의 병행을 위한 과제

   앞에서 그동안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가 별개로 접근돼왔다고 말했는데 그에 대한 비판 이전에 둘이 조화롭게 접근할 성질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평화와 인권은 두 개념의 확장 과정에서 교집합이 형성되고 있다. 평화권과 인간안보(human security)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평화 증진과 인권 신장의 길은 그 차이가 크다. 평화는 행위자, 특히 국가 간 협력이 주된 방식이고, 인권에서 국가와 시민은 잠재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다. 평화와 인권은 둘의 병행 추진을 위해 공통점을 확인하고 협력 프로그램을 전개하는 노력이 필요한 동시에, 각기 독자적인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약, 이 두 측면을 균형 있게 파악하지 않고 한 측면으로 환원할 경우 인권과 평화를 모두 방기할 우려를 살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평화권을 담론화하고 법제화하려는 준비 작업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평화권은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법제화의 길은 멀다. 북한은 자주권, 생존권, 발전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핵무력 강화 정책 앞 평화권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병행 추진할 또 다른 조건 조성 방안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 이해당사자들이 가능한 접촉을 적극적으로 벌여가는 일이다. 전쟁 중에도, 또 적대 국가 간에도 대화와 접촉은 있었다. 의사 전달과 의중 파악을 하면서 오인을 막고 신뢰를 만들어 가는 데 대화와 접촉은 필수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북정책에서 대화와 접촉을 양보나 굴복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정책 대안의 빈곤을 공격적인 태도로 은폐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물론 북한의 높은 적대의식과 위협인식, 그리고 국제 대북 제재 레짐으로 대화와 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나 북한과 외교 관계가 있는 나라, 혹은 계기별 국제행사를 통해 접촉을 시도하며 소통을 재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관심을 두는 영역 중 인도적 차원과 인권 개선 효과를 낼 분야에는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접근이다.

   이런 조건 조성을 바탕으로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증진을 병행 추진할 방안 몇 가지를 제안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제안할 두 가지 방안은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 또 북한을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대북관은 주관적 영역이고 화자마다 다양하지만, 그것이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크다. 대북관은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북한으로부터 기대하는 반응을 유도하는 데도 방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국제적 기준으로 북한의 행태를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진행할 바이다. 둘째, 대북 접근 면에서는 정책수단의 풍부한 활용이 유용하다. 특정한 대북정책을 맹신하는 것은 주객전도로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단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국내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적지 않은,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이 정책수단을 둘러싼 호불호의 문제인 점은 성찰할 바이다. 대북정책은 그 성격, 내용, 행위자, 맥락 등에 따라 다양하다. 이를 적절히 배합해 활용하는 것이 정책결정집단의 의무이자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은 국제사회의 그것과 같은 선상에 있으면서도 통일을 준비하는 특수한 성격을 가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둘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의 병행 추진은 보편가치들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확인하는 일이자, 통일을 보편가치들의 조화로운 구현으로 재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모범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내에서는 이 두 가치를 뿌리내리는 정책적 노력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등 다방면에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해나가려면 평화와 인권의 상호의존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지적·문화적 작업을 장려하는 일도 필요하다.



[참고 문헌]

- 갈퉁, 요한. 김종일 외 옮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서울: 들녘, 2000.
- 서보혁. 『북한 인권: 이론·실제·정책』 서울: 한울아카데미, 2014.
- 서보혁?강혁민 엮음. 『평화개념 연구』 서울: 모시는사람들, 2022.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김정은 집권 10년, 북한주민 통일의식 2022』 2022.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2 통일의식조사』 2022.
- 『조선중앙통신』. 2023.7.13.; 2023.7.14.

- Barash, David P. and Charles P. Webel. Peace and Conflict Studies. Thousand Oaks: Sage, 2002.
- Ramcharan, Bertrand G. Human Rights and Human Security. Hague: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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