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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전환의 시대, 재정개혁으로부터

: 정부 재정에 관한 대안적 관점

대전환의 시대, 재정개혁으로부터 
: 정부 재정에 관한 대안적 관점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1. 대전환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중의 전환’이 시급함을 보여주었다. 첫째, 자연 친화적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류가 처음 접한 이 가공할 바이러스의 출현은 인류가 자연을 착취한 결과란 주장에 많은 과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오염이 급격한 기후변화를 낳았고, 이것이 생태계를 교란하였고,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위협과 생태계 교란(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에 따른 위험은 같은 원인에서 출반한다. 따라서, 인류의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생활 방식이 자연 친화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 출발은 자연 파괴 물질의 방출을 중단하는 일이다. 
  둘째, 인간 사회의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기후 및 생태 위기의 결과는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작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붕괴하자, 그 피해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실업과 소득 단절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한 사회적 취약계층이었다. 또한,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산가격 버블이 발생했지만, 그 혜택은 소수의 자산가에 집중되었다.(자산가격 버블의 직접적 원인으로 ‘통화량 증가’를 지목하고, 다시 그 통화량 증가는 코로나19 대응정책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대량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국가에 대해서는 일부 사실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해당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에서 세계에서 가장 소극적이었고, 심지어 ‘영업시간 규제’ 정책의 직접적 피해자에게조차 피해보상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한국의 자산가격 상승은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이 아니라 민간은행의 통화 공급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발발 직후 세계적 자산가격 상승이 대중의 투기 욕구를 자극했고, 민간은행은 이에 필요한 뒷돈을 댔다. 확정적 통화정책으로 보일 수 있는 저금리 때문에 통화량이 증가했다는 주장 또한 일면적이다. 저금리가 대출 증가에 미치는 효과, 특히 자산 투자 목적의 대출은 금리에 매우 비탄력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했음에도 통화량을 크게 증가하지 않았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금리가 낮든 높든 돈을 빌려준 주체는 민간은행이다. 민간은행의 투기 자금 공급이 원인이고, 부동산 가격 급등은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니다. 이하에서 보듯, 정부가 재정 건전성 미신에서 벗어나 서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부동산 투기는 단호히 근절했더라면, 부동산 가격 버블은 일어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는, 부동산 버블이 발생하더라도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불평등을 강화하는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는 생태적 전환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가령, 모든 에너지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되고, 모든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교체한다고 해서,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 실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자연 친화적 경제체제로의 전환이 대량의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전환’을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고 자연 친화적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그 비용을 감당하는 문제이다. 자연 파괴는 인류가 발전시킨 기술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자연 친화적 기술에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개선하든 데에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자리보장제와 기본소득 등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기존 취업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발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또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환을 위한 투자’를 민간에 기대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첫째, 이중의 전환을 위해 민간의 투자를 기대할 수 없다. 민간 자본은 수익성과 위험 부담을 고려하여 투자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중의 전환을 위한 투자로부터는 민간 자본이 요구하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더 중요하게, 저수익성의 원인 대부분은 이중의 전환이 요구하는 투자 기간이 장기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장기 투자는 수익이 난다고 하더라도 매우 먼 미래의 일이고, 민간 자본가는 장기간 일방적으로 투자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투자 기간이 길수록 불확실성(위험)이 커진다. 불확실성이 클 경우, 민간 자본은 높은 기대 수익을 요구하는데, 이중의 전환을 위한 투자는 그러한 기대 수익을 충족시킬 수 없다.
  둘째, 민간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일에 민간 자본이 참여하게 된다면, 그 이익이 모두에게 공유되기보단 자본이 독점하게 될 것이다. 화력발전 자본이나 금융 자본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변신하여 여전히 에너지 공급을 독점하고 그 이익을 배타적으로 전유한다면, 에너지 전환의 의미는 절반으로 축소된다. 에너지 전환은 달성되겠지만, 사회적 전환은 방치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의 전환을 위한 투자는 공공이 담당해야 한다. 첫째, 공공이 주도할 때, 그 결실을 모두가 공유할 기회가 열린다. 둘째,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공공이 가장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셋째, 공공은 사회적 전환 정책(그것이 무엇이든!)처럼 수익성보다 사회적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춘 투자를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사용이 산업 자본에 위협이 되자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려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민간 자본에 의지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은 명백히 재난이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 제한’ 조치는 영업권 침해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 두 종류의 피해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재정 운영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는 ‘재정 건전성’ 개념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한다. 정부의 채무가 증가하면,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재정 건전성 관념은 근거가 없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2. 재정 건전성 관념이 ‘미신’인 이유

  근본적으로, 재정 건전성 관념은 ‘정부의 채무도 개인의 채무와 질적으로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전제는 정부는 징세 혹은 채무로 재정을 조달하여 지출하고, 정부채무는 언젠가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는 두 가지 허구적 관념으로 구체화된다.

  1) 정부 재정과 가계부
  재정 건전성이란 관념이 미신에 지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정부 재정의 성격을 왜곡한다는 점에 있다. 정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부도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는 정부 재정이 가계 혹은 기업의 재정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현실을 오도하는 전제이다.
  가계와 기업은 엄격한 예산 제약하에서 운영된다. 수입보다 채무가 과도하면 파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채무 상환을 위한 돈을 노동이나 생산을 통해 스스로 벌어야 한다. 즉, 개인이나 기업은 통화를 발행할 수 없다. 이와는 달리, 정부는 통화 발행권을 갖고 있고, 어떠한 채무 상환 요구도 즉시 충족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정부는 예산 제약이 없으며, 파산할 수 없다. 따라서, 통화 발행권을 갖지 못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재정 원리가 정부 재정에도 적용된다는 ‘전제’는 명백히 거짓이다. 반복하자면, 정부 재정은 가계부나 기업의 회계 장부와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정부가 제한 없이 통화를 발행하여 지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 논점의 의미는 정부 재정의 파산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로 한정된다. 정부 지출의 한계는 파산 가능성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 지출의 첫 번째 제약은 ‘실물 제약’이다. 경제의 생산 능력과 주어진 자원의 제약을 벗어나는 정부 지출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통화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따른 국내 통화에 대한 불신은 경제를 무정부 상태로 이끌 수 있다. 두 번째 제약은 통화 발행권이 있는 정부라 하더라도 과도한 외채는 부도날 수 있다. 외국의 통화는 자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남미 국가들과 2010년대 초 남유럽 국가들 등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소위 재정위기는 ‘외환위기’였다. 이들 정부는 다양한 이유로 정부가 과도하게 외채를 졌고, 상환에 필요한 외환을 충분히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채무 불이행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실무적으로도 정부는 통화를 발행하여 지출한다. 흔히 정부는 세금을 걷어 지출한다고 믿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팩트는 이렇다. 정부가 세금으로 징수한 돈은 한국은행에 개설한 정부 예금 계좌로 입금된다. 그곳에 세금 징수가 기록된다. 그런데 세금으로 걷어 정부 계좌에 입금한 돈은 통화량(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급준비금’)으로 계상하지 않는다. 즉, 징세는 통화량(지급준비금)을 실제로 감소시킨다! 반대로, 정부가 지출하면 정부의 예금 잔고가 감소한다. 또한, 정부 지출액만큼 통화량(지급준비금)이 증가한 것으로 기록한다. 가정이나 전제가 아닌 팩트는, 징세는 통화량(지급준비금)을 줄이고, 정부 지출은 통화량(지급준비금)을 늘린다는 사실이다. (징세로) 사라졌던 돈이 정부 지출로 다시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현재에도 이미 정부는 새로운 통화를 창조하여 지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현대의 통화가 금이나 은처럼 실물이 아니라, 키보드로 입력한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키보드로 숫자를 입력하고, 이를 활용해 실물을 민간으로부터 구매(투자)할 수 있다. 
  정부 지출이 세금으로 조달된다고 주장하려면, 징세 기록인 정부의 예금 잔고가 부족하면 지출할 수 없어야만 한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나라 재정법은 정부의 예금 잔고가 부족할 때 지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이러한 재정 운영의 제약은 ‘임의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방만한 재정 운영을 예방하려는 취지이고, 정부의 재정이 건전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 이외에, 그렇게 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당장이라도 법과 제도는 수정할 수 있다. 이것이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다.
  통화를 창조해 지출할 수 있는데, 정부는 왜 돈을 빌려 지출할까? 다른 말로, 정부는 왜 국채를 발행하여 민간에 파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도 개인이나 기업처럼 재정을 조달해야 지출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국채는 재정 조달 목적으로 발행하지 않는다. 국채 발행의 첫 번째 이유는 제도적 제약 때문이다. 정부의 예금 잔고가 부족하면 지출할 수 없도록 정한 법률 때문에, 세금 징수액이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한다. 두 번째 이유는 더 근본적이다. 국채는 재정정책(징세와 정부 지출)이 아니라 통화정책 수단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 지출은 통화량(지급준비금)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지급준비금을 빌려주고 빌리는 데 적용하는 ‘기준금리’에 하방 압력을 낳는다.(기준금리를 통제하는 정책을 ‘통화정책’이라 부른다. 일반 은행이 대출과 예금에 적용하는 금리가 이 기준금리에 연동하므로, 통화정책은 금융시장의 금리를 유도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  정부 지출에 따른 기준금리 하락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한 지급준비금을 회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이) 국채를 민간에 판다. 정부가 지출한 지급준비금에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지만, 국채에는 이자를 지급하므로, 민간(주로 시중 은행들)은 기꺼이 지급준비금을 국채와 교환하고자 한다. 이처럼 국채는 재정 조달 수단이 아니라, 민간이 보유한 지급준비금을 조절하고, 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세금의 기능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논의를 요약하면, 정부는 스스로 통화를 발행해 지출할 수 있으므로, 세금 없이도 지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가장 중요한 이유로, 세금은 국정 화폐의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국정 화폐로 세금 납부 의무를 지우지 않으면, 국정 화폐는 유지될 수 없다. 가령, 아무나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일국의 통화를 대체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세금이 없다면 정부는 통화 발행자로서의 권능을 잃고, 공익 목적의 실물 자원을 동원할 수 없다.((조세제도를 통해) 국정 화폐 체제를 유지하는 목적이 ‘실물 자원 동원’이란 주장에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정 화폐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 실물 자원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 화폐를 유지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권능을 유지하기 위함, 즉 정부의 경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국정 화폐 없이, 은행마다 제각각 화폐를 발행하는 체제를 상상해 보라). 이 통제력의 하위 범주에 공익 목적의 자원 동원이 포함된다.) 둘째, 세금은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 지출한 통화가 시중에 축적되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고,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주입한 통화 중 일부는 회수(drain)해야 한다. 셋째, 소득 재분재 수단이다. 고소득층과 기업의 과도한 부의 축적을 억제하는 수단이다. 넷째, 특정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역)인센티브 제도이다(담뱃세, 탄소세 등).

  2) 정부채무 상환 : 미래 세대 부담론
  재정 건전성 관념이 미신에 지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정부채무 상환에 대해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기재부 관료들, 그리고 보수 언론까지 정부채무 총액을 인구수로 나눈 값을 제시하며, 그것을 국민이 갚아야 할 빚이라 주장하곤 한다. 또는, 정부채무는 미래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므로, 재정 적자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긴축적 재정정책을 고수하기 위한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진실을 말하자면, 정부채무는 상환하지 않는다. 정부채무는 국채의 형태로 존재한다. 모든 국채는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만기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국채 만기에 현금으로 상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기가 긴 새로운 국채로 교환될 뿐이다(물론 외채는 다르다). 더구나, 세금으로 상환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0년 동안 경제 규모 대비 정부채무 비율은 등락했지만, 정부채무 총액이 감소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부의 채무도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약 8.5배로 증가했다. 지난 22년 동안 우리나라 정부도 부채를 상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린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는 스스로 화폐를 창조해 지출하기 때문에, 채무를 질 필연적 이유가 없다. 정부는 화폐 사용자가 아니라 ‘발행자’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모든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민간(시장)이 바라지 않는 일이다. 정부 지출은 민간에게는 수입이고, 국채 형태로 존재하는 정부채무에는 이자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채무를 청산하기로 작정하면, 화폐를 발행해 모든 국채를 수거하여 폐기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하면, 시중에는 지급준비금(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화폐)이 넘쳐나고, 금리마저 제로(0)로 떨어진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여 단행된 양적완화 정책이 정확히 이것이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여 민간이 보유한 국채와 교환했다. 그 결과 민간 보유 국채는 크게 줄었고, 그에 상응하여 민간의 화폐 보유량은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금리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하락했다. 국채는 민간에게 매우 안정적인 수입 원천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예: 국채 레포를 통한 레버리지 투자). 요약하면, 정부 부채는 국민의 부담이 아니다. 
  이는 ‘정부채무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란 주장이 허구임을 의미한다. 정부채무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 세대를 위한 적극적 투자’라 해야 한다. 정부가 채무를 지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은 미래 세대에게 생산성 높은 양질의 경제를 물려주기 위한 투자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채무에 따른 투자가 낳는 편익은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도 공유된다. 우선, 앞서 논의한 것처럼, 정부채무란 어떤 상환의무가 아니라, 정부 지출과 세입 사이의 차이를 기록한 회계 장부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에 화폐란 금이나 은과 같은 실물이 아니라 전자 기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여 경제 전체의 생산 능력 대비 수요가 부족해지면, 민간에서 투자와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생산성이 정체한다. 판로(수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혁신을 위해 투자할 기업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사회복지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간접적으로 소득을 높여주는 일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이렇게 현재 세대가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놓으면, 미래 세대도 그 혜택을 함께 누린다. 한 가지 비근한 예를 들자면,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공공 인프라에 투자하면 미래 세대도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 공공 인프라는 미래 수십 년 동안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질의 인프라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기능도 수행하여, 미래 세대는 고소득 경제에 살게 될 것이다. 정부 지출에 따른 생산성 편익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적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현재의 ‘비용’(정부지출)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둘째, 경제 원리로 보더라도, 책임 있는 국가의 정부라면 채무를 늘려가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에 비례하여 통화량도 증가해야 한다. 경제성장이란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거래된다는 의미이고, 더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더 많은 통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화량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민간(가계와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빚을 내는 방법이다. 일반적인 경제학 교과서에서 설명하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통화의 대부분(약 96%)은 시중 은행에서 대출된 돈이다. 이 방법은 민간의 부채를 늘리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시중 통화 공급을 민간의 빚에만 의존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 과실을 모든 국민이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경제성장에 비례해 증가한 빚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만 돈을 벌게 된다. 또한, 민간의 부채가 증가하면 금융위기 등 불안정한 경제를 낳는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통화량을 공급하는 또 다른 방법은 정부가 빚을 지고, 그 돈을 공공지출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민간의 빚 대신 정부의 빚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통화를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방법이다. 민간채무가 적으면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는 더욱 활성화된다. 또한, 정부채무는 외채가 아닌 한, 경제 불안정을 야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정부의 채무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다.
  요약하면, 정부채무는 상환해야 하고, 그 부담이 미래 세대에 전가된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전제에 근거하는 한, 그것은 그저 미신을 믿는 것과 같다.


3. 국가 신용도와 외환 위기설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가장 빈번히 제시되는 근거는 ‘외환위기 가능성’이다.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고, 그 결과 외국인 자본이 급격히 이탈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외국인 자본의 이탈은 외환의 부족을 유발하여, 외환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1) 정부채무 증가가 국가 신용도를 낮출까?
  국가 신용도란 한 나라의 국채 신용등급으로 나타난다. 국채 신용등급은 국제 신용 평가사들(S&P, Moody’s, Fitch 등)이 정한다. 민간 신용평가사(社)들이 정부채무 비율을 국가 신용도(국채의 신용등급) 평가 기준 중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들은 현대 화폐와 국채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금본위제의 관행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채무 비율이 국가 신용도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는 불분명하다. 신용평가사들이 국채 신용등급 결정 과정을 모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데이터를 이용하여 정부채무 비율이 국채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하는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림 1] 국가신용등급과 정부채무 비율

출처: Metodij Hadzi-Vaskov, Luca A Ricci. “The Nonlinear Relationship Between Public Debt and Sovereign Credit Ratings”, IMF Working Paper 2019-162.

  [그림 1]은 1998~2014년 사이 Fitch사(社)가 제시한 국가신용등급(세로축)과 정부채무 비율(가로축)을 표시하고 있다(파란점은 개발도상국, 빨간점은 선진국). 정부채무 비율이 국채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위 점들은 우하향하는 모양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그런 패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IMF 보고서를 포함하여 이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두 변수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위 그림처럼 겉으로 보기에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변수 사이에 어떻게 통계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일까? 국가 신용도를 결정하는 다양한 변수들(예를 들면, 1인당 GDP, 경제성장률, 실업률, 외채 비율, 민간부채 비율 및 증가율, 물가 상승률, 지정학적 위험, 정치적 안정성 등)이 미치는 효과를 제거하면, 그러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국가 신용도와 정부채무 비율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른 조건이 일정한데, 정부채무 비율만 변하는 예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세입은 감소하고,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은 증가하는 경우, 정부채무 비율은 상승할 것이다. 이때, 일부 민간 신용평가사가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을 낮췄다면, 그것은 경기침체를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채무 증가 때문일까? 즉, 정부채무 비율은 다른 경제 변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중요할까? 역시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채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정부채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경제성장률이나 실업률, 또는 대외 부채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난다. 이는 정부채무 비율 상승이 국가 신용도를 하락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침소봉대’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충격으로 경제가 크게 위축될 때, 정부채무 비율이 상승하더라도 재정 지출을 늘려 경제를 살리면 국가 신용도는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정부채무 비율 상승이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경기 개선 효과가 국가 신용도를 더 크게 끌어올리기 때문이다(예 : 정부채무 비율 상승에 따라 신용등급 한 단계 하락 + 경기 개선에 따른 신용등급 두 단계 상승 = 신용등급 한 단계 상승). 따라서, 맹목적 재정 건전성 집착은 경제와 국가 신용도 모두를 포기하는 태도이다.

  2) 국가 신용도 하락은 외국인 자본의 이탈을 유발할까?
  다음으로, 정부채무 비율이 상승하면 외국인 자본이 이탈한다고 주장하려면, 국가 신용도 하락이 외국인 자본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에 관한 기존 연구결과들 또한 위에서 논의한 연구결과들과 유사하다. 국채 신용등급 하락은 외국인 자본 이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전제조건이 붙는다. 첫째, 국채 신용등급과 외국인 자본 유출입 사이에 통계적 상관관계는 발견되지만, 후자에 영향에 미치는 요인은 국채 신용등급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다른 말로, 국채 신용등급 하락이 외국인 자본 이탈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조건이 현실에서 모두 만족되는 경우는 우연이 아니고서는 벌어질 수 없다. 이에 관한 최근 세계은행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자본의 유출입과 관련된 국가 신용도란 해당 국가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상대적’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정부채무 증가로)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다른 국가들의 신용도가 더 크게 하락한다면, 외국인 자본은 오히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다른 조건’에는 이와 같은 국채 신용등급의 상대적 수준 외에도 경제성장률, 환율 전망, 이자율 등 ‘투자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포함한다. 이 모든 변수들 또한 비교 대상 국가들 대비 ‘상대적’ 수준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인 자본이 대량으로 이탈했다. 정부채무 비율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경제의 펀더먼털에 변화가 없는데도 그러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통계적 발견은 경험 연구에서는 새로운 것일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사실이다. 국제적 자본이동의 자유화 이후 실물 투자와는 무관하게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 국제 자본이동을 지배해 왔다. 이들은 단기 자본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글로벌 관점에서 국가 간 투자를 배분한다. 쉽게 말해, 이들은 전 세계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여 가장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외국인 투기 자본은 한 나라의 특정 변수가 아니라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 간 상대적 투자 매력도를 평가한다. 따라서, 국가 신용도란 하나의 변수만으로 외국인 자본 이탈을 주장하는 것은 피해망상에 가깝다. 
  요약하면, 국가 신용도가 외국인 자본의 이탈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상대적일 뿐 아니라 금융투자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조건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한다. 즉, 국가 신용도와 외국인 자본이동 사이에는 단선적 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 국가 신용도는 외국인 자본의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과 독립적으로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로, 이러한 논의는 ‘점진적 이동’에 관한 연구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신용도 하락이 외환위기를 불러올 만큼 ‘급격하고 극단적인’ 외국인 자본 이탈의 원인이란 증거는 전혀 없다. 

  3)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라서?
  우리나라 정부의 재정 건전성에 집착하는 집단이 내세우는 또 다른 근거는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란 점이다. 선진국 정부는 빚을 많이 져도 되지만, 후진국은 그럴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비기축통화국에서 외국인 자본의 이탈이 강력하고 빈번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소극적이란 비판에 대해, 기재부 장관은 정부채무 비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미국, 일본, 유럽 등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비기축통화국과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금융위기와 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할 때, 달러화 자산 선호 현상은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IMF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창궐과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 등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전 세계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이 회수되어 주로 달러화로 표시된 자산(대표적으로 미국 국채)으로 몰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달러화의 가치가 상승했다. 여타 통화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달러화 자산 이외의 자산(예컨대, 우리나라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는 손실을 보게 된다. 국제 투기 자본은 이러한 환율 손실을 피하려고 전 세계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여 달러화 자산으로 갈아탄다. 이를 ‘안전자산 도피’라 부른다. 세계 경제에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이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자신의 국내 경제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항상 서럽게 당한다.
  그렇다면,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과 이것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국제 투기 자본의 안전자산 도피 행태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한 이후의 일, 즉 결과이다. 물론 자국 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이 갑자기 이탈하면, 국내 경제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 또한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안전자산에 속하지 않는 통화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정부가 빚을 지면 위험하다고 주장하려면, 정부채무 증가가 자본 도피의 원인임을 설명해야 한다. 이 주장은 정부채무 증가가 어떻게 외국인 자본에게 이탈의 동기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대신, 세계 어디선가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외국인 자본의 대량 이동을 부추긴다는 점만 부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공포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 자본 이탈을 걱정한다면,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외국인 자본 도피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1997-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전자가 우리 스스로 경제를 잘 관리하지 못해 일어난 내환(內患)이었다면, 후자는 우리는 멀쩡한데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사고를 쳐서 일어난 외환(外患)에 해당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긴 했지만, 대략 1년 이내에 되돌아 왔다. 세계적 사례를 보더라도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다만, 외국인 자본의 도피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 하나는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국제 투기 자본의 이동이 자유화된 현대 세계 경제에서 외국인 자본의 이동은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국 경제가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자국이 통제할 수 없는 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본 도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대규모 안전자산 도피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어서 정부채무를 늘릴 수 없다는 주장이 은연중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이미지이다. 후진국이기 때문에 외국인 자본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렇게 허약한가? 우리나라가 허약한 후진국이 아니란 근거가 더 많다. 첫째,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일종의 국채)이 국제 시장에서 매우 높은 신용 평가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국제 시장에서 외환을 빌릴 때, 세계 최저 수준의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가령, 유로화를 5년간 빌리겠다는 유로화 채권에 대해서는 작년 9월과 올해 10월, 2년 연속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었다. 즉, 외화를 빌리면서, 오히려 이자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장관은 "코로나19 확산세 지속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 경제에 굳건한 신뢰를 보여준 해외 투자자가 많았다"고 했다. 옳은 진단이다. 
  둘째, OECD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다. 1인당 GDP로는 G7 중 하나인 이탈리아와 유사하다. 캐나다, 호주 등 거대한 국토를 보유한 나라도 절대 경제 규모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후순위에 위치한다.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를 후진국이라 부르려면, 유럽 국가 대부분도 후진국이라 불러야 한다.
  셋째, 외국인 자본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어라 한다는 증거가 있다. 1997-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 규모는 2001년 100.8조 원에서 2020년 말 764.3조 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7.6배 증가한 수치이고, 20년 동안 연평균 10.7%로 안정적으로 증가해 왔다는 뜻이다. 외국인 자본이 우리나라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외국인 자본은 수익성 좋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국인 자본이 투자하기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경제가 왜 후진국이며 약소국이란 말일까.
  넷째,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낮을 때조차 외국인 자본은 이탈하지 않았다. 외국인 자본은 전 세계적 관점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나라의 자산에 투자한다. 금리는 외국인 투자 자본의 수익률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고, 기준금리는 정부가 보증하는 수익률이다. 통상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미국의 금리보다 높아야 외국인 자본 이탈 없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신흥국’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은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웃돈(신흥국 리스크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외국인 자본을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는 신흥국 프리미엄을 나타내는 지표이고, 그것이 작을수록 미국 경제 대비 상대적으로 강건한 경제임을 의미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 경제 대비 크게 열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오히려 낮았지만,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지 않았던 경우가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았던 ‘금리역전’은 1999년 7월에서 2001년 3월까지 19개월 동안,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까지 24개월 동안,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창궐 이전 2018년 3월 22일부터 2020년 3월 2일까지 약 24개월 동안, 역대 세 번 있었다. 매번의 금리역전은 약 2년 동안 지속했지만, 대규모 외국인 자본 이탈은 나타나지 않았다.(외국인 투자액이 크게 상승한 데에는 우리나라 주가가 상승한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해도 같은 기간 외국인 자본은 크게 유입되었다.)
 (우리나라 정부채무 비율의 절대적 수준은 낮지만, 그 증가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려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증가속도’란 과거의 정부채무 증가속도와 비교할 때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2019년까지 이전 10년 동안 그것은 약 7% 포인트 증가했지만, 2020년 한해에만 7% 포인트 증가한 사실을 두고 ‘너무 빠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인 자본의 이탈을 우려하는 관점에서는 국제적 비교가 훨씬 유용하다. 외국인 자본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국가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채무 비율이 역사상 가장 빨리 증가했던 2020년에 세계 주요 선진국의 정부채무 비율은 대략 20%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7% 포인트보다 약 세 배 빠른 ‘속도’이다. 우리나라 정부채무 비율 증가속도는 과거와 비교하면 가장 빠르지만, 국제 비교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느리다’. 만약 정부채무 비율이 외국인 자본이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정부채무 비율의 증가속도는 오히려 외국인 자본에 매력적인 조건이라 할 것이다. )
 
[그림 2].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와 외국인 자본이동

 


[그림 2]는 가장 최근의 경우를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의 음영 부분은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았던 시기와 그 정도를 보여주고, 아래 그림은 같은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 금액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미국의 그것보다 낮았던 기간 동안 외국인 자본이 이탈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외국인 자본이 볼 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기대 수익률이 금리 격차를 능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말로, 투자 수익을 낳는 우리나라 경제의 종합 역량이 미국 경제에 크게 뒤진다고 할 수 없다. 이런데도 우리나라가 후진국이고, 정부의 재정정책마저 외국인 자본의 눈치를 보며 시행해야 할까.


4. 재정 건전성 관념의 진정성

  이쯤 되면, 재정 건전성 관념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의심’의 대상이 된다. 재정 건전성 관념에 근거한 우려 대부분의 진정성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가적 재난과 시급한 전환의 시기에조차 재정 적자와 적극적 재정정책을 거부하면서 내세우는 외환위기 가능성 주장이 그러하다. 1997-98 외환위기와 그 이후 구조조정의 고통을 경험한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인 자본 이탈을 우려하는 정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걱정은 하면서도 적극적 대응은 한사코 회피해 왔다.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정부채무 비율 억제에만 집착했을 뿐, 외국인 자본 이탈을 억제하거나 그 충격에 대비하려는 정책적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이 진정으로 외환위기를 걱정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외국인 자본 이탈 가능성 때문에 재정정책이 제한된다면, 우리 정부는 정부채무 비율 관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억제할 제도적 방책을 마련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적극적 재정정책은 ‘이중의 전환’을 달성하고, 건강하고 생산성 높은 경제를 구축할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제도적 대책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국제 투기자본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에 깊이 편입해 있는 우리나라가 금융시장을 폐쇄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정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국내외 자본에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는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자본의 ATM기’로 조롱받을 정도로, 외국인 자본의 이동에 과도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외국인 자본이 투자와 고용 등 실물 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극히 미약하다. 코스피 외국인 투자 자본 중 96%, 코스닥 외국인 투자 자본 중 86%가 자산 가격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며,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 자본은 모두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인 회사채가 아니라 국공채를 매입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투기 자본을 우대할 이유가 없고, 이들의 급격한 유출입을 통제할 이유는 충분하다.
  둘째, 외국인 자본의 이탈 가능성이 재정정책의 자율성을 진정 제약한다면,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운영할 수도 있다. 2020년 말 외환보유고는 4,431억 달러이지만, 유동성 높은 증권시장의 외국인 자본은 약 7,0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렇다면, 재정 보수주의자는 외환보유고 확대를 주장해야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매년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고, 그 규모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상수지 흑자는 716억 달러에 달했다. 만약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를 모두 외환보유고로 흡수했더라면, 현재 약 1조 달러에 달했을 것이다. 이는 절대 규모로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경제 규모 대비 비율로는 세계 1위이다. 이는 이탈 가능성이 큰 외국인의 금융시장 투자 총액을 능가하는 규모이다. 물론 이후에도 매년 경상수지 흑자만큼 외환보유고를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본 이탈’을 걱정하며 정책 자율성을 스스로 제한하면서도, 외환보유고를 늘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인 태도이다.
  ‘과도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는 일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외환보유고 유지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자. 외환보유고 유지의 비용은 외화 매입 자금에 대한 이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수출 기업이 1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한국은행 혹은 정부가 이를 매입하여 외환보유고로 흡수한다고 가정하자. 계산의 편의를 위해 환율은 1달러=1,000원으로 가정하면, 1억 달러의 외화를 매입하려면 1,000억 원이 필요하다. 이 1,000억 원은 보통 외평채라 불리는 채권을 발행하여 조달한다. 이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가 외환보유고 유지를 위한 비용이다. 만기가 짧은 외평채를 발행하여 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자산 가격의 변동 또한 외환보유고 유지비용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매입한 외화 1억 달러는 미국 국채에 투자할 것인데, 미국 국채 시장 가격은 수시로 변한다.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이므로, 비용이라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비용이 아니라 수익이 발생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비용이나 수익이라 할 수 없다. 한국은행의 미국 국채 보유는 정책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 대책 수단이므로, 만기 이전에 매도할 이유가 없다. 미국 국채 가격 변화는 매년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상 자산 가치의 변화로 나타날 수는 있지만, 아무런 현실적 의미도 없다. 결국, 외환보유고 유지비용이란 국내에서 저금리로 지급하는 이자뿐이다.
  이제 편익을 살펴보자. 우선, 미국 국채가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이자 수입이 있다. 이 수입은 매수하는 국채의 만기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만기가 길수록 적용 금리가 높고, 더 많은 이자가 지급된다. 외환보유고는 중간에 처분할 것이 아니므로, 이자가 높은 장기 국채에 투자하여 이자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두 번째 편익은 외국인 자본 이탈 걱정 없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활용할 때 발생하는 경기 부양 효과이다. 재정정책은 경기 순환에 대응하여,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으로 불황에 빠져들 때, 경기 안정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재정정책이 아니었더라면 잃었을 GDP 전체를 충분한 외환보유고 유지의 편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제 편익에서 비용을 뺀 순편익 혹은 순비용을 계산해 보자. 외환보유고는 이자 비용과 이익을 동시에 낳는다. 예를 들어, 1억 달러 매입을 위한 원화 비용 1,000억 원은 금리 1%를 지급하는 단기 채권을 발행하여 조달하고, 1억 달러는 이자 3%가 지급되는 30년물 미국 국채에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비용보다 수익이 더 크게 된다. 더 나아가, 국내에서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지급하는 이자는 비용이라 부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자를 지급하는 정부(한국은행)에게는 비용일 수 있지만, 이자를 수취하는 국민에게는 수익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 확충에는 비용은 없고, 정책 자율성이 낳는 경기 안정화 편익만이 존재한다.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정부채무 비율 상승으로 인한 외국인 자본 이탈 가능성에 집착하여 재정정책 자율성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충분한 외환보유고 확충을 먼저 제안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화 스와프 협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통화 스와프 협정이란 두 나라 중앙은행이 필요로 할 때 국내 통화를 상대 국가의 통화로 맞교환하기로 약속하는 협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무제한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위협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다. 잠재적으로 우리나라는 원화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고, 협정에 따라 이를 미국 달러와 즉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으면, 환율 차익을 노린 국제 투기 자본은 환차익을 노린 공격을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부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있지만, 그 범위와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외국인 자본 유출을 우려하여 긴축적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집단이 이러한 안전장치 마련을 외면해온 사실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요약하면, 정부채무 증가가 외국인 자본 이탈이나 외환위기를 부른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설계도 얼마든지 구상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외환위기 공포를 조장하여 정부 역량을 제한하기보다는, 외환시장 안정화 장치를 고안·정착하고, 재정정책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5. 거대한 전환, 재정 개혁으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전환의 시대이다. 재정 운영의 목표를 새로 설정해야 한다. 우선, 재정 운영의 목표는 재정 균형(재정 적자 회피)이 아니라 실업과 (고)인플레이션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경제적 균형을 달성하는 일이다. 실업이 존재하면 재정 적자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실업 해소 정책을 실행해야 하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면 재정 지출 축소(혹은 세금 인상)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 소득 불평등이 문제라면, 저소득층의 소득 진작을 위한 재정 지출을 얼마든지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다. 탈탄소 정책도 즉시 대규모로 시작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정부 재정 지출의 한계가 없다는 주장이 재정 지출에 제약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파산의 위험이나 외환위기 가능성 등은 전혀 제약조건이 될 수 없다. 다만, 두 가지 제약 요인이 존재한다. 첫 번째 제약은 가용 ‘실물’(생산물, 천연자원 등) 자원의 제약이다. 통화 발행자인 정부에게 재무적 제약(재정 적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물 제약 이상으로 정부 지출을 확대하면 인플레이션과 환경파괴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제약 요인은 ‘해외 의존도’이다. 외채는 정부가 발행할 수 없는 통화로 상환해야 하므로,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는 국내 기술과 생산 능력이 발달하지 못해 필수재를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그래서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경험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상수지 제약이 존재하더라도, 정부의 ‘정책 여력’(policy space)은 통념보다 훨씬 넓다.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국 재정을 활용하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시급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에 우선 정부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그 비용의 분담 문제는 조세체계 개혁 등 다소 천천히 준비하면 된다. 또한, 빈곤과 소득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인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일자리보장 제도’를 운영하되, 돌봄(인간, 지역공동체, 환경) 프로그램 등 해외 의존 없이 운영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모든 경제적 어려움은 잠재 생산 능력 자체를 훼손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위기 이후 회복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저생산성을 고착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불평등을 강화해,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심각한 사회적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에는 이미 600만 명에 달하는 실업(확장실업자 수 기준)이 존재하고, 약 30%의 제조업 설비가 가동을 멈추고 있다. 이러한 유휴 생산 능력은 재정 지출이 증가하더라도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기술 선진국으로, 매년 700억 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국제 통화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상수지 제약이 미미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 여력은 매우 크다. 정부가 지출을 크게 늘려 경제적 충격을 흡수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재정 적자를 우려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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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ton, S. 2020. The Deficit Myth : Modern Monetary Theory and the Birth of the People's Economy,   New York: Publaic Affairs [이가영 역, 『적자의 본질』, 서울: 비즈니스맵,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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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ay, R. 2015. Modern Money Theory : A Primer on Macroeconomics for Sovereign Monetary   Systems, 2nd edition, New York: Palgrave Macmillan [홍기빈 역,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 화폐의 비밀   과 현대화폐이론』, 서울: 책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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