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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육불평등’의 시대,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대안

‘교육불평등’의 시대,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대안
 

이형빈 (교육과정혁신연구소 소장)

 

1. 한국 교육불평등의 실태

  전근대 사회에서 교육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 성립 이후 공교육 체제가 확립되면서 교육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무상의무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는 국민에게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국민은 누구나 차별 없이 교육의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공교육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는 영역이자, 기득권층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합법적으로 대물림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공교육은 자신의 통치 이념에 순응하는 복종적 주체를 형성하는 기구이자, 자본이 요구하는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통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교육은 한정된 재화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다. 대부분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학벌이 곧 자신의 미래의 직업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권학교나 사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일부 계층의 자녀가 이러한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시경쟁에서 탈락한 이유를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은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구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리화하는 기제’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은 이러한 교육불평등을 타파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 무상교육의 확대는 자녀의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등한 출발점을 부여했다. 특목고, 자사고 등 고교평준화의 근간을 흔드는 특권학교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의 결과로, 2025년에는 이들 학교가 일반고로 전환될 예정이다. 진보교육감의 등장 이후 전국적으로 혁신교육이 확산됨에 따라, 학교의 교육과정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경향에 맞서 학생들을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경향 역시 강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교육을 통해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재생산되는 교육불평등 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최근 발표된 김성식 외(2020)의 연구에 의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진학 및 취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2004년 중학교 3학년 시절을 기점으로 2015년까지 고교, 대학, 노동시장 진입까지의 데이터를 축적한 <한국교육고용패널 2004> 자료를 분석한 종단연구이다. 

 
[표 1] 가구소득에 따른 고교유형의 차이

가구소득

고교유형

외국어고

과학고

일반계고

전문계고

100만원 미만

0.6%

0.1%

67.1%

32.2%

100-300만원

4.2%

2.7%

32.3%

60.8%

300-500만원

7.6%

8.2%

48.3%

35.9%

500-700만원

17.4%

18.3%

43.8%

20.6%

700-1000만원

20.9%

32.6%

34.1%

12.4%

1000만원 이상

29.5%

18.0%

37.7%

14.8%

전체

6.8%

6.7%

47.1%

39.4%

 
 [2] 고교유형에 따른 진학대학

고교유형

대학

상위
5위권

상위
5-20

지방
국립대

기타
서울·경기

지방
사립대

2-3년제

외국어고

22.8%

38.6%

8.1%

13.1%

15.8%

1.5%

과학고

78.6%

17.0%

2.2%

0.4%

1.8%

0%

일반계고

2.4%

10.3%

14.9%

15.1%

32.3%

25.0%

전문계고

0.2%

1.5%

5.7%

6.5%

18.1%

68.1%

전체

9.5%

10.0%

10.2%

10.8%

23.6%

35.9%

 
[3] 고교유형에 따른 취업 기업의 규모

 

대기업
(300인 이상)

중기업
(50-300)

소기업
(50인 이하)

외국어고

57.9%

23.4%

18.7%

과학고

76.7%

11.6%

11.6%

일반계고

37.7%

21.6%

40.7%

전문계고

28.7%

24.0%

47.3%

전체

36.9%

22.2%

40.9%

 

  이 데이터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출신학교 및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 고소득층의 자녀는 특목고와 세칭 명문대를 통로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크게 보아 경제적 자본과 사회문화적 자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제적 자본은 고액의 공교육비(특목고, 자사고의 학비는 연간 600~1,000만 원에 달하며 이는 일반고등학교의 세 배 이상에 해당한다)와 고액의 사교육비를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문화적 자본은 경제적 자본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적 네트워크나 동료효과, 가정의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학문적 지식이나 문화적 소양 등을 말한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 캐슬>, <팬트 하우스>는 이러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자본이 어떻게 특권계층에 의해 독점되고 공유되는지를 막장 드라마 스타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의 노력으로 이러한 불평등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필 필요가 있다. 교육사회학에서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학교효과’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보고서인 ‘콜맨 보고서’에서는 “학교가 근본적으로 이러한 격차를 완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고 하여 학교교육 무용론으로 빠질 수는 없다. 콜맨 역시 학교 안에서 새로운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경우에는 가정의 배경에 따른 불평등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Coleman, 1988). 또한, 경제결정론에 빠졌던 초기의 교육사회학 연구와는 달리 신교육사회학에서는 학교교육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안적 이데올로기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진보교육감 진영이 추진하는 혁신교육 역시 이러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혁신학교가 확대되더라도 부모의 부와 권력이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구조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학교구조와 진보적 교육과정을 통해 대안적인 헤게모니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다 평등한 교육구조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며, 더욱 진보적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것은 교육의 영역이다. 이러한 정치적 노력과 교육적 실천이 만나 ‘정의로운 미래교육’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과제는 교육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구조적인 차원의 정책 과제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결과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시장지상주의, 능력주의(meritocracy)에 맞서 모든 사람의 평등한 교육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을 실현하는 과제이다. 두 번째 과제는 공교육의 구조를 변혁하는 것과 함께 학교 교육과정의 내용을 새롭게 하는 과제이다. 이는 학교교육을 통해 모든 개인이 자신의 탁월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다.


2.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과제 1 - 고등교육의 근본적 개편,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교육불평등의 근본 원인은 학벌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학 및 고교 서열화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 체제는 미군정 당시 이른바 ‘국대안(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에 따라 서울대학교에 온갖 특혜를 집중한 이래 서울대 출신 학벌엘리트가 한국사회를 지배함에 따라 형성되었다. 이와 함께 1990대 외고 시범 설치, 2000년대 자사고 시범 설치 이후 특목고 자사고가 꾸준히 확대되어 왔으며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인해 고교서열화는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고교-대학 서열화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전통적으로 복선제(인문교육/직업교육)가 자리 잡은 유럽에서도 인문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 내에서는 특목고/자사고/일반고 식의 분화가 없으며, 스웨덴 등의 복지국가에서는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이 통합된 고등학교체제를 갖추고 있다. 또한,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대학 사이에 서열이 없으며, 미국 역시 소수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제외한 국공립대(주립대)는 UC(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와 같은 방식으로 네트워킹되어 있어 서열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교육운동진영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국민적 공감대 확산으로 인해 2025년부터 외고, 국제고,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된 상태이다. 이렇게 고교서열화가 해소되는 흐름에 이어 향후에는 대학서열화 해소가 교육불평등 극복을 위한 핵심 과제로 대두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도 일찍이 이러한 점에 착목하여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와 같은 대안을 제시해 왔다. 정진상 교수가 2004년에 제안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전국의 국립대학교와 일부 사립대학교를 하나로 묶어 ‘공동전형-공동이수-공동학위제’를 운영하자는 것이 핵심이며(정진상, 2004), 이는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책으로도 수용되었다. 이후 이러한 논의는 ‘국립교양대학 통합네트워크’(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2015),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및 공영형 사립대 통합네트워크 동시 추진’(임재홍 외, 2015), ‘대학입학보장제’(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8) 등 다양한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대학평준화’에 해당한다. 사립대학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 우선 국공립대부터 하나로 묶어서 이들 학교에 입학할 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자유롭게 학점을 교류하고, 졸업생 모두에게 동일한 대학 출신 졸업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후 사립대학들도 통합네트워크에 편입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입경쟁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립대학교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국공립대학 안에서도 평준화를 실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평준화는 학교 간에 교육여건이나 교수의 질이 유사하여 학생들이 어떤 학교에 배정(근거리 배정 혹은 추첨 배정)되더라도 동일한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교평준화는 이러한 토대(교사의 순환근무제, 동일한 예산 투여, 공동의 교육과정)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학교와 전국의 9개 거점국립대학교 사이에도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어 있지 않다. 이들 학교에 투여되는 재정 규모, 교원당 학생 수만을 살펴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김종영, 2021에 제시된 자료를 재구성).

 [표 4] 전국 국립대 현황 (2021년 기준)

 
 

예산()

교원 수

학부생

교원당 학생 수

서울대

15,394

1,974

17,150

8.7

부산대

7,844

1,200

28,124

23.4

경북대

5,806

1,196

30,424

25.4

전남대

5,289

1,175

26,502

22.5

전북대

5,189

1,054

25,159

23.8

강원대

4,186

984

30,739

31.2

충남대

4,133

915

23,166

25.3

충북대

3,664

755

13,277

17.5

제주대

2,907

636

14,227

22.3

경상대

2,619

764

13,989

18.3

총 계

57,031

10,653

222,757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서울대와 나머지 지방거점대학교 사이의 교육여건의 격차는 매우 크다. 예산 규모는 최대 6배가량 차이가 나며, 교원당 학생 수 역시 최대 3배가량 차이가 난다. 더욱이 교원당 학생 수를 볼 때, 현재의 고등학교의 교사당 학생 수가 평균 12.2명(2018년 기준)인데 비해 대부분의 대학이 이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러한 교육여건의 차이에 지역적 격차까지 더하여 최근에는 지방의 거점국립대학교조차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벚꽃 엔딩(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가 문을 닫는다)’ 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평준화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 간 교육여건의 격차가 해소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는 지방의 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으로 재정을 지원하여 교육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공동 학위를 부여함으로써 지방 국립대를 나온 학생들도 서울대를 나온 학생들과 동일한 효과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김종영 교수는 이를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명명하였다(김종영, 2021). 이러한 명명은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념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전국의 10개 국공립대학에 모두 ‘서울대’ 혹은 ‘한국대’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이들 학교에는 국가가 과감한 재정 투여를 통해 교육의 질을 상향평준화시키고, 현재의 공립 초중등학교와 마찬가지로 국공립 교수 순환보직제를 도입한다. 학생들은 각각의 대학에 마련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이수할 수 있으며, 졸업생 모두에게 동일대학 이름의 학위가 부여된다. 이렇게 하면 서울대(한국대)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10배 이상 확대함으로써 서울대 입학경쟁을 완화하고, 지방대를 살리며, 대학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현실화되더라도 서울의 소수 명문 사립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경쟁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사립대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조건 속에서 프랑스와 같은 대학평준화 체제를 일시에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립대학을 평준화 체제에 편입하는 것보다 시급한 과제는 존립 위기에 처한 지방 사립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추이와 지역균형을 고려하여 대학 총정원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되, 우수한 지방 사립대를 육성하는 것이 향후 대학평준화를 완성하는 토대가 된다. 이에 초중등교육에서의 ‘혁신학교’ 정책을 차용하여 ‘혁신대학’을 육성하고, 이들 학교를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1만여 개의 초중등학교 중 20%까지 확산된 혁신학교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혁신학교 정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발적인 혁신의지를 보인 학교를 대상으로 시도교육청이 다양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들 학교가 공교육의 모범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적 격차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실한 건학이념과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사립대학들도 적지 않다. 이들 학교를 대상으로 국가가 혁신대학을 공모ㆍ지정하여 과감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사회와 산업체와 함께 ‘지·산·학(地-産-學) 연계’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이들 대학 졸업생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한다면 ‘지방대 살리기’의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다. 이들 혁신대학 중 일부 학교는 정부와 학교가 공동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민주적 운영을 책임지는 ‘공영형 사립대학’ 혹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과 ‘혁신대학’ 정책을 토대로 대학평준화의 실질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전국 10개의 서울대(한국대)가 참여하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이어 혁신대학까지 참여하는 ‘권역별 통합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를 통해 대학서열화 현상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며 ‘인 서울’만을 위한 입시경쟁이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체제를 완벽한 대학평준화 이전 단계인 ‘대학상생네트워크’(서울대학과 지방대학의 상생, 국립대와 사립대의 상생)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 재정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고등교육의 학비 부담, 교원충원율, 교원당 학생 수, 교육시설 및 교육여건 등의 각종 지표는 초중등교육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초중등교육의 경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9%를 교육재정으로 투여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최근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 실시되는 등 안정된 재원이 확충되어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경우 이러한 교육재정 확보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GDP 대비 0.62%로 OECD 평균 0.9%보다 적은 상황이다. 대학생들이 고액의 학비를 부담하면서도 고등학교 교실보다 열악한 강의실에서 저임금 시간강사의 강의를 대규모로 수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제정되어 적정 규모의 고등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선 대학교원을 확충하고,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고등교육의 질을 높임으로써 지방대학에서도 서울대 못지않은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전문대학, 국공립대, 공영형 사립대부터 완전무상교육을 도입하고 이를 확대하여 대학무상교육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2025년 학령인구를 기준으로 대학무상교육에 소요되는 예산은 11조 원 규모이며, 이는 우리나라 실질 GDP의 0.6%에 해당한다(대학무상화ㆍ대학평준화 추진본부 연구위원회, 2021). 향후 학령인구 급감 추이를 통해 볼 때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더욱 줄어들 것이며, 이는 정치적인 결단에 따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평준화와 대학무상교육이라는 진보진영의 원대한 꿈은 학령인구 급감과 지방소멸의 시대에 더이상 이념적 구호가 아닌 현실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은 그 과제를 구현하는 출발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대물림을 막고, 교육이 모두의 권리가 되는 미래사회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3.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과제 2 - ‘변혁적 역량’을 기르는 교육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는 현재의 대학서열화가 유지되는 한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시가 확대되든 수시가 확대되든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대학진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이 중심이 되는 정시 전형이 학교생활기록부가 중심이 되는 수시 전형에 비해 교육불평등을 키우는 것은 분명하다.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사교육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표준화 시험이야말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최필선ㆍ민인식(2015)에 의하면 소득 5분위 부모의 자녀는 1~2등급을 11.0%를 차지한 반면, 1분위 자녀는 2.3%를 차지하여 5배의 격차가 벌어졌다. 또한, 전문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는 1~2등급을 20.8% 차지한 반면에 고졸 미만은 0.8%를 차지하여 26배의 격차를 보였다.

 [표 5]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수능 성적 간의 상관관계
 
  
 [표 6] 부모의 학력수준과 자녀의 수능 성적 간의 상관관계

    
  또한, 박경미 의원의 2019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7~2019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6.5%는 서울 강남구 소재 학교의 학생으로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강남구 소재 학교 학생이 11.9%로 수시 전형(5.6%)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7]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의 전형 유형에 따른 서울대 입학 비율

 

전체

정시

수시

일반전형

지역균형

서울 강남

6.5%(1)

11.9%(1)

5.6%(2)

2.4%(2)

 * 괄호 안은 전국 시군구 순위

  이와 달리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하는 수시 전형은 수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하면서도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전형이 확대되어야 고등학교에서도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수행평가 등 과정중심평가를 통해 확인하여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정성적으로 기록한 것이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5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희망에 따른 교육과정 운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능과 같은 표준화된 시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생활기록부 전형 중심의 대입정책 기조는 유지되어야 하며, 향후 대학서열화 완화 및 학령인구 감소 추이에 따라 수능 자격고사화 및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공동전형과 같은 근본적인 대입제도 개선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혁신교육의 흐름이 고등학교 단계에까지 보편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교육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교육은 ‘미래사회의 구성원’을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 교육이 어떤 인간상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미래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과 함께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미래교육’ 담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인류 사회는 전대미문의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성찰이 제기되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며 이윤을 추구해 온 결과 생태계 파괴와 코로나 사태라는 역습을 불러왔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연대 방식과 윤리적 주체를 요구한다.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미래교육’의 과제이다.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암울하다. 불평등의 심화, 기후위기, 인구 감소, 지방소멸, 4차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 등은 교육계에도 큰 위기를 주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지방교육의 위기, 학교 폐교 등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곧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실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학생 한명 한명을 위한 책임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정의당은 그동안 ‘한 반 20명’이 코로나 시기 최선의 방역책이자 학습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임을 주장해 왔다. 향후 학령인구 감소 추이를 통해 볼 때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한 반 20명’은 모든 학생의 배움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교육’의 토대이자, 획일화된 교육을 넘어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키우는 ‘미래교육’의 출발이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이라는 구호가 더욱 절실한 현실이 될 것이다. 이제 대다수의 학생을 저버리고 소수의 학생만을 선별하는 경쟁교육은 더더욱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육은 ‘빌 게이츠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식의 헛된 구호에 따라 소수의 엘리트를 육성하는 수월성 교육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향후 미래사회는 ‘소수의 수월성’이 아니라 ‘모두의 탁월성’을 요구한다. 모든 학생은 저마다 빛나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최대한 구현하도록 돕는 것이 ‘모두의 탁월성을 위한 교육’이다. 핀란드 등 교육선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보편적 학습설계’, ‘중층적 지원 시스템’ 등은 모든 학생의 가능성을 최대한 지원하기 위한 교육시스템이며, 최근 국내 교육계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무모한 경쟁교육을 극복하고, 모든 학생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제적인 교육 동향도 이러한 미래교육의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OECD는 2018년 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미래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였다(OECD, 2018). 이 연구는 지금의 초등학생이 성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2030년의 미래사회를 가정하며, 그 사회에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 연구는 2030년 미래사회를 ‘예측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사태, 기후위기 등을 고려해 볼 때 미래사회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미래사회에서 학생들이 길러야 할 역량을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e)’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변혁적 역량’이란 말 그대로 ‘불확실한 미래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OECD가 말한 ‘변혁적 역량’은 ‘미래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미래교육’은 보통 ‘미래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교육’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는 “4차산업혁명 시기에는 AI교육이 필수적이다.”라는 식의 시장주의 논리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미래교육’은 ‘미래사회에 적응하는 교육’이 아니라 ‘미래사회를 바꾸는 교육’이다. 
  ‘정의로운 미래교육’은 ‘기회의 공정성’을 넘어 ‘모두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무상교육, 고교평준화, 대입제도 개편 등 기존의 교육정책은 ‘기회의 공정성’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기회의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담론으로 왜곡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향후의 미래교육은 ‘과정 및 결과의 정의’를 통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의로운 미래교육’은 ‘공교육 정상화’를 넘어 ‘정의로운 미래를 여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자치 이후 확산된 혁신교육은 입시경쟁으로 왜곡된 공교육을 어느 정도 정상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향후 한국의 미래교육은 기후위기, 사회 양극화 등 당면한 위험에 대처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변혁적 역량’을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불평등을 타파하는 사회정의교육’,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생태교육’, ‘다원화 시대에 부합하는 다양성교육’, ‘불안정 노동에 대응하는 진로역량ㆍ노동인권교육’ 등이 향후 학교교육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 유아교육부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학교 안팎을 넘나들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의 부와 권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교육불평등 시스템을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열리는 교육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장이자 미래사회의 구성원을 길러내는 곳이다. 모두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구조 속에서 미래사회를 여는 변혁적 역량을 기르는 교육, 이것이 향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방향이다.


[참고문헌]

김성식ㆍ김준엽ㆍ황지은, 2020, 고교체제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연구, 교육부 연구보고서.
김종영, 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서울: 살림터.
대학무상화·대학평준화 추진본부 연구위원회, 2021, 대한민국 대학혁명, 서울: 살림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엮음, 2015, 입시·사교육 없는 대학 체제, 파주: 한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18, 새로운 대학체제 ‘대학입학보장제’를 제안한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체     제 토론회 자료집.
임재홍 외, 2015,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학체제 개편방안 연구,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교육     정책연구소. 
정진상, 200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 사회를 넘어, 서울: 책세상.
최필선ㆍ민인식, 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       과학연구, 22(3), 31-56.
Coleman, J. S. 1988, Social capital in the creation of human capital,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4,   95-120.
OECD, 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 Education 2030, Positi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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