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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산업과 이중전환의 시대,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

탈산업과 이중전환의 시대,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


1. 산업사회와 전통적 복지국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 즉 국가가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적 위험(social risks)에 대응함으로써 구성원의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고,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관여하는 체제는 역사적으로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물론 국가의 구성원 중 일부가 경험하는 빈곤에 대응하는 구빈제도는 산업사회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사회정책의 출발점은 19세기 말에 시작된 사회보험이며, 이 제도는 산업사회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것을 핵심 목적으로 했다.
  산업사회는 오직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임금노동자를 탄생시키고 그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했으며, 산업활동을 위해 임금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이 공장을 중심으로 모이도록 함으로써 도시화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산업사회 이전 공동체의 비공식적 보호망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노동력을 판매하는 임금노동자와 그 임금노동자의 수입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증가했다. 산업사회의 임금노동자가 노령, 사망, 질병, 장애,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직면해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될 경우 개인이나 그 가족뿐 아니라 생산체계 전반에 위협이 될 수 있었기에 ‘노동자 문제(Arbeitfrage)’의 해결은 산업사회 국가의 핵심적 과제로 대두되었다(Anttonen & Sipilä, 2012). (물론 그것이 산업사회의 과제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복지제도가 발전한다는 것은 아니다. 산업사회의 이와 같은 과제를 복지국가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지만, 기업복지에 의존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기능주의적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고 정치와 권력자원, 제도 등의 요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그에 관한 설명은 글의 목적상 여기에서는 상세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전통적 복지국가는 사회보험제도를 중심으로 사회정책을 배열함으로써 사회적 위험에 대응했다.(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을 구성하는 제도들로는 사회보험 외에도 사회수당과 사회부조, 그리고 사회서비스가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는 후술한 ‘신 사회적 위험’의 등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했으며, 사회수당과 사회부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제도이지만 복지국가의 ‘핵심제도’라고 하기에는 사회보험에 비해 규모나 역할이 현저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생산주의적 성격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제도가 사회보험이라고 할 수 있기에, 여기에서의 설명은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하고 제시하였음을 밝혀둔다.) 사회보험의 설계는 국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유사하다. 노동인구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기간 동안 소득의 일정비율을 사회보험재정에 기여하고, 일정한 기여조건을 만족한 개인에게 사회적 위험이 발생했을 때 기여기간 동안의 소득에 비례하는 급여를 지급한다. 이는 언뜻 보면 민간보험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를 둠으로써 제도에 ‘사회적’ 성격을 부여했다. 첫째, 사회보험은 대개 강제가입을 통해 제도를 운영하여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위험이 낮은 이들도 제도에 포괄했다. 둘째, 제도에 대한 기여를 위험 정도가 아닌 소득에 비례하도록 한 반면, 급여가 소득에 비례하는 정도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하였다. 부과방식 공적연금의 사례처럼 사회보험 재정의 보험수리적 균형에 유연성을 둠으로써, 인구구조 변화와 같은 사회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보험은 소득에 비례하는 기여와 급여체계를 통해 중산층까지 복지국가의 효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제도의 ‘사회적’ 요소를 통해 빈곤의 방지와 소득재분배 기능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보험은 사회구성원들의 공통의 위험에 집합적으로 대응하는 제도로 전통적 복지국가를 지탱한 사회적 연대의 기초가 되었다.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복지국가의 몇 가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효과적일 수 있었다. Taylor-Gooby(2004)는 이를 네 가지 조건으로 설명했다.
  첫째, 경제활동 인구의 다수에게 가족임금(family wage)을 제공할 수 있는 대규모의 제조업 기반 산업구조다. 흔히 ‘표준적 고용(standard employment)’이라고 불리는 전일제의, 기간을 정하지 않은, 직접 고용된 노동자(정규직 노동자)는 산업사회 고용구조의 특징이었다.(사실 산업사회라고 해서 실제로 수적인 다수가 제조업에 고용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제조업의 생산방식과 고용구조가 당시 경제와 산업의 표준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둘째, 아동과 노인을 포함하는 피부양 인구에게 사적 돌봄을 제공하는 안정적 핵가족 구조다. 흔히 ‘남성생계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이라 불리는 핵가족 구조는 – 가정에 남겨진 여성의 희생에 기대어 – 산업사회 복지국가가 재생산 영역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로 남성 노동자 중심의 복지제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셋째, 완전고용과 적정임금을 목표로 케인스주의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다. 산업사회의 복지국가는 대다수 노동인구가 괜찮은(decent) 일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실업이나 여타의 이유로 사회적 급여에 의존해야 하는 이들은 오직 소수라는 전제 위에서만 안정적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생산인구에 비해 피부양 인구 규모가 크지 않은 인구구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변동에 대응하여 실업률을 일정수준 이하로 – 이른바 완전고용(full employment) 수준으로 - 유지하고자 하는 국가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산업사회 복지국가를 ‘케인스주의 복지국가(Keynesian Welfare State)’라고 칭하는 것은 완전고용 정책과 사회보장제도의 결합을 통해 성립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넷째, 이 모든 체계를 뒷받침했던 것은 복지국가의 정치적 기반이었으며, 여기에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동맹,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타협(흔히 “포드주의적 합의”로 불렸던)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동맹’과 ‘타협’이 명시적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며, 국가에 따라 그 양상은 다양했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Korpi, 1983; Esping-Andersen, 1990; Pierson, 1991 등 참조). 그러나 일정한 계급 교차적 협력과 계급타협이 산업사회 복지국가였던 것은 대개의 ‘복지국가’들에서 공통적이었다.


2. 탈산업사회와 그 이후

  1) 탈산업사회와 복지국가의 위기
  전통적 복지국가의 위기는 바로 이 조건들의 약화와 함께 나타났다. 산업사회 복지국가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 황금기’의 종언을 알린 석유위기(oil shock)와 함께였지만, 그 배후에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들은 지금까지도 지속되며 전통적 복지국가 이후의 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첫째, 제조업의 고용창출능력 약화와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고용구조 변화가 나타났다. 제조업에서는 노동절약적 기술 발전으로 인한 고용감소가 생산성 발달로 인한 수요증가를 앞지르며 제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제조업 근로자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이제는 더 적은 일자리를 의미하게 되었다(Iverson & Wren, 1998). 감소하는 제조업 일자리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서비스업이었다. 실제로 1970~90년대 서비스업 일자리는 제조업 일자리 감소를 상쇄할 만큼 증가했다. 그러나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기에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가 급증하며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일은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Esping-Andersen, 1999).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이 갖는 더 큰 의미는 일자리의 양보다 질에 있었다. 탈산업사회 고용구조의 중심이 된 서비스 일자리는 제조업 일자리에 비해 생산성 증가속도가 느리며, 그 결과 노동시장에서 임금 상승속도가 제조업에 비해 느리다. 따라서 서비스산업 일자리는 그 사회의 평균적인 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높이고자 할 때는 서비스업의 노동집약적 특성상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요를 감소시켜 서비스업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 불평등 증가와 일자리 감소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고용-평등의 딜레마가 나타나는 것이다(Esping-Andersen, 1996).(이는 다분히 개인서비스 및 사회서비스 중심의 설명이다. 서비스업에는 매우 다양한 범주가 있으며, 그중에는 사업자서비스나 전문서비스 등 제조업보다 더 높은 고용조건을 유지하는 영역도 있다. 그러나 대개 이와 같은 영역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며, 특히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에서 증가한 것은 개인·사회서비스 부문의 저숙련 일자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Esping-Andersen, 1999).)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서비스업의 임금을 높이면서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이는 고용과 평등의 딜레마를 완화할 수 있지만, 국가재정의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 서비스 중심 경제에서 고용-평등-재정안정을 동시에 확보할 수 없다는 서비스 경제의 트릴레마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Iverson & Wren, 1998).(실제로 북유럽 국가들은 국가개입으로 대규모의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고용-평등의 딜레마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로 인한 재정압박이 나타났는데, 이후의 연구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이 세입의 확충을 통해 재정 압박에서 벗어나 ‘완전모델’에 가까워졌다고 보기도 한다(신동면·최영준, 2012).)
  서비스업의 다른 특성들 역시 일자리의 질을 낮추는 경향을 갖는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서비스 노동자의 임금과 서비스의 가격, 그리고 서비스 수요 간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사용자는 고용의 유연성을 강하게 추구하게 된다(백승호, 2014). 또한, 서비스산업에서는 제조업보다 기업특수적 숙련의 요구가 낮아 사용자 입장에서는 장기적 고용관계의 이점이 적다(정이환, 2003). 서비스산업의 생산품은 제조업과 달리 과잉생산될 경우 이를 보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특성은 서비스 부문의 사용자가 산업사회의 표준적 고용관계가 아닌 유연한 고용관계를 선호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둘째, 경제의 지구화(globalization) 또한 중요한 변화의 요인이었다. 지구화는 과거 국민국가 단위로 이루어진 경제-사회정책 패키지의 활용 가능성을 제약했고, 이로 인해 리플레이션(reflation) 정책을 통한 완전고용의 추구가 어려워졌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노동-자본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 고용조건의 약화를 초래했으며, 재정적자 축소와 국가채무 감축을 강조함으로써 사회보장의 축소를 결과한다. 국제적 경쟁은 노동시장 유연화-임금불평등 증대로 이어지고, 조세부담 감소의 압력으로 작용하여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Mishra, 1999). 고용 측면에서도 경제의 지구화는 기업의 노동유연성 강화를 위한 경영전략 증가나, 정부의 고용보호 법제 완화와 같은 변화의 배경이 되었다(신광영, 2013).
  셋째, 인구 및 가족구조 변화도 후기산업사회 복지국가의 환경을 크게 변화시킨 요인이다.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노후보장과 의료보장인데, 인구 고령화는 양자의 지출을 모두 증가시킨다. 동시에 전체 인구에서 노인인구 비중의 증가는 생산인구의 상대적 비중을 낮춤으로써 복지국가 프로그램에 대한 재원을 악화시킨다. 인구고령화는 복지국가의 재원감소와 지출증가를 동시에 초래하는 요인이다.(여기에 전술한 생산인구의 낮아진 고용안정성이나 임금수준 역시 복지국가 프로그램의 재원에는 마이너스로, 지출에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산업사회의 핵가족 구조 역시 약화되었다. 탈산업사회에서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는 크게 증가했는데, 한편으로는 안정적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에 따라 가구 내 추가적인 소득원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업 고용에서 여성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비스 경제에서 여성의 취업 증가는 다시 가사·서비스업 수요를 증가시키는 순환관계를 형성한다(Esping-Andersen, 1999). 물론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고숙련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 역시 여성 취업 증가의 한 요인이었다.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 경제의 지구화, 인구구조와 가족구조의 변화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기반이 되었던 조건들을 잠식했다. 첫째, 고용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이동하고, 경제의 세계화 속에서 경쟁이 증가하는 환경은 과거의 ‘표준적 고용’이 더이상 ‘표준’이 아닌 상황을 초래했다. 불안정한 저임금 고용의 증가는 경제활동에 참여 중인 노동자와 그 가구에 대해서도 복지국가의 지원이 요구되는 상황을 결과했다. 둘째, 인구구조와 가족구조 변화 속에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약화됐으며, 이는 성평등 증진이라는 긍정적 결과도 가져왔지만,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 증가라는 새로운 욕구를 불러왔다.(성평등 역시 ‘여성 생애주기의 남성화’에 따른 불완전한 성과에 그쳤다. ‘남성 생애주기의 여성화’가 함께 나타나 ‘2인 부양자-돌봄자 모델(dual earner-carer)’에 가까워진 국가는 여전히 드물다(Esping-Andersen, 2002)) 문제는 이와 같은 새로운 욕구의 증가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와 인구 고령화가 초래한 복지국가의 재정압박 맥락 속에서 나타났기에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수용능력이 불충분했다는 점이다(Bonoli, 2007). 셋째, 탈산업사회에서 국가는 더이상 완전고용을 핵심목표로 추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증가하며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환경도 작용했지만, 경제의 지구화와 함께 대두된 공급주의 경제정책에서는 완전고용보다 물가안정과 균형재정을 더 중요한 목표로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넷째,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는 노동시장 주변부에서부터 나타났으며, 이는 흔히 이중노동시장으로 불리는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초래했다. 여기에 표준적 고용 대신 노동 유연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전략은 노동과 자본의 포드주의적 타협 역시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을 가져왔다.

  2) 복지국가의 재조정? 사회투자국가와 그 한계
  지금까지 산업사회 복지국가를 마치 하나의 고정된 체계처럼 설명했지만, 사실 복지국가는 고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적인 개혁과 변화를 거치며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다. 오히려 복지국가의 ‘위기’는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것으로 전술한 석유위기 이후의 전통적 복지국가 기반 잠식은 확실히 ‘복지국가 위기론’이라고 할만한 논의를 불러일으켰지만, 복지국가가 급격하게 쇠퇴하거나 소멸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복지국가라는 거대한 제도가 쉽게 후퇴할 수 없는 정치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들이 지적되어 왔지만(Pierson, 1996; Bonoli, 2001 등), 동시에 복지국가가 개혁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왔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Van Kersbergen & Vis, 2014).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어떻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왔는가? 탈산업사회로의 전환에서 나타난 복지국가에 대한 압력을 크게 두 유형으로 보면, 한 가지는 기존 사회보험 내에서의 재정압박과 기능부전이며, 다른 한 가지는 기존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가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의 등장이었다.
  사회보험의 기능부전에 대한 대응은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나타났다(Häusermann, 2010). (Häusermann의 논의는 주로 연금제도를 대상으로 하였지만, 실업 관련 제도를 포함한 사회보험제도 일반으로 확대해도 대체로 성립하는 논의들이다. 실업 관련 제도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남재욱, 2017을 참조하시오.) 첫째, 재정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지출 축소경향인 ‘긴축(retrenchment)’이다. 이는 특히 인구고령화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과방식 공적연금제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실업급여나 장애급여 등에서도 관대성을 낮추는 개혁들이 나타났다(Clasen & Clegg, 2012). 둘째, 사회보험의 긴축으로 인해 약화된 소득보장을 보충하기 위한 ‘표적화(targeting)’다. 표적화의 양상은 주로 자산조사를 거쳐 지급되는 급여의 강화로 나타났다. 셋째,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재조준화(recalibration)’다. 재조준화는 상당한 기여이력을 요구한 기존 사회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시장 약자의 사회보험 통합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크레딧 제도의 확대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변화는 한편으로 사회보험이 당장에 직면한 재정적 위험에 대응하면서도(긴축), 그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고(표적화), 장기적으로 사회보험제도의 통합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였다(재조준화). 그러나 국가별 차이가 있겠지만, 긴축의 뚜렷한 양상에 비해 재조준화의 성과는 불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탈산업사회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은 새로운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변화된 인구, 노동, 가족구조에 대응하고자 하는 경향이었다. 흔히 ‘사회투자모델’로 알려진 이 경향들은 ‘제3의 길’, ‘신 사회적 위험 대응’, ‘유연안정성’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났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정책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즉, 사회정책이 소득의 손실을 입었거나 입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 사회정책을 통해 인적자본의 축적과 활용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투자정책은 주로 사회서비스 영역을 강조했는데, 돌봄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가족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인적자본 투자 정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족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현세대 노동인구가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면, 이 중에서도 보육서비스와 평생학습은 현세대와 미래세대 노동자의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정책이다.
  탈산업사회 복지국가가 직면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소득보장제도의 변화와 사회투자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한편으로 특히 보편적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사회투자정책은 ‘사람’에게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면서도 사회적 생산성을 유지하고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투자적 정책은 지나치게 노동을 강조함으로써 복지국가의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 기능이 약화되고 빈곤과 불평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Cantillion, 2011). 물론 이에 대해서는 사회투자 복지국가가 시도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성과를 거두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투자적 복지국가가 내포한 ‘복지에서 노동으로(welfare to work)’의 경향은 중도좌파의 복지국가 비전과 중도우파 정책 사이의 차이를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가 대중들에게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이것이 최근 서구 복지국가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한 배경이 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남재욱, 2019).

  3) 쌍둥이 전환(twin transition)과 복지국가의 미래
  사회투자 복지국가가 탈산업사회의 위험에 불완전하게 대응하는 동안 새로운 복지국가를 둘러싼 환경은 또 한 번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쌍둥이 전환’으로 불리는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이 그것이다.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은 복지국가 내부에서 비롯된 위기는 아니지만, 복지국가를 둘러싼 노동과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복지국가의 재조정을 요구한다. 
  디지털 전환은 탈산업사회로의 전환에서 나타난 복지국가의 위기를 심화시키는데, 특히 노동시장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전망이 제시되고 있지만, 적어도 일자리의 ‘구조’를 바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다. 일자리의 구조 변화는 두 측면에서 논의되는데, 하나는 디지털 기술이 정형화된 과업(routine tasks) 비중이 높은 일자리를 먼저 대체함으로써 노동시장이 양극화된다는 것이다(Goos & Manning, 2007; Goos et al., 2014). 정형화된 과업의 비중이 높은 일자리는 주로 중간숙련 일자리인 경우가 많은데,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높은 수준의 숙련을 요하는 고숙련 직종이거나, 혹은 서비스 부문의 저숙련 일자리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중간숙련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겠지만, 일자리의 양극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일자리 양극화는 전체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소득수준이 낮은 노동자의 비중을 높이게 되며, 복지국가에는 지출요인 증가와 수입 감소를 초래한다(Eichhorst et al., 2019; Palier, 2019).
  두 번째 변화의 경향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증가다. 디지털 플랫폼은 일자리(job) 단위가 아닌 일감(task) 단위로 노동을 중개하기에 중개(matching)의 효율성이 높을 수 있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노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는 많은 경우 플랫폼에 의해 통제된 노동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지위에 있어 종전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이는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에서 나타난 비표준적 고용(주로 시간제나 기간제 비정규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외주화된 불안정 노동(특고·프리랜서)의 성격을 갖는다(남재욱 외, 2020).
  디지털 시대의 노동시장 변화는 공통적으로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며, 이는 표준적 고용을 전제로 한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와 노동시장 간의 이격을 심화시킨다. 이는 최근 국내외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사회보험과 같이 기존의 소득보장 프로그램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들이 제시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쌍둥이 전환의 또 하나인 녹색전환은 디지털 전환과도 다른 현대 복지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현재 복지국가 체제가 더욱 대응하기 힘든 위협은 디지털 전환보다 녹색전환인지도 모른다.
  전통적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생산체제와 복지체제의 상호보완성을 중시하며, 생산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복지체제가 생산체제를 지원하거나 적어도 생산체제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하지 않음으로써 분배의 총량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회보험은 장기고용과 직종 혹은 산업 특정적 숙련투자를 지원함으로써 산업사회의 생산체제를 지원했으며(Estevez-Abe, 2001), 비교적 최근의 사회투자국가 역시 명시적으로 복지의 생산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전환은 복지국가가 생산주의와 결별할 것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물론 생산과정을 탄소 중립적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어느 정도 빨리 도입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과거와 같이 끊임없는 확장을 전제로 한 생산과 분배 시스템이 지속될 여지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복지국가는 그간 초점을 맞추어온 재정적·정치적 지속가능성을 넘어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편으로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초래한 요인이 과거의 시장 중심 경제시스템의 폐해에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복지국가의 역할이 클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복지국가는 어쨌든 분배 체계이며,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복지 정책과 친환경 정책이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시너지 가설(synergy thesis)’은 생태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한다(Dryzek, 2008; Koch & Fritz, 2014).
  그러나 분배체계로서의 기존 복지국가가 과연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맞는 시스템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술한 것처럼 전통적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지속적 생산확대를 전제로 한 생산주의적 체제였으며, 분배 역시 이를 전제로 성립해왔다. 따라서 생산주의에서 생태주의로의 전환은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발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한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인간의 물질적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분배가 아니라 성장의 생태적 한계선 안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필요(needs)를 만족시키기 위한 분배를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보장하기 위한 인간의 필요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탐색할 필요가 있다.


3. 한국 복지국가의 중첩적 과제

  지금까지 설명한 복지국가의 역사적 흐름은 주로 유럽과 북미의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한국은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압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 압력에 대응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으며, 그 결과 중첩된 과제들을 안고 있다.
  서구 국가들에서 전통적 복지국가는 대부분 자본주의 초기에 출발하여, 전후 황금기에 확대되고 안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기 동안 복지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기본적인 복지제도를 갖추고 복지국가의 초입에 들어섰다. 한국에게 1990년대 후반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고도성장기가 종료된 시점이었기에 성장의 정체와 복지확대가 동시에 나타났으며, 이는 서구 복지국가와 다른 불일치였다. 여기에 한국이 복지국가로 출발하여 복지를 확대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경제적 지구화를 배경으로 한 재정 보수주의 속에서 복지국가의 축소 또는 재조정이 나타나던 시기였으며, 이와 같은 국제적 환경은 한국에게 있어서 또 다른 불일치였다.
  결과적으로 후발 복지국가로서 한국은 서구 복지국가가 한 세기에 걸쳐 형성하고 사회적 위험에 대응해온 제도를 단시간에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대응해야 할 사회적 위험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가 산업사회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를 형성하고, 탈산업사회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국가를 재조정해온 것과 달리 한국은 복지국가가 이륙하는 시점에 이미 탈산업화가 진행되어 있었기에 중첩된 과제를 떠안아야 했다. 흔히 구 사회적 위험으로 불리는 질병, 장애, 노령, 사망, 실업에 대응하는 사회보험제도와 신 사회적 위험으로 불리는 일·가정 양립, 근로빈곤, 저출산 고령화에 동시에 대응해야 했던 것인데, 이에 대응할만한 국가의 재정적 능력도 정치적 권력자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국의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다. 한국의 사회보험 사각지대에는 ‘제도적 사각지대’와 ‘실질적 사각지대’가 있다. 이중 좀 더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어 온 것은 ‘실질적 사각지대로’ 사회보험제도의 법적 적용대상이지만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문제다. 여기에는 임시·일용직 노동자 및 소규모·영세기업 종사자의 미가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와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비정규직 증가 및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미가입 문제가 함께 작용한다. 한국 노동시장에 잔존하는 전근대적 고용관행으로 인한 비공식 고용(informal employment)과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폐해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전병유, 2011). 

[그림 1] 임금노동자의 유형별 고용보험 가입률(2019년 8월)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19년 8월).

  반면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비임금노동자로 임금노동자 중심의 사회보험과 비임금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노동시장과의 부정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비임금노동자 문제는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초고속 산업화 과정에서 미처 임금노동자화되지 못한 자영업 부문과 IMF 외환위기 이후 밀려 나온 임금노동자들의 자영업자화, 그리고 최근 증가하고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가 뒤섞여 있다. 제도적 사각지대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제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표 1] 고용보험 사각지대 현황(2019년 8월)
                                                                                          (단위: 천명, %)

취업자
비임금근로자 임금근로자
고용보험 적용제외1) 고용보험 미가입 공무원 등2) 고용보험 가입
6,799 1,781 3,871 1,469 13,528
(24.9) (6.5) (13.8) (5.4) (49.4)

주 1) 5인 미만 농림어업, 가사서비스업, 65세 이상, 평소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으로 3개월 미만 일하고 일용직이 아닌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에 종사하는 근로자. 
   2)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별정우체국 직원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출처: 통계청(2019). 이병희(2020: 5)에서 재인용.


  한국 노동시장의 이와 같은 상황은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전제로 설계된 전통적 사회보험이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국의 사회보험이 도입 이후 꾸준히 제도적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여전히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안정된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이에 비례한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가 분절된 노동시장 환경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복지국가의 이중화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복지국가에서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배경으로 이중 노동시장과 복지국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Emmenegger et al., 2012). 이는 복지국가의 재구조화가 전 세계적인 과제인 원인 중 하나이지만, 한국은 해묵은 과제와 새로운 도전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산업사회와 탈산업사회 복지국가의 과업들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역시 쌍둥이 전환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한국의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기술 발전으로 인한 숙련수준의 양극화 경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그림 2] 참조),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 및 그로 인한 불안정 고용과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 문제 역시 최근 부각되고 있다(남재욱 외, 2020).

[그림 2] 한국의 숙련수준별 고용비중

출처: Kim, Hong & Hwang(2018: 7)

  여기에 한국은 탄소집약적 산업의 비중이 높은 국가이면서도 녹색전환에 매우 늦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녹색전환이 가져올 수 있는 일자리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용·복지 정책에 대한 준비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며, 사회적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구조조정 위기를 넘긴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는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시되는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위한 자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국이 녹색전환에 대응하여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구축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게 되는 상황이다.


4.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서

  이 글의 목적은 새로운 복지국가의 상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전통적 복지국가가 현재의 환경과 어떤 부정합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앞의 장들에서는 전통적 복지국가가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복지국가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재조정 되었는지, 그와 같은 조정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도전이 어떤 위기를 드리우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복지국가가 미성숙한 상황에서 탈산업화와 쌍둥이 전환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간략히 검토하였다.
  앞서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복지국가는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끊임없는 개혁과 조정을 필요로 하는 제도다. 이는 한국과 같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복지국가가 발전해가는 경로 역시 서구의 복지국가 경로를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처한 환경에 맞는 발전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복지국가가 형성되고 발전했던 환경과 한국 복지국가가 처한 환경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사회적 환경에 맞는 복지국가는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 이 질문에 온전히 답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탈산업사회와 그 이후의 변화로부터 복지국가 조정의 몇 가지 방향을 모색할 수는 있다.
  첫째, 특히 소득보장제도에 있어서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사회보장의 분리가 필요하다. 탈산업사회 이후 사회보장제도에서 나타난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보장제도의 수급권이 노동시장 지위에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진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가장 보호를 필요로 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으며, 그 결과 복지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접근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에 있겠지만, 어떤 노동시장 지위에 있든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유효한 해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첫째, 사회보험이 모든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도록 조정해야 하며, 둘째, 이를 위해 ICT 기술을 활용하여 기여와 급여체계를 현대화하고, 셋째, 조세기반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Berg et al., 2018). 사실 이 세 방향은 모두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아이디어들이다.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적용되는 ‘전국민 고용보험’, 나아가 ‘전국민 사회보험’의 방향이 첫 번째라면, 전국민 사회보험을 뒷받침하는 실시간 소득파악 체계가 두 번째에 해당한다. 세 번째의 조세기반 사회보장제도 논의로는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 확대, 실업부조 도입,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 등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중 첫째와 둘째의 논의는 일정하게 방향에 대한 합의 속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반면, 세 번째의 조세기반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해서는 기본소득, 부의소득세(NIT), 기존 공공부조 체계의 개선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설사 보편적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배제된 저소득층의 문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보면, 어떻게 실효성 있는 최저수준 이상의 소득보장을 구축할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 복지제도 재구축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사회서비스 강화가 필요하다. 신 사회적 위험을 대표하는 저출산 고령화와 일·가정 양립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돌봄 욕구를 높인다. 그런데 양질의 사회적 돌봄은 돌봄 일자리의 질과 비례하며, 이 점은 사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과 서비스 경제에서 좋을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양질의 돌봄 제공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구원의 성인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고령화 사회에서 생산인구 부족의 문제에 대응하는 데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생산인구의 인적자본과 관련된 사회서비스, 즉 교육훈련 관련 사회서비스 역시 돌봄 못지않게 중요성이 높다. 이는 특히 탈산업사회의 맥락뿐 아니라 쌍둥이 전환의 맥락에서 그러하다. 디지털 전환과 녹색전환은 공통적으로 생산과정의 재편성을 요구하며, 이는 노동자의 역할 조정을 필요로 한다. 이 조정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외되는 노동자가 최소화되게 하려면 노동인구의 숙련향상(upskilling) 및 재숙련화(reskilling)가 필요하다. 노동자에 대한 숙련개발 지원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숙련형성 과정을 사회적 권리로 보장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이는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복지국가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적 검토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통적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생산주의적이었으며, 생산을 위해 기여하거나 적어도 생산과정과의 상호보완성을 갖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생산의 확대, 성장의 지속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바, 녹색전환 시대의 복지국가는 지구환경의 한계 안에서 구성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목표가 구성원들의 소비능력을 위한 자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와 역량(capability)을 보장하는 체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와 역량을 위한 복지국가는 무엇을 기초로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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