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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2.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국가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국가

이현정 (전 정의당 기후위기대응본부장)



1. 들어가며: 최전선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고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었던 기후위기가 이미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화석연료 기반의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구체적 경로와 해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데 ‘누가’ 중심이 되어서, ‘어디에’ 재생에너지를 확장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언제까지’ 산업전환을 이루어 낼 것인지 구체적 경로를 확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면서 기후위기 극복이 누군가, 혹은 어떤 지역이나 공동체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산업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겠다는 요구였다면, 선진국의 책임과 기후채무(climate debt)를 강조하고,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 여성, 청년, 청소년, 장애인, 빈민 등 최전선 민중과 공동체(MAPA: Most Affected People and Area) 모두가 당사자이자 전환의 주체여야 한다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운동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2.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COP26

  11월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이 열릴 동안, 영국 시민단체 중심으로 전 세계 시민사회가 함께 구성한 ‘COP26 연합(COP26 Coalition)’은 회의장 밖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글로벌 공동행동(11월 6일)’과 민중회의(People’s Summit, 11월 7일-11월 10일)를 개최했다. 이들의 요구는 크게 3가지 주제 하에, 9가지 세부사항을 포함하고 있다(COP26연합 웹페이지).

더이상 정보를 날조하지 말라: 화석연료, 넷제로 및 거짓 해법에 대한 거부
― 1.5℃를 위해 싸워라.
― 우리는 넷제로가 아닌 실제 배출제로(real zero)가 필요하다.
― 화석연료를 땅에 그대로 두라: 신규 화석연료 투자 또는 기반시설 건설 금지
― 가짜 해법을 거부하라: 탄소 시장과 위험하고 입증되지 않은 기술 거부
시스템을 재정비하라: 즉각적인 정의로운 전환의 시작
― 정의로운 전환을 시작하라
전 지구적인 기후 정의: 원주민 공동체와 남반구(global south)(대부분의 선진국이 북반구에,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남반구에 존재하는 남북격차의 입장에서 저개발국을 의미. 남반구에 위치하지만, 선진국에 해당하는 호주, 뉴질랜드 등은 global south에 포함되지 않는다.)에 대한 배상 및 재분배
― 모든 부유한 국가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공정하게 분담하라.
― 모든 채권자에 의한 남반구의 부채를 취소하라.
― 남반구를 위한 보조금 기반의 기후 금융을 조성하라.
― 남반구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손실과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

  최근 국제사회는 기후위기의 급박성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각자 자국의 감축 책임을 두고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최근 국가별 연간 배출량의 1위인 중국의 감축을 요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역사적 누적 배출량에서 압도적인 1위인 미국을 비판하면서, 최근의 배출도 1인당 배출량으로 비교할 경우 여전히 미국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강변한다. 또한, 선진국들이 제조업을 국외로 이전시킨 결과 발생하는 개발도상국의 배출량 증가가 온전히 개발도상국 자체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결과는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후정의에 입각한 요구는 배출제로, 화석연료산업의 원천적 금지 등 강력하고 절대적인 감축 실행과 함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과 환경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책임을 나눠져야 함을 명확히 한다.
  불행히도 이번 COP26에서도 기후정의 원칙이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치킨게임이 이어졌다. 197개 당사국은 치열한 논쟁 끝에 회의 시한을 하루 넘겨 ‘글래스고 기후합의’를 발표하며 총회를 마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탈석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단계적 중단(phasing out)이 아닌 단계적 감축(phasing down)을 명시하는 데 그쳤다(Harvey et al., 2021). 인도의 부펜더 야다브 환경기후장관이 빈곤 문제를 이유로 수정을 요청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인도나 이에 동조한 개도국들만 탓할 수는 없다. 이미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 선진국은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약 117조 원)의 기금을 개도국에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9년 집계한 기후재원 규모는 겨우 796억 달러(약 93조 원)로 1년치에도 한참 모자랐다(윤기은, 2021). 독일방송 DW는 ‘COP26: 세계 지도자들이 기후 서약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세계가 글래스고에서 한 약속을 지킨다 해도 기온은 섭씨 2도 이상 올라갈 것이며, 약속한 내용에 대해서도 ‘누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피했다’며 부유한 오염자들이 기후변화가 가중시킨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확실히 결정하지 않은 회의 결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전했다(Ajit Niranjan, 2021). 


3.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 평가

  우리나라의 기후변화대응 정책은 악명이 높다. 2009년 처음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설정한 이래 한국은 한 번도 이를 지키지 못했으며, 2018년까지 꾸준히 탄소배출이 증가한 결과 1990년대부터 꾸준히 배출량을 감축해 온 유럽 모든 국가의 1인당 배출량을 넘어섰다(송경은, 2019). 그렇다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든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을 기후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살펴보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1) 후보 시절과 정권 초기-신규석탄화력 발전소 건설 중단 공약 불이행
  먼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을 살펴보면, 그는 공정률 10% 미만인 신규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업들의 급작스런 공정률 올리기와 손해배상 협박에 굴복한 것이다. 올해 1월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임기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캐나다 원유를 미국으로 수송하는 '키스톤XL' 송유관 사업에 대한 대통령 허가를 철회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의 의지를 보여줬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그 결과 키스톤XL 운영사인 캐나다 TC 에너지는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15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신정원, 2021).) 결과적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고려해도 그의 임기 동안에는 석탄발전 설비 용량은 과거보다 늘어나게 되었다. 임기 초기의 이러한 실책은 탈석탄 시점이 2050년까지 밀리게 되어 국제적인 비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2) 2050 탄소중립선언
  2020년 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그는 “2018년 IPCC에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가 1.5℃ 이상 상승하면 해수면 상승과 이상기후 등으로 수많은 인류의 삶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면서, “탄소중립·경제성장·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임기 내 확고한 탄소중립 사회 기틀을 마련”할 것을 약속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 비전 발표 직후인 2020년 12월에 UN에 제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부문별 배출량과 산정 방식은 바뀌었지만, 결론적으로는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세웠던 감축목표인 5억3600만 tonCO2eq로 동일한 값을 제출했다. 그 결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Climate Change)은 감축목표를 상향해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한 국제기구의 대표는 “각국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만 보면 세계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보고서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뉴질랜드 등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뼈아픈 비판을 하기도 했다(이근영, 2021).

  3)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
  이후 2021년은 내내 ‘탄소중립’이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 논란의 중심에 섰다. 5월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과정에서부터 논란은 시작되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논의해 나가는 것이 그만큼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던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어 민간 위원들이 연이어 사퇴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사퇴한 청소년 기후행동은 사퇴 선언을 통해 “청소년기후행동은 이제 비민주적이고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현재 탄소중립위원회의 논의 방식을 거부”하며, “(지금의) 구성은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우리들의 삶을 대변하고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또한, “정부가 이렇게 비민주적이고 대책 없는 논의를 이어가는 동안 실제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의 과정안에서 가장 많은 영향, 피해를 입게 될 이들의 목소리는 모두 배제”되었고, “평범한 시민들은 여전히 전문가들의 현실성 없는 위기 인식 앞에 평범하고도 안전한 삶을 살 권리를 빼앗겼”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전환의 경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전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기후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4) 탄소중립위원회의 2030 NDC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2021년 8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의 국회 의결과 탄소중립위원회가 다시 제안한 2030 NDC 상향안,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등은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 총배출량과 순배출량의 비교
  먼저 NDC의 경우 감축률 산정 방식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2018년도의 총배출량 대비 2030년 순배출량 감축목표를 비교하는 계산 방식을 사용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등장한 감축률 40%에 끼워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윤지로와 박유빈, 2021). 미국이나 유럽의 방식처럼 국외감축을 제외한 순배출량 대비 감축률을 다시 산정하면 감축률은 31%로 떨어지고, 총배출량 대비 감축량은 30%에 불과하다. 순배출량 대비로 해도 감축률은 36%이다. 탄소중립위원회와 문재인 정부는 NDC를 대폭 상향했다고 홍보했지만, 감축률 40%를 인정한다고 해도2010년 대비 45% 감축이라는 1.5℃ 특별보고서의 기준에는 한참 미달했다.

[그림 1] 탄소중립위원회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감축률 산정 방식


  나. 불확실한 기술 – CCUS와 DAC
  흡수 및 제거 항목에 대한 논란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남은 배출량과 흡수되는 온실가스양을 같게 해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넷-제로(Net-Zero)’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엄밀히는 탄소중립과 순배출 제로(net zero emission)는 다르다. 순배출 제로는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 수소불화탄소와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이산화질소 등 전반적인 온실가스의 순배출이 ‘0’이 되는 것을 말하는 반면, 탄소중립은 탄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종류별 지구온난화 기여도를 수치로 표현한 지구온난화지수(GWP, Global Warming Potential)에 따라 주요 직접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하여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inventory)에서 총배출량과 순배출량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왔다(e-나라지표 웹페이지).

■ 총배출량
― 토지이용, 토지이용변화 및 임업(Land-Use, Land Use Change and Forestry, LULUCF)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배출량을 합산한 값 

■ 순배출량
― LULUCF 분야를 포함하여 합산한 배출량

  즉, 지금까지 확정된 국가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서 총배출량과 순배출량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국토가 최종적으로 (토지이용, 토지이용 변화, 임업 중에는 흡수 뿐 아니라 배출하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종합적으로는 흡수하는 양이 훨씬 커 흡수량으로 표시된다.) 흡수하는 양을 의미해 왔다. 이 기준으로는 우리나라 국토가 흡수할 수 있는 양 만큼만 배출하는 것이 원래의 탄소중립의 의미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NDC 안에는 흡수 및 제거원으로 탄소포집·저장·활용기술(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에 의해 1,030만 tonCO2eq(이하 톤)을 제거할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10월 18일 발표된 최종본에 있는 A, B 두 개의 안에는 CCUS로 5천5백만 톤(A안) 혹은 8천5백만 톤(B안)의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으며, B안에는 새롭게 등장한 직접공기포집(DAC)으로 740만 톤을 흡수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총배출량은 A안 약 8천만 톤, B안의 경우 1억2천만 톤으로 A안은 100% 재생에너지로 발전을 하는 안이지만 B안은 LNG 화력발전 2천백만 톤 등이 추가된다. 그 차이를 더 많은 CCUS와 DIA로 메꾸겠다는 것이다. 언제 완성될지 기약도 없는 CCUS 기술로 2030년에 천만 톤, 2050년 최대 8천5백만 톤 이상의 탄소를 저감하겠다는 계획은 불확실한 기술에 인류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겠다는 안이나 다름없다.

  다. 부정의한 탄소상쇄 –국외감축
  뿐만 아니라 NDC에는 국외감축도 포함되어 있다. 국외감축의 양은 기존의 LULUCF에 해당하는 흡수원의 흡수량 2천7백만 톤을 훌쩍 넘는 3천5백만 톤에 달한다.
  산업부문의 감축목표는 고작 14.5%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산업 전환을 주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데, 산업부문 전체의 감축량 3천8백만 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3천5백만 톤을 해외감축으로 상쇄하겠다는 대목에서는 탄소제국주의(carbon imperialism)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새로 편입된 수소 부문은 그 자체가 다른 부문에 기대야 한다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절반 가까이는 수입하겠다는 계획으로, 역시 외국에 탄소감축 의무를 떠넘기는 꼴이 될 것이다. 
COP26 회의장 밖에서 울려 퍼진 기후정의의 목소리들은 가능한 실질적인 감축을 적게 하려는 이런 꼼수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각국이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삼는 이유는 국외배출과 같은 탄소상쇄(carbon offset)를 통해 계속 배출하기 위함으로,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넷제로가 아닌 실제 배출제로(real zero)를 요구한다. 또한, 가짜 해법이라고 명명한 위험하고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는 핵발전, CCUS, DIA 등이 포함되며, 이러한 기술들은 모두 대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1.5℃ 이내로 변화를 제한할 수 없고, 기후 재앙의 문을 두드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4. 기후정의국가의 원칙을 세우자

  그렇다면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어떻게 정의롭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여기에는 국제 시민사회가 제안한 기후정의 요구안이 담고 있는 큰 원칙과 함께, 국내 상황에 맞는 추가적인 원칙이 필요할 것이다. 

  1) 기후위기의 진행속도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전 세계에 쏟아지는 기후 재해는 인류의 대응이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 8월 승인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 보고서는 우리의 미래가 더 암울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8년 전에 발표된 5차평가보고서(AR5)와는 달리 2040년 이전에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고 폭염과 폭우와 같은 극한 현상이 빈발할 것이라는 내용과,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기후위기를 대하고 있다. 특히, NDC에서 산업계의 감축량이 14.5%에 불과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살던 대로 살겠다는 BAU(Business As Usual)를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더이상 살던 대로 살 수 없다. 다만 준비와 협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새로운 체제로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변화한 기후 속에서 고통스럽게 강제로 전환당할 것인지만 남아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그려야 하고,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후위기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2) 진짜 배출제로(real zero)를 향해 지금 당장 전환을 시작하자
  진짜 배출제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석탄, 석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까지 포함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탄소를 배출하는 공정을 대체하고, 축산업/폐기물 분야의 메탄 배출량을 최소화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탄소잠김(carbon lock-in)을 고려하면, 신규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지금이라도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COP26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탈석탄을 발표했지만, 한편으로 2030년대 탈석탄을 약속하는 ‘글로벌 탈석탄 전환선언’에 공식 서명했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건설비용 보상을 감수하더라도 삼척블루파워, 강릉안인화력발전소 등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다. 
  발전회사 이외에 탄소다배출 기업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폐기물 등의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기후위기대응 속도에 맞게 탄소다배출 업종 자체를 다른 부문으로 전환하거나, 탈탄소공정으로 대체하도록 지원하고 규제하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환원제철 공정으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한편에서는 코크스 공장 추가 신설을 추진(방정환, 2021)하는 모순되는 모습을 보인다. 기업이 준비될 때까지 전환을 미뤄서는 기후위기가 우리를 앞질러 모두를 집어삼킬 것이다.

  3) 다른 지역을 착취하는 전력은 정의롭지 않다
  탈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기본이다.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이다. 올 초, 전남에는 ‘농어촌파괴형 풍력, 태양광 반대 전남 연대회의’가 구성되었다. 기업에게 태양광, 풍력 사업을 맡겨놓은 결과 지대가 싼 곳으로 태양광 발전이 몰려 농촌과 연안습지를 파괴하고, 지역 주민들을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신안 염전의 1/3이 태양광 부지로 팔려 소금값이 올랐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앞으로 한정된 토지 안에서 에너지, 먹거리, 물 등이 경쟁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토지이용을 배분할 것인가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동시에 농촌과 연안이 에너지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로, 광역시별 전력자립도 2030년 최소 50%, 2050년 100% 공급 달성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건물 및 유휴부지 태양광 사업을 의무화하고, 도로 위 태양광 방음터널 등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미 개발된 토지를 중심으로 이중으로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곳에 최우선으로 태양광 발전 시설 건설을 추진해야한다. 도시에는 태양광, 바다에는 해상풍력을 기본 에너지원으로 하여, 절대농지와 연안습지는 보존하는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최근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부유식 해상풍력의 경우 대부분 연안에 있는 산업단지 등 집약도가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 지역에 연계하되, 다만, 지역의 어촌계 등 연안과 해양 생태계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의 동의와 의견수렴 과정을 필수로 해야 할 것이다.

  4) 탈토건/순환경제 사회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지난 9월 국토교통부는 제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을 확정하며, 이 작은 국토에 총 10개의 공항 신설 계획을 확정 혹은 검토를 약속했다. 한쪽에서는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을 논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공항 건설에 나서는 것은 국제적으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스럽게 탄소중립 전략을 발표한 와중에도 국제평가기관이 발표한 올해의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59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모순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비행기의 1인당, 동일거리 이동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단거리 노선을 폐기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시민들을 중심으로 비행수치(flight shame), 탈비행(flight free)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신공항 건설은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
  난개발을 원천차단하고 소모적인 예타 면제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토건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변경하는 반면, 필수적인 공공의료사업 등 지역 주민의 건강/안전과 관련된 사업들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 가중치를 조정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여 인구가 적은 지역에도 쉽게 추진될 수 있도록 만드는 등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또한, 무조건 많은 자원을 추출하여 생산-소비-폐기의 수순을 밟는 선형/추출경제가 아니라, 필요에 기반하여 생산-소비한 후 다시 자연으로 온전히 돌려주는 순환경제야말로 지속가능한 시스템이며, 탈탄소 사회로 가는 길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5. 마치며: 기후정의동맹(climate Justice alliance)이 필요하다

  ‘석탄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태우자(Burn capitalism no coal)’는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시작된 청소년 기후단체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대표적 구호 중 하나이다. 툰베리가 UN 연설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지금의 시스템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면,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후정의동맹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노동자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산불, 가뭄, 홍수, 냉해, 해충 등의 급격한 증가는 농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대기업의 산업전환은 하청업체, 중소상공인 등 지역사회 전반을 위협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더욱 쉽게 독박 돌봄노동과 실직의 위기에 처해 젠더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동일한 재난에도 훨씬 큰 희생을 치를 위험을 늘 안고 있고, 청년/청소년은 부당하게 기후위기 해결의 책임을 떠안게 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결정 권한조차 없다. 
  노동자가 산업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하듯, 사회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인 사람들이 각자 고군분투할 것이 아니라 함께 동맹을 맺고 지금의 비대칭적 사회적 권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체제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기후정의에 입각한 담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누구도 뒤에 홀로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참고문헌]

방정환, 포스코, 포항에 6번째 코크스 설비 신설, 2021년 3월 3일 철강금속신문 기사,         https://www.snm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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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6연합 웹페이지 https://cop26coalition.org/dem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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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ey, F., Carrington, D. and Brooks, L., COP26 ends in climate agreement despite India watering   down coal resolution, 2021.11.13. The G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1/nov/13/cop26-countries-agree-to-accept-imperfect-climate-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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