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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의』 제2호

시대 진단과 차기 정부의 국가전략 : 제20대 대통령선거 특집


<보다 정의> 제2호 권두언
 
 
진보정당 전략과 비전 · 정책의 재건축을 위하여 

장석준(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1.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가? 
   – 시효를 마감한 범민주당 지지 동요/이탈층 흡수 전략


민주노동당 이후 한국의 진보정당에게는 묵시적인 교과서적 지지층 형성 전략이 있었다. 그것은 범민주당 지지 동요/이탈층[이하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 전략이다. 여기에서 ‘범민주당’이란 제6공화국의 정치 지형을 지배해온 양대 정당 중에서 흔히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선호하는 리버럴정당(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을 가리킨다.
‘제6공화국 정치’에서 유권자는 범민주당과 그 오른쪽의 전통적 지배정당(여기에서는 ‘범수구당’이라 칭하겠다)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어떤 국면에서는 두 축의 구심력이 강해져 양대 정당 지배 구도가 강하게 작동하고 어떤 국면에서는 두 축의 구심력이 약해져 (준)다당 구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축의 존재를 전제로 정당 구도가 형성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이런 구도가 이미 어느 정도 굳어진 시점에 제도 정치에 진입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진보정당에게는 이 구도의 어느 부분부터 공략할지가 관건적인 쟁점이 되었다. 즉, 양대 정당이라는 두 축과 그 주변지대로 나타나는 유권자 분포에서 어느 부분을 우선적으로 지지층으로 만들려고 시도해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다.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진보정당의 교과서적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이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 전략이다. 범민주당은 군부독재에 맞서던 시기에 민중운동의 동맹 세력이었고, 진보정당이 없거나 약하던 시기에는 민중운동의 상당 부분이 범민주당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현실정치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범민주당을 지지하는 거대한 유권자층은 진보정당이 강력히 대두하기만 한다면 가장 빠르고 쉽게 지지 대상을 진보정당으로 옮길 집단으로 상정됐다.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 전략은 진보정당 역사상 몇 가지 결정적인 순간들을 통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교과서적 전략으로 정착됐다. 첫 번째 결정적 순간은 제한적인 1인2표 정당명부비례대표제(정확히는 ‘병립형’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이었다. 
이 선거제도가 처음 적용된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광역의원선거 정당투표에서 전국 평균 8% 이상을 득표하며 처음으로 비약적 성장을 했다. 그런데 이때 민주노동당이 받은 정당투표의 상당 부분은 김대중 정부 말기의 실정(특히 대통령 아들 비리)에 실망한 범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지역구에서는 범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되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에게 표를 던져 범민주당을 심판·견제한 교차투표 행위의 결과였다. 
이후 이런 범민주당(지역구)-진보정당(정당투표) 교차투표는 범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선거 때마다 반복됐고,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한 정점이었던 2004년 총선 결과도 이런 교차투표 없이는 성사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은 자연스럽게, 선거에서 교차투표를 하는 범민주당 지지층 일부를 진보정당의 확고한 지지층으로 흡수-재편하는 것을 지지층 확장의 주된 경로로 여기게 됐다. 
2007년 대선은 이런 지지층 형성 전략이 질적인 비약을 이룰 역사적 기회였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특히 부동산 문제) 탓에 정권 말기에 범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유례없이 와해됐다. 대선을 실시하기도 전에 이미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참신한 후보와 시대정신을 제대로 포착한 비전?정책으로 승부했다면, 민주노동당이 범수구당, 범민주당과 거의 대등한 제3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었던 기회였다. 그랬다면 제6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양대 정당 중심 구도의 관성이 뒤흔들렸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은 이 전무후무한 기회를 유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지층 형성 전략 측면에서 보면 이때의 기회 역시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재편 전망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다만 진보정당이 처음으로 이를 공세적 입장에서 추진해볼 기회였다는 점이 달랐다. 
진보정당이 2007년 대선이라는 기회를 놓침에 따라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똑같은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 전략이 정반대 양상으로 전개됐다. 즉, 진보정당이 범민주당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이명박/박근혜 연합 안에서 범민주당에 종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에는, 선거 때마다 범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서 교차투표를 하는 진보적 유권자층이 반-이명박/박근혜 연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진보정당으로서는 범민주당이 야당인 상황에서 선거 상의 실익을 얻기 위해서도 반-이명박/박근혜 연합에 이끌렸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잠재)지지층이 반-이명박/박근혜 연합을 간절히 바랐기에 이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것은 범민주당 동요/이탈층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확장하려 한 진보정당의 전략이 도달한 결말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즉 범민주당 지지 기반에서 이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은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지지층이다. 범민주당 집권 시기에는 정권에 실망한 이들 집단이 진보정당의 가장 우선적인 잠재 지지층이라 상정됐던 것인데, 범수구당 집권 시기에 이들 집단은 반수구당연합 안에서 진보정당이 범민주당의 하위 파트너가 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2010년대 내내 진보정당이 취한 민주대연합 노선은 몇몇 지도자의 선택이나 실리적 선거 전술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렇듯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이 낳은 숙명이었던 것이다. 
한데 2010년대에 굳어진 진보정당의 이런 위상과 성격은 진보정당의 또 다른 도약이 요구되던 2016~17년 촛불항쟁 이후 국면에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촛불연합은 어찌 보면 2010년대의 전형적인 민주대연합이 절정으로 치달은 것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촛불항쟁으로 오랜만에 등장한 범민주당 정부(문재인 정부)에 대해 진보정당은 ‘연합’보다는 ‘경쟁’의 태도를 기동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었다. 범민주당 동요/이탈층 흡수라는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의 연장선에서 보더라도 이런 기민한 태세 전환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빠른 태세 전환에 실패했다. 특히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논란 국면에서 이 한계가 극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이 국면에서 정의당은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의 모순 안에 갇혀 버렸다. 전통적인 지지층 형성 전략으로 보더라도 문재인 정부 실망층의 등장이야말로 진보정당 지지층을 확장할 기회이므로 정부-여당과의 구별과 공세적 비판, 대안 제시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그간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시해온 유권자층인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지지층의 당면 여론에 주로 신경 쓰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지금까지도 정의당이 조국 논란, 선거법 개정 논란 등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히 그 시기 집행부의 잘못을 계속 ‘사과’한다고 하여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이 낳은 모순적 상황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성찰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 시기까지 시야에 포괄하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이 있다. 
게다가 이 전략이 내년 대선을 비롯한 이후 한국 정치에서 더는 진보정당의 주된 전망이 되어서는 안 될 보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우선 제6공화국 정치의 자장 안에 있는 유권자층(편의상 ‘40대 이상’이라 호명하겠다)에서는 양대 정당 중심 구도의 구심력이 약화되기보다는 강화될 것이다. 촛불항쟁 직후에는 범수구당의 유례없는 위기로 양대 정당 중심 구도의 구심력이 범수구당 축에서부터 이완되는 조짐을 보였지만, 문재인 정부가 촛불개혁에 실패한(더 정확히 말하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탓에 범수구당 축이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부활했다. 또한, 그럴수록 40~50대에서 범수구당 부활에 맞서는 범민주당 축의 구심력이 강화됐다. 
20대 대선 내내 이러한 구도가 지속·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범민주당 후보와 범수구당 후보의 양강 구도를 만들어 ‘정권 재창출’이든 ‘정권 교체’든 일대 승부를 보려는 힘이 강력히 작동할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대선은 양강 구도가 해체됐던 2007년 대선이나 다자 구도였던 2017년 조기 대선과는 달리 2002년 대선이나 2012년 대선과 비슷한 양대 정당 후보 간 접전이 될 것이다. 적어도 40대 이상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반면에 20~30대에서는 또 다른 맥락에서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이 작동하지 못한다. 이 유권자층에서는 ‘제6공화국 정치’ 패턴 자체가 규정력이 강하지 못하다. 이들 가운데에서는 과거와 같은 범민주당 동요/이탈층을 상정할 수 없다. 일정한 충성도나 소속감을 갖고 범민주당을 장기간 지지해오다 동요하거나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민주당 동요/이탈층이라 하기보다는 차라리 ‘제6공화국 정치’ 자체의 동요/이탈층이라 해야 맞다. 따라서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투표 관성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는 40대 이상의 범민주당 지지층(특히 범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층)을 주로 염두에 둔 진보정당의 정치 행위가 제6공화국 정치, 즉 낡은 정치의 반복으로만 보인다. 40대 이상의 범민주당 지지층을 진보정당의 우선적 잠재 지지층으로 보고 정치 행위를 할 경우에 20~30대에서는 오히려 진보정당의 호감도나 지지도가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이 20~30대에서는 전혀 지지층 ‘형성’ 전략이 되지 못하는 셈이다. 
이것은 궁지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궁지는 아니다. 진보정당의 전통적 지지층 형성 전략의 궁지일 뿐이다. 이런 변화된 시민사회 지형을 냉정히 인정한 뒤에 새로운 가설에 입각한 지지층 형성 전략을 취한다면, 오히려 진보정당의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제20대 대선에서 정의당이 마주한 가장 중대한 시험이라 할 것이다. 



2. 새로운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 - 제6공화국 정치 이탈층 결집 전략

앞에서는 편의상 마치 ‘세대’ 변수가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이 더는 작동할 수 없는 주된 이유인 것처럼 서술했다. 물론 세대 변수는 중요하다. 20~30대와 40대 이상 사이에는 다른 어떤 변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한 단절선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대 변수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핵심은 (세대가 아니라) 양대 정당 중심 구도의 지배를 받는 제6공화국 정치 논리와 그 경험의 규정성이다. 이는 다른 어떤 변수보다도 세대 변수와 결합했을 때에 규정력의 차이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래서 흔히 세대 변수와 동일시되거나 이에 가려진다. 하지만 세대 변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여 이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각 세대 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균열과 차이, 대립을 간과하게 된다. 또한, 세대만이 아니라 계층-계급, 성별, 지역 등에 따라 제6공화국 정치의 지배력이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포착할 수도 없다. 이 점에서 ‘세대’라는 통속적인 틀이 아니라 제6공화국 정치의 지배력이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 유권자의 분포와 역학을 살펴봐야 한다. 
현재 한국의 유권자 전체를 놓고 보면, 제6공화국 정치 논리와 그 경험에 지배받는 중심 집단이 있다(여기에서 ‘중심’이란 말은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함축하지 않는다. 단지 점차 구심력을 잃어가는 기존 중심의 이미지를 환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집단은 촛불항쟁으로부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거쳐 20대 대선 국면에 이르는 기간 동안 외연이 축소되는 형태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남아 있는 중심 집단 안에서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오히려 규정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중심 집단은 범수구당과 범민주당이라는 두 축이 상호 작용하면서 재생산하는 제6공화국 정치 전체의 구심력을 통해 유지된다. 
반면에 이 중심 집단이 힘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과거(201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난 탈중심 집단이 있다. 탈중심 집단에는, 과거에도 제6공화국 정치의 규정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정치 무관심층’ ‘무당파층’ 등으로 분류돼온 이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전통적인 ‘정치 무관심층’ 범주로 분류될 수 없는 다양하고 광범한 유권자들이 탈중심 집단에 합류하고 있다. 다만, 탈중심 집단에는 현재 범수구당/범민주당 같은 정치적 구심점이 없으며, 따라서 중심 집단에 비해 뚜렷이 가시화되지도 못하고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그럼 주로 어떤 특징을 지닌 인구 집단이 탈중심 집단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는가? 그간 확인된 여러 양상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정리해볼 수 있다. 제6공화국 정치에 대한 충성도나 소속감은 이것이 유권자의 삶에 실제 수반하는 효능감이 클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6공화국 정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누리거나 최소한 안정감을 확보한 집단에서 제6공화국 정치의 경험과 그 논리가 보다 강한 규정력을 보일 것이다. 
이를 각 변수에 대입하여 살펴보면, 가령 계급-계층 측면에서는 당연히 지배층, 상위 중산층 방향으로 올라갈수록 제6공화국 정치의 지배력이 강하게 나타날 것이고, 하위 중산층, 노동계급, 빈곤층으로 내려갈수록 그 규정성이 약할 것이다. 성별 측면에서는 여성에 비해 남성에서 중심 집단의 구심력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세대 측면에서는, 이미 보았듯이, 40대 이상에서 양대 정당 중심 구도가 의연히 작동하는 데 반해 20~30대에서는 그 해체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지역 측면에서는 전통적 지역 구분(호남, 영남 등등)은 여전히 기존 양대 정당 중심 구도에 단단히 결박돼 있겠지만, 서울/수도권/광역대도시/소도시/농촌 등의 구분을 다른 변수(가령 계급-계층이나 성별)와 결합해 살펴본다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통적인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을 대체할 새로운 지지층 형성 전략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탈중심 집단, 즉 제6공화국 정치 이탈층을 진보정당의 핵심 잠재 지지층으로 보고 이들을 우선적 호소·결집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제6공화국 정치 이탈층의 현재적/잠재적 구성 요소로는 다음 집단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음 경향성이 교차하는 집단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배층·상위 중산층에 대비되는 하위 중산층·노동계급·빈곤층 / 남성에 대비되는 여성 / 대기업·공기업·공무원·정규직에 대비되는 중소기업·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 다주택 소유자·자가 소유자에 대비되는 무주택 세입자 / 명문대·서울 소재 대학 졸업자에 대비되는 지방대·전문대·실업계고 졸업자 / 서울·수도권·광역대도시에 대비되는 지방 거주자. 
새 지지층 형성 전략은 점점 수와 비중이 늘어나지만, 중심 집단에 비해 가시성과 구심력이 떨어지는 탈중심 집단, 즉 제6공화국 정치 이탈층을 결집하여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과 응집력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치적 상징의 구축’과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의 구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현 중심 집단을 재생산하는 힘은 기존 질서 안에서 일정한 범위의 대중에게 기득권 내지는 안정성을 보장해줌으로써 지배층과 이들 대중 사이에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을 창출하는 데(혹은 그런 ‘환상’을 창출하는 데)에서 나온다. 이에 맞서려면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다른 내용으로 또 다른 대중 사이에서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혹은 그런 이익이 있다는 믿음)을 구성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대선 공약은 무엇보다 이런 공통 이익(에 대한 신념)의 구성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의 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선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은 지난한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 구성이라는 과제는 반드시 또 다른 중요한 과제와 병행 추진되어야 하며, 대선 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이쪽이 정세적으로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상징의 구축이다. 
정치적 상징이란 담론, 인물, 일상적 실천 등의 요소로 이뤄진 복합체다. 즉, 담론이나 인물, 어느 한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 이들 요소가 어우러져 모래알 같은 대중을 하나의 유기적 세력으로 결집시켜야 한다. 이렇게 유기적 세력으로 결집한 대중 사이에서는 공통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도출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이렇게 보자면, 새로운 진보정당 지지층 형성 전략의 핵심은 탈-제6공화국 정치를 출발점 삼아 정치적 상징을 구축한다는 점에 있다. 이를 통해 광범한 제6공화국 정치 이탈층 사이에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이들을 교차하는 정치적 정체성과 연대성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제6공화국 질서의 피해 대중들 사이에서 공통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구성하는 기나긴 작업도 성공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는 진보정당의 담론과 관행, 주된 고민과 실천의 일대 전환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지지층 형성 전략은 범민주당 동요/이탈층의 세계관과 상징 체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 집단의 상식에, 가령 이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그 연장선)에 준거한 데 반해 새로운 지지층 형성 전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범민주당 동요/이탈층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범수구당-범민주당 대립 구도를 전제하는 ‘민주주의’다. 
그러나 탈-제6공화국 정치를 내세우려면, 이런 ‘민주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더라도 양대 정당 중심 정치 전체와 대별되며 이를 극복하는 지향으로서 ‘민주주의’를 말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해야 하며, 정치적 승자독식체제와 사회경제적 승자독식체제를 한 묶음으로 공격해야 하고, 제6공화국의 정치 질서와는 내용을 달리하는 ‘민주주의’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은 정의당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시도해야 할 도전이다. 



3. 진보정당의 비전, 정책 재건축을 위한 8가지 방향의 기초 공사 

그럼 정의당이 특히 이번 대선을 맞아 제시해야 할 ‘사회경제적 공통 이익 구성’의 비전은 무엇인가? <보다 정의> 2호가 “시대 진단과 차기 정부의 국가전략 : 제20대 대통령선거 특집”이라는 큰 제목 아래 선보이는 8편의 글이 바로 이런 긴급한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다. 이 글들은 진보정당의 기본 전략이 커다란 방향 전환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이에 발맞춰 진보정당의 비전?정책을 어떻게 ‘재건축’할 것인지 밝히고 있다. 
우선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의 "탈산업과 이중전환의 시대,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는 민주노동당에서 이어지는 한국 진보정당의 전통적 비전이 크게 바뀌어야 할 이유를 명쾌히 정리한다. 지금껏 진보정당이 주창해온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정보화라는 커다란 변화 이전의 산업사회에 맞춰 기본 골격이 짜여졌다. 그러나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었고, 지구화가 돌이킬 수 없이 전개됐으며,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핵가족이 쇠퇴하는 등 인구 구조도 변화했고, 복지국가 건설을 이끈 핵심 주체였던 노동계급이 유례없는 분열과 후퇴, 해체를 겪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이라는 심대한 이중전환을 거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복지국가를 수립해야 하는 한국의 진보정당은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어서는 비전으로 이중전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의 목표가 구성원들의 소비능력을 위한 자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와 역량을 보장하는 체계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은 <보다 정의> 2호에 실린 글들 모두를 아우르는 총론이라 할 수 있다. 
이현정 전 정의당 기후위기대응본부장의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국가"는 영국 글래스고우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문재인 정부가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허울뿐인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며 대선을 앞둔 정세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을 다시 짚는다. ‘진짜 배출제로’를 지향하는 기후정의국가의 방향은 정의당의 다른 모든 정책을 조정하고 종합하는 대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와 코로나위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또 다른 근본 비전은 돌봄국가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의 "관계단절 시대와 돌봄국가"는 21세기에 왜 복지국가를 넘어 돌봄국가로 나아가야 하는지 밝힌다. 돌봄국가는 끝없는 양적 성장에 의존하며 대중의 구매력 증진에 초점을 맞추던 과거 복지국가와 달리 현대인이 처한 외로움을 극복해가는 사회의 노력을 중심에 둔다. 또한, 관료적 시혜 중심의 복지 체계가 아니라 지역 사회 내부의 협력이 중심이 된 돌봄 체계를 지향한다.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갈등과 전환의 시대, 평화·공생 선도 중견·평화 국가"는 세계와 한국이 직면한 또 다른 근본적 위기, 20세기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를 분석하며,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평화 비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한때 이 과제와 관련해 커다란 성취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이를 차분하게 짚어나가면서 현 정부의 실패 이후 정의당이 추구해야 할 중견국가·평화국가의 방향을 정리한다. 그것은 단순한 모병제로의 전환 논의를 넘어 다자주의 외교, 새로운 정세에 맞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군비 축소 등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차별과 배제의 시대, 새로운 노동체제로의 전환"은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이라는 이중전환이 기존 복지국가의 기본 골격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노동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탐색한다. 정의당이 이미 제출한 노동 관련 대선 공약들, 즉 모든 ‘일하는 시민’을 위한 신노동법 체제, 주4일제, 일자리보장제 등의 근거를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용복 경성대학교 교수의 "대전환의 시대, 재정 개혁으로부터 : 정부 재정에 관한 대안적 관점"은 기후정의국가, 돌봄국가 등의 새로운 비전이 현실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재정 정책 기조를 종합적이면서도 명쾌하게 제시한다. 단순히 긴축 기조나 균형 재정론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이 글은 ‘기축통화국가만이 과감한 재정 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거나 ‘정부 부채가 늘어나면 외환위기가 온다’는 흔한 반론을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이 글에 담긴 정부 재정에 관한 관점은 21세기 진보정당 당원의 이론적 무장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의 "집값 폭등 시대, 주거안심공화국 : 주거권을 위한 ‘탈상품적 자산화’의 기획"은 이번 대선의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주거 문제에 대한 진보 세력의 기존 대안들을 철저히 재검토하고 그 맹점들을 비판한다. 정의당의 주거 정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뭔가 부족한 점을 느꼈던 이들에게 정의당의 정책에 도대체 무엇이 부족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글이다. 진보정당은 언론의 부박한 관심이나 자가 소유자(혹은 그 지망자)만을 주로 의식하는 소선거구 중심의 정치 논리를 넘어 ‘주거안심체제’의 종합적 비전을 제출해야 한다는 결론은 정의당 주거 대안의 대원칙이자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형빈 교육과정혁신연구소 소장의 "‘교육불평등’의 시대, ‘정의로운 미래교육’의 대안"은 교육 대안을 놓고 앞의 글과 비슷한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재검토 작업을 수행한다. 이 글은 진보 세력의 전통적인 ‘대학 평준화’ 비전을 계승하면서도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학 소멸 같은 현 상황에 맞춰 이를 지방 국립대학 우선 육성 정책(‘서울대학 10개 만들기’)으로 변형한다. 또한, 이중전환 시대에 맞게 새로운 세대의 ‘변혁적 역량’, 즉 불확실한 미래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가는 역량을 기르는 것을 공교육의 새 목표로 제시한다. 

이상 8편의 글들은 하나같이 다, 대선을 앞둔 정의당 당원들의 학습과 토론을 위한 기본 자료가 될 만하다. 정의당 대선 정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원 학습과 토론이 미진하여 아쉬움이 크지만, <보다 정의> 2호의 글들이 이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보완하는 역할을 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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